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4 전환기의 삶과 음악02. 서양 음악의 유입

창가에서 가곡으로

<서양 음악의 선구자 홍난파(1898∼1941)>   

우리나라에서 가곡은 원래 조선시대에 발달한 <초수대엽>, <이수대엽>과 같은 전통 성악 장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가곡은 <옛동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등 소위 ‘한국 가곡’이라 일컬어지는 노래를 의미한다. 이 두 장르는 가곡이란 말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음악 어법에 있어서는 확연히 다르다. 전통 가곡은 말 그대로 전통 음악 양식으로 이루어진 성악 장르를 가리키는데 비해 한국 가곡의 줄임말로 일컬어지는 가곡은 서양 조성 음악의 한 갈래인 예술가곡을 의식하며 창작된 근대적 성악 장르를 의미한다. 후자는 1920년대 들어 창가가 동요, 가곡, 대중가요 등으로 분화 발전하는 가운데 예술적인 노래 양식으로 정착된 음악 장르를 일컫는 용어라 할 수 있다. 1929년에 출판된 『안기영 작곡집 제1집』은 초기 예술가곡의 예라 할 수 있다.

초기 예술가곡 중 가장 많이 애창된 노래는 홍난파의 <봉선화>이다. 원래 이 곡은 1920년에 <애수>라는 바이올린 곡으로 발표되었다. 1926년에 김형준이 ‘한국의 민족혼’을 상징하는 봉선화에 대한 가사를 붙였고 제목도 <봉선화>를 거쳐 <봉숭아>로 바뀌어 전해지고 있다.222) 홍난파는 이 외에도 <봄처녀>, <옛 동산에 올라>, <사랑>, <장안사>, <금강에 살으리랏다> 등 사람들에게 널리 애창되는 가곡을 다수 발표하였다.

<서울시 종로구 홍파동 홍난파 가옥>   
독일 선교사가 1930년에 지은 건물을 홍난파가 인수하여 6년간 말년을 보낸 집으로, 이곳에서 대표곡들을 작곡하였다. 종로구청에서 인수하여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홍난파 가옥 내부 전시실>   

1920년대 우리나라 가곡을 개척한 작곡가들은 홍난파 외에도 현제명, 안기영, 박태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선교사에게 음악을 배웠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대표적인 가곡으로는 박태준의 <동무생각>, 안기영의 <그리운 강남>, 현제명의 <고향생각>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가곡은 창가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단순하고 소박한 초기 한국 가곡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이 유절 형식이며 가사에서 서정성과 낭만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한국말의 특징과 서양 음악의 문법이 충돌하여 가사와 음악의 액센트가 잘 맞지 않는 등 전문적인 예술가곡으로서의 면모보다는 딜레탕티즘으로 표현되는 교양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20년대와 30년대 정착된 한국 가곡은 동요가 그랬듯이 비록 서양 음악적 어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전체에 걸쳐 전 국민적으로 친근하고 익숙한 노래로서 민요적인 기능을 톡톡히 해왔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필자] 이소영
222) 민경찬, 앞의 책,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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