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Ⅰ. 학문의 발전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1) 지리지의 편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1) 성리학의 역할
          • 2) 5례·4례의 정비
          • 3) 문묘제도의 정비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2. 훈민정음의 창제
          • 2) 훈민정음의 창제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3. 역사학
          • 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
            • (1) 전대사의 체계화
            • (2) 고려시대사의 정리
            • (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2) 춘추관과 당대사의 편찬
            • (2) 춘추관과 사관
            •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2) 국내지도의 제작
            • (3) 조선방역도
          • 3) 세계지도의 제작
            • (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2)≪해동제국기≫의 일본 및 유구국지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1. 국가제사
          • 2) 자연신
        • 2. 불교
          • 1) 억불정책과 교단의 존폐
            • (1) 억불정책의 전개
            • (2) 양종과 승과의 폐지
          • 2) 도첩제와 부역승
            • (1) 도첩제의 강화와 폐지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4) 민간의 불교신앙
            • (3) 불탄일 연등과 수륙재
          • 5) 사찰재산과 승려의 경제활동
          • 6) 당시의 고승들
            • (1) 자초와 기화
            • (2) 세종대의 명승들
            • (3) 세조대의 고승들
        • 3. 도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동국여지승람≫의 편찬

 ≪동국여지승람≫의 편찬과 조선 초기의 지리지 편찬의 완결을 뜻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 초기에는 세종 7년(1425)에≪경상도지리지≫의 편찬을 비롯하여 세종 14년에는≪8도지리지≫가 편찬되었고, 이를 보충하여 단종 2년(1454)에≪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되었다. 그 후 세조는 集賢殿 직제학 양성지에게 지도 제작과 지리지 편찬사업을 맡겼다. 양성지는 단종 2년에≪경기지리지≫를 편찬하였고 단종 3년에는≪평안도지리지≫를 편찬하였으나, 세조의 죽음으로 지리지 편찬사업도 일시 중단되었다. 예종 즉위년에 양성지는 다시 8도지리지 편찬의 명을 받고 지리지 편찬에 착수하였다. 그는 전국에 지리지 편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는데, 그 작업의 일부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이≪경상도속찬지리지≫이다. 양성지는 10년간의 노력끝에 성종 9년(1478)에≪8도지리지≫편찬을 완료하였다.355) 그 전에 양성지는 세조 13년(1467)에≪海東姓氏錄≫을 편찬하였으며,356) 徐居正 등은≪東文選≫을 편찬하였다.357) 이러한 편찬작업의 기초 위에≪동국여지승람≫이 성종 12년에 50권으로 편찬되었다.358)≪동국여지승람≫은 양성지의≪8도지리지≫와≪해동성씨록≫, 서거정 등이 편찬한≪동문선≫등을 종합하여 송나라 祝穆의≪方輿勝覽≫체재에 맞추어 편찬된 조선 초기의 지리지 편찬의 완결편이다.

 이 때 편찬된≪동국여지승람≫은 바로 간행되지 않고 초고본 상태로 보존되다가,359) 성종 16년에 金宗直 등에게 명나라의≪大明一統志≫체재에 맞추어 개편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책은 축목의 책을 모방하여 중요한 사적을 들고 겸하여 시문을 널리 찾아 뽑아서 기록하였으니 국가에 진실로 유익한 문헌이나, 그 중에 산천과 옛날 사실이 더러 빠진 것이 있고 여러 사람이 지은 시문에는 지저분하고 혼잡스러운 것이 자못 있을까 염려되니 너희들은 마땅히 교열하고 수정하여 精하고 적당하도록 힘쓰되 그 범례는 한결같이≪대명일통지≫를 법 삼으라(≪東國輿地勝覽≫金宗直 跋).

