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二編 中古(新羅統一期-高麗)中古의 後期(高麗朝)第七章 高麗의 社會와 文化

三. 儒學과 文學

(가)『儒學』 高麗 初期의 儒學은 三國 以來의 餘風을 받아 대개 訓詁學的 學風이 行하였다. 【崔冲의 九齊】 文宗朝에 海東孔子라는 이름을 듣던 崔冲이 九齋를 열어 많은 後進을 敎導하였나니 【私學】 이것이 私學의 濫觴으로서 이른바 文憲公(崔冲의 謚號)徒가 크게 이름을 날렸다. 이로부터 私學의 風이 크게 떨쳐 當時에 여러 學閥이 나타났으니 文憲公徒를 비롯하여 十二徒가 곧 그것이다.

【程朱學(宋學, 性理學)】 그 뒤 忠烈王 때에 이르러 安珦(初名은 裕임)이 儒學 振興의 뜻을 품고 文廟를 重修하여 學問을 勸獎하니 學風이 다시 떨쳐 程朱學도 元나라로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 程朱學은 白頣正(彝齋), 禹倬(易東) 等을 거쳐 鄭夢周(圃隱)에 이르러 그의 基礎가 비로소 서게 된 것이다.

(나)『文學과 歷史』 文學은 新羅의 뒤를 이어 高麗 一代에 자못 發達하였다. 文宗朝의 崔冲, 仁宗朝의 金寅軾, 明宗朝의 李仁老, 高宗朝의 李奎幸 崔滋, 忠烈王朝의 李齊賢, 忠肅王朝의 李穀 崔瀣, 恭愍王朝의 李崇仁 李穡 等이 가장 著名하다. 【三國史記, 三國遺事】 歷史의 纂述도 적지 아니하였으나 金富軾의 三國史記, 釋一然의 三國遺事, 李承休의 帝王韻紀가 지금까지 傳하는 史籍으로서 有名한 것이다.

(다)『科擧制』 儒學과 文學이 盛行함을 따라 科擧制가 또한 나타나게 되었다. 新羅時代에 (元聖王) 이미 讀書出身科가 생겼거니와 高麗 光宗(第四代) 때에 이르러 科擧制가 비로소 行하였다. 이로부터 儒學과 漢文學이 出世의 方途로서 더욱 널리 숭상하는바 되었으며 그에 따라 事大思想과 文弱의 弊風도 또한 일어난 것이다.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