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사찰의 공간 구성과 석조물의 상징3. 석조물에 등장하는 각종 조식

사천왕

사천왕(四天王)은 사방을 지키는 신으로, 동방 지국천(持國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서방 광목천(廣目天), 북방 다문천(多聞天)으로 불린다. 원래는 인도에서 신화 시대부터 호세신(護世神)으로 존재하였으나 불교에 수용되어 호법신(護法神)이 되었다.18) 서방 광목천은 수미산의 서방정토를 지키며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신이며, 북방 다문천은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며 항상 설법을 듣는 신으로 각기 임무를 띠고 있다. 이처럼 사천왕상은 불국토를 수호하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활발히 조성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신장상(神將像)이었으며, 특히 9세기에는 인왕상(仁王像)에 대신해서 대표적인 수호신으로 등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19)

<사천왕상(지국천)>   
감은사지 3층 석탑의 서탑에서 나온 사리기(舍利器)의 네 면에 부조된 사천왕상이다.
<사천왕상(증장천)>   
<사천왕상(광목천)>   
<사천왕상(다문천)>   

그런데 현존하는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국립 중앙 박물관과 국립 경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사천왕사지 출토 벽돌이다. 이들은 비록 상부가 파괴되어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지만, 활달하고 사실감 있게 묘사한 하체의 표현에서 능숙한 조각술을 볼 수 있다. 한편 석조물에 나타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감은사지 서3층 석탑에서 조사된 사리기(舍利器)의 사천왕상이다. 이 석탑은 감은사(感恩寺)가 창건된 682년(신문왕 2)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곳의 사천왕상이 우리나라 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20) 따라서 사천왕상은 7세기 후반에는 석탑 내에 봉안된 사리 장치의 수호신으로 조상되다가 부도와 석등에까지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지국천)>   
운문사 작압전 안에 모셔 놓은 석조 여래 좌상의 좌우에 각각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는 사천왕상 중 지국천이다. 본디 운문사에 세웠던 전탑의 1층 탑신 몸돌 네 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뒤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다문천)>   
운문사 작압전 안에 모셔 놓은 석조 여래 좌상의 좌우에 각각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는 사천왕상 중 다문천이다.

사천왕은 석탑에서는 대부분 초층 탑신에, 부도와 석등에서는 중심부인 탑신석과 화사석에 부조되고 있다. 따라서 사천왕상은 각 조형물의 중심부에 사방을 수호하는 신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원인은 결국 초층 탑신 내지 신부가 바로 주 건축 공간이기 때문에 이 주 공간의 사방을 수호하는 임무를 띠고 배치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국토와 대중을 위하고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는 사천왕의 임무를 생각할 때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혼란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중앙 정부로서는 정치적 혼란을, 평민은 계속되는 기근, 재해에 따른 생활고를 부처님의 힘에 의지하고, 사찰에서는 계속되는 농민, 초적(草賊)의 반란으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다양한 기능을 지닌 사천왕을 조식하였다고 생각된다. 결국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처한 시대적 상황이 사천왕 신앙을 성행시켰으며, 따라서 석탑을 비롯한 부도와 석등은 불교의 교리적인 면 외에도 사천왕을 조식함으로써 상하 계층의 결속을 위한 구심점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여러 옆면에서 볼 때 석조물에 등장하는 사천왕 조식은 석탑의 장엄을 위한 것이 호국(護國)·호법(護法)·호불(護佛)의 기능을 부여 해 준 신장으로 생각된다. 석탑과 부도 석등에 조식된 사천왕은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지녀 앞에서 언급한 여러 기능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생동감 있는 조각 기법은 당시 사람들의 예술적인 능력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다.

[필자] 박경식
18)진홍섭, 『한국의 불상』, 일지사, 1976, 47쪽.
19)문명대, 「신라 사천왕상의 연구-한국 탑조상(塔彫像)의 연구(2)-」, 『불교 미술』 5, 동국대학교 박물관, 1980, 18쪽.
20)김재원·윤무병, 『감은사지 발굴 조사 보고서』, 을유문화사, 1961, 9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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