 위와 같이 성종의 지시내용은 첫째 편찬체재를 바꾸라는 것이었다. 종래≪동국여지승람≫은 축목의≪방여승람≫체재인데 이를≪대명일통지≫체재로 개편하라는 것이다. 둘째 산천과 사적의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 셋째 시문의 번잡을 피하여 가려 뽑으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성종의 지시를 받은 김종직 등은 경복궁의 홍문관에 局을 개설하고 개편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작업은 旱災 때문에 곧 중단되었다가, 그 이듬해인 성종 17년(1486) 8개월의 작업 끝에 끝났다. 산천·성곽·누대·사묘·사찰 등은 計吏와 邸主에게 물었고, 건치·풍속·인물·고적은 모든 史書와 문서·문집을 대조하여 그릇된 것은 바로잡고 빠진 것은 보충하여 첨가하였다. 이렇게 하여 삭제한 것도 한둘이 아니지만 보탠 것도 매우 많으므로 다시 개정하여 55권으로 만들었다.360) 이 개편작업을 주관하였던 김종직도 “비록 감히≪일통지≫에는 견주지 못하나≪방여승람≫에 비교하면 실로 부끄러움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후세에 많은 혜택을 주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361) 이 때 김종직 등이 교정한≪동국여지승람≫은 더욱 다듬어져 그 이듬해인 성종 18년 2월에 조정에 바쳐졌다.362) 성종은 이≪동국여지승람≫을 바로 刊印하도록 하명하였고, 인쇄본≪동국여지승람≫은 성종 18년 2월에 초간되었다.363)

 그러나 2개월 후 김종직은 경연석상에서≪동국여지승람≫편찬의 문제점 두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산천의 위치에 대한 기록은 읍인들에게 물어서 기록한 것일 뿐 측량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과 차이가 많다는 것이고, 둘째 토산물은 土貢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읍인들이 꺼려서 실상을 말해주지 않아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성종은 토산물은 중국과의 조공문제도 있기 때문에 소략해도 괜찮지만 산천의 위치가 잘못된 점은 반드시 고쳐야 하므로,≪동국여지승람≫의<山川志>를 각 도의 감사에게 베껴서 보낸 후 그 회답을 기다려 정확하게 개정하도록 지시하였다.364) 그러나 이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어 산천의 위치를 어떻게 바로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연산군 3년(1497)에 成俔·李德崇·任士洪 등에게≪동국여지승람≫의 개정을 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노정의 里數, 題詠의 정확, 산천과 사적의 빠진 것 등을 보충하는 것이었다. 성종대에 산천의 위치를 시정한 것이 연산군대에 개정하면서 보완된 듯하다. 이 개정작업은 2년 후인 연산군 5년에 끝났다. 2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미루어 상당부분 개정된 듯한데, 임사홍의 발문365)을 제외하면 뚜렷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개정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중종이 즉위한 후 연산군대의 잘못된 관제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지방 군현의 연혁에 변화가 많았으므로≪동국여지승람≫의 개편작업이 자연스럽게 거론되었다. 중종은 23년(1528)에 李荇 등에게 연산군대의 관제를 경신하도록 하였다. 또 군현의 이동과 분할을 아직 개정하여 기록하지 못하였으며, 그 동안에 생긴 효자·열녀의 행실과 아름다운 시문을 새로 가려 기록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 그런 것을 상고하고 모아서 증보하여 바치도록 하였다.366) 그후 校書館에 편찬청을 설치하고 자료를 모았으나 旱災 때문에 두 번 중지되었다가 중종 25년에 비로소 편집할 수 있었는데, 그 분량은 5권이었다.367) 편집책임자였던 이행은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별도의 책을 만드는 것보다 이전에 편찬된 책에 새로 첨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건의하였고 그대로 시행되었다. 특히 책을 따로 만든다면 계통과 두서가 없어지기 때문에 전에 만든 기록에 첨가해 넣어서 앞의 것을 쫓아 계승하고 옛것에 따라 더함으로써, 한 시대에 편집한 것 같고 한 솜씨에서 나온 것 같도록 하였다.368) 이≪신증동국여지승람≫은 중종 25년에 개편작업이 완료된 후 중종 26년 6월에 간행되었다.369) 이와 같이 3차의 인출을 거듭한≪동국여지승람≫은 민간의 소장을 금했기 때문에 수효가 넉넉하지 못하였고,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로는 더욱 희귀해져서, 광해군 3년(1611)에 중종대의 신증본을 그대로 복간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 필요성은 편목의 설명에 잘 나타나 있다. 연혁을 먼저 쓴 것은 한 고을의 흥폐를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며, 풍속은 한 고을을 유지하는 바이며, 形勝은 四境을 지탱하는 바이므로 명산대천으로 經緯를 삼고 높은 성과 큰 보루로 襟抱를 삼기 때문이다. 廟祀는 祖宗을 높이며 신기를 존경한 바이요, 궁실은 상하의 구분을 엄하게 하고 위엄과 무거움을 보이기 위함이며, 5部를 정한 것은 坊里를 구별한 것이며, 여러 관청을 설치한 것은 모두 사무를 보는 곳이기 때문이다. 능침은 조종을 깊이 편안하게 하는땅이며, 祠와 壇은 국가의 중요한 전례이기 때문이며, 학교는 한 나라의 인재를 기르기 때문이며, 旌門은 3강의 근본을 표창하는 것이다. 사찰은 역대로 그 곳에서 복을 빌던 곳이며, 祠墓는 선현을 사모하여 추숭하는 곳이다. 토산은 貢賦가 나오는 바요, 창고는 공부를 저장하는 곳이다. 누대는 때에 따라 놀며 사신을 접대하는 곳이요, 院宇는 행려객들을 쉬게 하고 도적을 금하기 위함이며, 관방을 웅장하게 한 것은 暴客을 방비하기 위함이며, 站驛을 벌여 놓은 使命을 원활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며, 인물은 과거의 어진이를 기록한 것이요, 名宦은 장래에 잘 하기를 권장하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題詠 항목을 설정한 것은 物象을 읊조리며 王化를 노래하여 칭송함은 시와 문 밖에 없기 때문이다.370)

