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一編 上古(太古-三國時代)上古의 後期(三國時代)第三章 三國의 統一과 文化

三. 三國과 外國과의 關係

(가)『大陸 諸國과의 關係』 三國의 隆盛期는 대개 中國의 大分裂期 곧 五胡十六國 南北朝 時代에 당하므로 그에 대한 三國의 外交策은 매우 微妙하고 複雜하였다. 그러나 대개 政治的으로는 遠交近攻策, 文化的으로는 善隣策을 써 세력의 均衡과 文物의 輸入을 兼行하였다. 特히 中國과의 外交에 있어서는 朝貢 【朝貢은 곧 公的 貿易의 한 형식임】 이라는 形式을 通하여 實質的으로 貿易을 행한 것은 經濟와 文化의 發展에 있어 큰 意義가 있는 것이다. 高句麗는 中國과 이웃한 만큼 그의 南北 各期는 勿論이오. 匈奴 突厥과도 修交를 하였으며 百濟와 新羅는 黃海를 通하여 大陸의 여러 나라와 通交를 하였나니, 특히 新羅는 地理的 관계로 中國과의 直接 通交가 比較的 늦었었다.

(나)『大陸 文物의 流入과 佛敎의 弘通』 漢學과 技藝를 비롯하여 大陸의 文物 制度가 三國 文化에 적지 아니한 影響을 끼쳤거니와 特히 佛敎는 高句麗 小獸林王 때에 (國紀 2703 西紀 372) 前秦으로부터 들어와 뒤에 新羅에까지 流通되었으며, 百濟의 佛敎는 枕流王 때에 (國紀 2717 西紀 384) 바다를 건너 東晋으로부터 들어왔다. 이로부터 佛敎는 우리의 宗敎와 思想과 學藝 等 여러 방면에 큰 影響을 주어온 것이다.

(다)『日本과의 關係』 日本은 본래 많은 섬으로 나뉘어 있어 우리의 南北 諸國이 列立해 있을 時期에는 (三韓 時代) 日本에도 역시 수많은 部落 國家가 서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邪馬臺(야마도)國이 있어 차차 여러 部落 國家에 세력을 떨쳤던 듯하다. 그리고 그의 産業으로는 약간의 農業도 行하였으나 主로 고기잡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찍부터 弁韓의 狗耶(金海)등지에 건너와 우리의 文物을 받아가기 시작하였으며, 三國時代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文物 制度가 百濟를 主로 하여 日本(邪馬臺國을 中心으로)에 흘러가 소위 日本 文化의 基礎가 된 것이다. 新羅 高句麗와 日本 사이에는 文物이 흘러간 것은 적지 아니하나 政治的 관계는 거의 보암직한 것이 없었고 百濟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日本이 新羅와 관계가 圓滑치 못하였으므로 (日本 邊民의 侵寇로 因하여) 百濟에 향하여 親和를 求하였다. 그리하여 漢學 佛敎와 百工 技藝가 거의 百濟로부터 흘러간 것이다. 日本은 이와 같이 文化的으로 百濟에 依存한만큼 軍事에 있어서는 간혹 援助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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