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한 과학 기술의 어제와 오늘
[필자]
김근배
1998년 9월 1일에 남한의 언론들은 앞을 다퉈 “지난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남한과 미국·일본의 비난 속에서도 침묵을 지켜오던 북한 당국은 9월 4일자 중앙 통신을 통해 “지난달 31일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였다.”고 보도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은 이 인공위성이 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주장하였고, 북한은 ‘광명성 1호’가 궤도를 무사히 돌면서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것이 궤도 진입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인공위성 ‘광명성 1호’는 당시 북한이 내일이라도 무너질 양 들떠 있던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과학 기술과 그를 뒷받침할 국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94년 국가 주석 김일성이 사망한 뒤 북한은 여러 모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연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인공 위성 발사라는 불투명한 사업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기울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적인 측면, 즉 “광복 직후부터 공산주의 사상만큼이나 과학 기술의 육성을 귀중하게 여겨 왔다.”는 사실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필자]
김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