 위와 같이 편찬된≪동국여지승람≫은 8도의 지리가 마음과 눈에 환하여 문을 나가지 아니하고도 손바닥을 가리킴을 보는 것 같이 자세하여,371) 반드시 장차 왕화가 만세토록 이어질 것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체재는≪大明一統志≫대로 편찬하였다. 두 지리지의 편목을 비교하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동국여지승람≫의 전체 편목은 31개이고≪대명일통지≫는 19개인데, 이 가운데 두 지리지의 공통되는 편목이 16개나 되며 그 명칭도 동일하다. 그렇지만≪동국여지승람≫이≪대명일통지≫의 단순한 모방에 그친 것은 아니었다.≪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들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대명일통지≫의 체재를 원용한 것이다. 즉≪동국여지승람≫의 총 편목수가≪대명일통지≫보다 12개가 더 많다거나,≪대명일통지≫에서 도교와 불교를 총칭하여 寺觀이라 한 것을≪동국여지승람≫에서는 불교에 국한시켜 佛宇라고한 것, 성씨·역원·봉수항 등이≪동국여지승람≫에만 설치되어 있는 것 등은 편찬자들이 단순히≪대명일통지≫의 체재를 따르려고만 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표 1>참조).372)

     編目


地理志


沿




























關 梁















東國輿地勝覽  
大明一統志                        
     編目


地理志












佛 宇

































 


東國輿地勝覽        
大明一統志          

<표 1>≪東國輿地勝覽≫과≪大明一統志≫의 編目比較

 ≪동국여지승람≫은 세종대 편찬된≪8도지리지≫와≪세종실록지리지≫, 성종대의≪8도지리지≫등을 종합하고, 명의≪대명일통지≫의 영향을 받아 편찬된 조선 초기 지리서의 종합편이다. 이 지리서는 정치·경제·군사 등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사항들을 총망라했을 뿐 아니라 인물·시문 등을 수록하여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고 왕화가 만세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의도에서 편찬된 것이다.

<李相泰>

355)≪成宗實錄≫권 138, 세종 13년 2월 임자.
356)≪世祖實錄≫권 41, 세종 13년 정월 임진.
357)≪成宗實錄≫권 55, 성종 6년 5월 을묘.
358)≪東國輿地勝覽≫徐居正 序.
359)≪成宗實錄≫권 139, 성종 13년 3월 갑오.
360)≪東國輿地勝覽≫金宗直 跋.
361) 위와 같음.
362)≪成宗實錄≫권 200, 성종 18년 2월 무인.
363)≪成宗實錄≫권 200, 성종 18년 2월 경신.
364)≪成宗實錄≫권 202, 성종 18년 4월 신묘.
365)≪東國輿地勝覽≫任士洪 跋.
366)≪新增東國輿地勝覽≫洪彦弼 跋.
367) 위와 같음.
368)≪中宗實錄≫권 62, 중종 23년 8월 기유.
369)≪新增東國輿地勝覽≫洪彦弼 跋.
370)≪東國輿地勝覽≫徐居正 序.
371)≪新增東國輿地勝覽≫李荇 箋.
372) 鄭杜熙, 앞의 글(1976b).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