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1장 사찰의 공간 구성과 석조물의 상징3. 석조물에 등장하는 각종 조식

인왕

<인왕상>   
석굴암 주실 입구에 부조된 인왕상이다.
<인왕상>   
분황사 모전 석탑의 감실 문에 조성한 인왕상이다.

인왕(仁王)은 이왕(二王) 또는 이천왕(二天王)이라 하기도 하고, 금강역사(金剛力士) 또는 밀술금강(密述金剛)이라고도 하며, 집금강(執金剛), 야차(夜叉), 나라연천(那羅延天) 또는 불가월(不可越)의 상향(上向)이라고도 하는 등 다양한 명칭을 지니고 있으며 원래는 인도에서 재래의 문을 지키던 신을 불교화시킨 호법신이다.21) 인왕은 634년(선덕여왕 3)에 건립된 분황사 모전 석탑에서 처음으로 석탑의 장엄에 사용된 이래 8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조성되다가 9세기에 이르러 사천왕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현재 신라시대 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탑의 부조 인왕상은 모두 11탑의 인왕상을 헤아릴 수 있고, 연기 출토 비상(碑像) 등이나 석굴암의 인왕상, 황룡사 목탑 사리함 인왕상까지 포함시킨다면 모두 19종류이다.22) 이 상은 사천왕과는 달리 주로 탑에서만 그 예를 볼 수 있어 널리 사용된 조식이라 할 수 없다. 아마도 문을 지키는 단순한 기능을 지닌 탓에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었던 한계가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탑에 표현된 인왕상은 대부분 초층 탑신에 조성되고 있어 이 역시 봉안한 사리의 수호와 공양에 근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왕은 대개 상반신은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고, 양손은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어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아울러 분노에 가까운 얼굴이 표현되어 사악한 무리의 근접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필자] 박경식
21)문명대, 「한국 탑부조(조각)상의 연구(1)-신라 인왕상(금강역사상)고-」, 『불교 미술』 4, 동국대학교 박물관, 1979, 39쪽.
22)문명대, 앞의 글, 1979,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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