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世祖와 成宗의 治世
世宗 다음에는 아들 文宗이 서고 文宗의 뒤에는 그 아들 端宗이 섰더니 나이 어리고 여러 非凡한 叔父가 있는 중 首陽大君이 속에 큰 뜻을 품고 王의 자리를 뺏으니 이가 世祖이었다. 【死六臣】 成三問 等(朴彭年·河緯地·李塏·兪應孚·柳誠源) 六臣은 이에 義憤을 참지 못하여 비밀이 端宗의 復位를 꾀하다가 發覺되어 悲壯한 죽엄을 당하였다. 이를 세상에서 死六臣이라 하여 그 忠義를 우러러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世祖의 治蹟】 世祖는 이와 같이 비록 義롭지 못한 일을 하였으나 在位 十三年間에 文武의 治가 볼만한 것이 많았다. 밖으로는 여러 번 北쪽의 野人을 물리치고, 또 이때 咸鏡道人 李施愛의 叛亂을 平定하였으며 안으로는 父王과 같이 佛敎를 崇信하여 城內에 大圓覺寺(지금 塔골公園 內)를 이룩하고 十三層의 塔을 쌓았으니 塔은 우리가 보는바와 같이 그 만든 솜씨가 朝鮮 美術의 精華를 보인 것이라 하겠다. 그 밖에 刊經都監을 두고 佛書를 飜譯하여 刊行한 것이라든지 國初 以來의 모든 法令과 條例에 依하여 經國大典이란 큰 法典을 編纂한 것은 그의 빛난 治蹟의 하나이었다. 이 法典은 다음 임금들이 이것을 더욱 完城시키어 朝鮮 五百年 政治의 큰 標準이 된 것이었다.
【成宗의 治蹟】 第九代 成宗은 父祖 以來의 治를 이어 밖으로 豆滿江 方面의 오랑캐의 소굴(巢窟)을 소탕(掃蕩)하고(北征) 鴨綠江 方面의 野人을 쫓았으며(西征) 안으로는 특히 儒者 文人을 優待하고 이들로 하여금 有用한 書籍(東國通鑑·東國輿地勝覽·樂學軌範·東文選 等)을 編纂케 하고 活字를 改造하여 많은 책을 印刷케 하였다. 朝鮮 初期의 制度 文物은 이에 이르러 거이 完城된 느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