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역대 국사교과서第三編 近世(李氏朝鮮)近世의 後期(國紀 4058年-4243年 英祖元年-純宗末)第六章 日本과의 交涉과 開化運動

一. 大院君의 下野와 閔氏의 勢道

膽略과 勇斷으로 弊政을 一新하고 또 鎖國을 固執하여 여러 번 洋人을 물리친 大院君도 그 獨裁政治가 여러 해에 미치매 그러지 않아도 勢道를 읽고 大院君을 미워하던 一派는 차츰 이를 빌미삼아 反對의 運動을 일으켰다.

【李氏 王子를 남】 앞서 外戚勢道의 後患을 없이하기 위하여 맞아들인 며눗님 閔妃는 宮에 들어와 한 때 上下의 愛敬을 한몸에 모으드니 高宗이 宮女 李氏를 사랑하여 그 몸에서 王子가 났고 大院君이 또한 이를 귀이 여겨 世子冊立의 뜻을 보이매 內心에 不平을 품게 되었다. 【閔升鎬의 暗躍】 그리하여 그 오라버니 閔升鎬를 시켜 勢道를 잃고 大院君과 등진 金氏 一派와 손잡으며 大院君의 맏아들 李載冕과 大院君의 兄 李最應을 끌어들여 大院君에게 重用되지 못한 사람을 中心으로 그의 反動勢力을 이루어 大院君을 물리칠 計劃을 세우게 되었다.

한편으로 高宗의 나이 이미 二十二歲라 친히 政事를 보살필 수 있으므로 이를 機會로 하여 儒生 崔益鉉 等을 충동시켜 大院君 彈劾의 上疏을 올리게 하니 【大院君下野】 巷間의 人心이 또한 이에 쏠리게 되매 時勢의 不利함을 깨달은 大院君은 執政 十年만에 할 수 없이 政權을 버리고 下野하게 되었다. 大院君이 下野한 후 朝政은 자연히 閔氏의 손에 들어가고 이후 閔氏와 大院君과의 사이에 여러 가지 갈등(葛藤)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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