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 현재의 우리 경험
인간 신체에 대한 근대적 인식 속에서 남녀 간 성차의 근거를 생물학적 차이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남성에게 없는 여성의 월경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월경은 부정(不淨)한 것에서 과학적으로 파악 가능한 병리학적 대상이 되었다. 이는 서구와 일본의 근대 의학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도 전파되었고, 여성 신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라는 차원으로 유입되었다. 이러한 의학의 시선은 여성성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월경은 여성의 성적 변화를 나타내는 중요 징후이자 정신상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그러기에 외부 세균이 침입하지 않도록 위생적인 생활 태도를 가져야 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자극을 주는 일상생활도 제한되어야 하였다. 또한 여성 간에 공유되고 전달되었던 지식은 의사가 의학적으로 정립한 지식으로 대체되어 갔다.
월경에 대한 병리학적 시선은 여성에게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틀로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월경은 쉬쉬하거나 터부시할 것이 아니 라 과학으로서 말해야 하는 신체상 변화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에 설명과 치료를 구하게 되었고, 차별적인 편견이 전제된 여성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월경에 대한 인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학적 내용 변화와 성차를 둘러싼 권력 관계에 따라 설명 방식은 계속 변하였다. 예를 들어 월경은 2차 성징이자 임신 가능한 몸이 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 남성의 사정과 월경을 사춘기의 상징으로 대비시키는 것, 월경은 사정과 달리 수동적이며 조용히 치러야 하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여전히 신체 결정론적 인식에 근거하고 있거나 모성 기능을 강조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월경에 대한 병리학적 담론이 모성 담론과 연결되어 생리 휴가라는 형태로 사회 문제화되었던 일본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서는 동일선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계급 문제, 민족 문제의 차원에서 여성 노동자의 처지를 고민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광복 후 근로 기준법 마련 과정에서 일본법을 모델로 생리 휴가가 도입되었지만, 사회적 담론 형성은 없었고 이후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았다.
국가와 자본에 의한 급진적인 근대화 정책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근로 기준법을 이행할 것을 주장하였고, 생리 휴가는 근로 기준법에 규정된 법정 휴가라는 차원에서 요구하였다. 생리 휴가는 그 자체가 강조되기보다는 1960∼1970년대 노동 운동 속에서 열악한 노동 조건을 변화시키고 사문화된 법적 규정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 속에 위치하였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모성 보호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생리 휴가도 모성 관련법 조항의 하나로서 제기되었다.
이러한 여성 노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생리 휴가는 실체를 가진 권리로서 자리 잡지 못한 측면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생리 휴가가 가졌던 의미와 변화 과정을 통해 볼 때, 월경에 따르는 번거로움, 고통 등을 공공의 관심으로 만드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 여성 노동자 자신의 건강과 노동권이라는 측면에서 권리로서 자리 잡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1999년부터 ‘월경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욕망을 둘러싼 여성 문화 운동이 활발해졌고, 그중 하나로 생긴 것이다. 사회적 금기로 여겨 온 월경에 대해 여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월경을 경험하자는 시도이다. 또한 논의 범위를 확장하여 장애인, 트렌스젠더, 무월경 여성 들의 경험을 다루는 등 다양한 여성의 경험을 함께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월경 경험을 표현하고 다른 여성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열등했던 것, 숨겨야 했던 것,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 들을 재의미화하여 긍정적 가치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월경을 ‘찬양’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본다. 월경을 통해 여성의 몸과 여성성을 긍정하는 것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월경을 여성의 재생산이나 모성의 찬양과도 연결 짓지 않는다. 여성의 몸은 더 이상 부정적 체험에 기초한 보호나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수용과 주체적 인식을 바탕으로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433)
여성의 실제 경험과 그러한 경험을 매개하는 여성의 몸에 새겨진 문화적 의미 사이에는 늘 긴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의 고정된 성역할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깨끗함과 센스라는 차원으로 여성의 월경을 상품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자본의 논리, 여성 특유의 어떤 성질을 자아낸다고 말하는 의학의 논리, 귀찮고 조용히 해치워야 하는 것으로 의미화하는 남성주의적 논리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성’도 아닌 ‘임신’도 아닌 여성 몸의 사이클로서 자신의 몸과 경험에 대해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는 상황을 확보해야 한다. 여성의 자율성과 신체적 안전을 위해 활용할 여지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433) | 박선영, 「여성의 몸, 우리가 말한다!─90년대 중반 이후 전개된 여성 문화 운동─」, 『여성과 사회』 15, 창작과 비평, 2004, 220∼22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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