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3장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원인이 본 우리2. 원의 이중적 고려관과 중화적 세계관사위의 나라와 독립 왕조

부정론의 대두

한편 입성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러 근거를 들어 고려의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고려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는 몽골이나 중원과 다른 고려의 ‘이질성’을 강하게 표출하거나 후진성을 강조하는 논리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왕관(王觀)은 “입성론자가 헛된 이름만 숭상하여 진실로 폐단이 남음을 살피지 못하였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입성론을 반대하였다. 첫째, 고려는 원나라의 동쪽 울타리에 있는 나라로 여러 세대 동안 공로를 세웠다. 둘째, 풍토와 습속이 다른 고려를 중국의 법으로 다스리면 어긋날 뿐이다. 셋째,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이 빈곤하여 호구를 조사하고 세금을 징수하면 고려의 백성만 도 망시킬 뿐이며 원나라의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넷째, 고려를 내성(內省)으로 삼더라도 현재 고려의 땅을 방비할 병력을 조달받을 방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187) 즉, 왕관은 입성 반대론을 펼치는 과정에서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았든 고려의 후진성이나 풍토의 이질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 점에서 입성론의 찬성 여부가 고려에 대한 긍정적 인식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준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고려의 독자성을 강조하면서도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던 원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수(姚燧)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310년에 쓴 ‘고려심왕시서(高麗瀋王詩序)’에서 요수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는 천하의 여러 나라와 달리 고려는 종묘의 제사, 형벌권·징세권 행사 등에 국가적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칭송하였다.188) 그러나 한편으로 충선왕이 그에게 시문(詩文)을 요구하자 “저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는 오직 화리(貨利)만을 중하게 여기니 나는 능히 그들을 경멸한다.”고189) 탄식하였다.

<『지정조격(至正條格)』>   
1346년(충목왕 2)에 발간한 원나라 법전(法典)이다. 2003년 경주시에 있는 경주 손씨(慶州孫氏) 종가(宗家)에서 발견되었다. 원나라는 그들의 법인 『지원신격』과 『지치통제』를 강제로 고려에 적용하여 고려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몽골적 세계 질서에 완전히 편입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지정조격(至正條格)』>   

이렇게 이중적이며 중첩적이었던 고려의 지위는 원나라의 통제가 강화될수록 일원적 지위로 수렴되어 갔다. 고려의 예속성(隷屬性)이 더욱 강화되어 갔던 것이다. 그것은 고려의 관제 운영뿐 아니라 형정(刑政)까지도 통제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고려의 습속을 바꾸고자 하였던 시도에서 나타난다. 고려에 파견된 게이충(揭以忠)은 몽골적 천하 질서에 의거하여 고려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견지하였던 원나라 관인 이었다. 그는 1337년(충숙왕 복위 6)에 “나라의 명령이 나오는 문이 많으면 백성이 피곤해져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현재 천하가 한집안이 되었는데, 어찌하여 중국 조정의 법을 그대의 나라(東國)에서는 행하지 않는 것인가?”라고190) 하며 원나라의 법인 『지원신격(至元新格)』과 『지치통제(至治通制)』를 고려에 강제적으로 행하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천하에 동일한 법률을 통용시킴으로써 몽골적 세계 질서를 더욱 확장하려는 것이었으며, 고려를 그러한 체제에 완전히 편입시키려는 의도였다. 또한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원나라의 신분제에 따라 고려의 습속을 강압적으로 바꾸려던 시도나 1315년(충숙왕 2)에 황제의 명령으로 고려의 귀인(貴人)이나 천인(賤人)이 입어야 할 의복 색깔까지 정하게 된191) 사실 등은, 고려를 실질적인 속령(屬領)으로 전환하려는 원나라의 움직임 가운데 하나였다고 여겨진다.

[필자] 이정란
187)『고려사』 권125, 열전38, 유청신(柳淸臣).
188)김상기, 「이익재의 재원 생애에 대하여」, 『대동 문화 연구』 1, 성균관 대학교 대동 문화 연구원, 1964 ; 장동익, 「신자료를 통해 본 충선왕의 재원 활동」, 『역사 교육 논집』 23, 역사 교육 학회, 1999.
189)『원사』 권174, 열전61, 요수(姚燧) ; 장동익, 앞의 책, 1999, 223쪽.
190)이곡, 『가정집』 권9, 송게이문서.
191)『고려사』 권34, 세가34, 충숙왕 2년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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