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 음반과 전통음악의 대중화
1928년을 전후하여 한국 음반업계는 중요한 전환기였다. 경성에 일본 음반 회사의 지점이 설치되기 시작하였고 1928년부터 마이크로폰으로 증폭한 전기녹음 방식이 도입되면서 음질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 음반은 기록의 수단을 넘어서서 음악 감상의 수단으로 자리잡아 본격적인 대중 매체의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도시의 소비자 대중을 상대로 새로운 음악환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반적인 음악의 방향은 일본의 유행음악의 강력한 영향 하에서 전통음악의 기반은 서서히 약화되고 대중음악의 비율이 전체 시장을 압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녹음방식 도입과 대중문화의 본격적 성장 이전 시기였던 20세기 초반부터 20∼30년 간은 제한된 형태로나마 근대식 극장과 함께 유성기 음반이 도시를 중심으로 전통음악을 보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음반산업이 성장하는 초기 시절인, 1910년대와 192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반의 대부분은 전통음악이 차지하였다. 예컨대 1911년 일축에서 제작된 음반(독수리표 로얄레코드 NIPPONOPHONE)에는 판소리와 가야금의 명인 심정순, 경서도 명창 박춘재, 문영수, 김홍도, 피리 명인 유명갑 등의 녹음이 담겨 있다. 20세기 초반 전통음악의 실제 소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210)
1913년에는 판소리 명창 송만갑, 경서도 명창 박춘재, 문영수, 정가명창 조모란, 김연옥 등의 녹음이 수록되었고 1915년에는 미국 빅타 회사가 주관하여 판소리 명창인 김창환, 이동백 등의 음반이 제작되었다. 이어 1920년대 초반에는 경서도 명창 김일순, 김연 연, 박채선, 이류색, 유운선, 조국향, 한부용, 남도 명창 강남중, 신옥란, 신진옥, 신연옥 등 여성 가창자들 다수가 일축(닙보노홍)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이 시기 음반의 특징은 대부분 민요나 잡가를 장기로 하는 기생들과 판소리 명창들이 녹음하였다는 점이다.
이렇듯 전통음악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극장과 음반을 중심으로 전통사회의 신분과 공간, 장르의 제한과 구별에서 벗어나 도시의 불특정 다수에게 향유되는 전통음악의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궁중음악, 민간풍류, 판소리, 잡가, 가곡 등 전체 전통음악의 판도를 놓고 볼 때 전통예술의 대중화라고 설명할 수 있을 지언정 전통음악이 곧 대중음악이 되는 전통예술의 대중음악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통속민요의 일부는 양악적 요소와 융합하여 혼종적(hybrid) 음악양식으로 대중음악의 영역에 편입되는 양상이 일어난다.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은 유성기 음반을 겨냥한 본격적인 대중가요의 탄생과 그 전개과정을 설명할 때 포함시키고자 한다.
210) | 송방송, 「일제전기의 음악사연구를 위한 시론-일본축음기 음반을 중심으로」, 『한국음반학』 10, pp.354∼376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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