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편년
한국의 신석기시대는 대략 기원전 10,000∼6,000년 사이에 古新石器期나 빗살무늬토기가 성행한 新石器期로 구분된다. 고신석기기에 해당되는 것은 현재 제주도 고산리의 것이 유일하지만, 구석기 이후 본격적인 신석기시대의 과도기적 문화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1,000년까지 번성하였던 빗살무늬토기문화는 지역적으로 서해안지역, 동북해안지역, 그리고 남해안지역의 3개 지역군으로 나누어지며, 이들 지역은 각각의 토기전통을 지닌 채 발전하였다. 이렇듯 지역적 특성이 강한 신석기시대는 서해안지역에서는 3기로, 동북해안지역은 5기로, 남해안지역은 5기로 각각 세분된다.
이러한 각 지역군의 분기들을 아래의<표 1>에서와 같이 탄소연대와의 검토를 통해 상호 비교함으로써 한국 신석기시대는 크게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가) 고신석기시대(B.C.10,000∼B.C.6,000)
제주도 고산리에서 갈색민무늬토기가 50여 점 출토되었다. 무늬는 없으나 토기를 빚어 만들 때 풀잎이나 갈대를 섞어 만든 자국이 선명하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는 없으나 아카호야화산재층(B.C.6,800∼B.C.6,300)보다 아래층에서 출토되고 있어, 그 연대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의 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나) 전기 신석기시대
전기 전엽(B.C.6,000∼B.C.5,000):한반도 육지에서 최고의 신석기토기군은 동북해안지역에 해당되는 서포항 Ⅰ기와 오산리 하층, 그리고 남해안지역의 제Ⅰ기(朝島期)층과 같이 동해에 면한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서포항 Ⅰ기층의 토기는 구연부에만 압날기법으로 시문하고 나머지 부위는 민무늬로 된 납작밑토기가 주체를 점하고 있다. 강원도 오산리 하층도 납작밑 기형에 구연부에만 시문하고 있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오산리의 탄소연대가 대략 B.C.6,000∼B.C.5,000년에 집중되어 있어 우리 나라의 육지에 있어서 신석기시대의 최고연대를 보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존속하였다고 추정되는 남해안지역의 제1기(조도기)층에서는 토기의 형태가 납작밑인 원시민무늬토기와 융기문토기가 출토되었는데, 후자가 압도적 다수로서 주체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융기문토기는 경남 남해안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있는 토기군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이 전기 신석기시대 전엽에 해당되는 유적은 한반도 동해안가에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토기상에 있어서도 서한토기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형적 빗살무늬토기와 차이가 많다. 또한 연대상에 있어서도 신석기시대의 초기에 해당되어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가 성행하는 이전의 단계로 구분, 조기로 설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은 상태에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일단 전기의 전엽으로 구분하였다.
전기 중엽(B.C.5,000∼B.C.4,500):전기 중엽은 동해안에 있어서는 전기 전엽의 동한토기 Ⅰ류가 계속되고, 서해안에서는 서한뾰족밑유형토기가 출현하지만 남해안지역에서는 융기문토기와 남한 Ⅱ류의 지두문토기가 이 지역에 국한, 성행하였다. 토기 이외에는 아직 그 문화내용의 상세한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전기 전엽의 양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 후엽(B.C.4,500∼B.C.3,500):전기 후엽에는 서해안지역에서는 종래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라고 불렸던 구분계 전면시문형 서한토기가 성행한다. 이는 동해안지역에 있어서는 서포항 Ⅱ기, 남해안지역의 제Ⅲ기인 부산기 등이다.
서포항 Ⅱ기의 토기는 모두 납작밑(平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목이 달린 형태도 있다. 이 Ⅱ기층 토기류는 서포항 Ⅰ기류의 시문이 구연부에 국한된 것과는 달리 기복부의 상반부까지 시문된 것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Ⅰ기와 비교해 볼 때, 시문면적이 증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연부와 기복부에 시문된 문양의 구성 양식은 동일문양으로만 시문된 것과 서로 다른 문양요소를 결합시킨 것이 있다.
서해안 Ⅰ기(전기)의 토기는 바닥이 뾰족밑(尖底)인 포탄형으로 구연부, 기복부 그리고 바닥에 각각 서로 다른 문양요소를 시문한 것이 주체를 점한다. 구연부에는 주로 평행밀집사단선문, 기복부에 어골문 또는 그 변형이라 생각되는 사격자문·구획문 그리고 바닥에는 평행사선문 등으로 시문한 것이 많다. 이중에는 구연부와 기복부의 문양대 사이에 파상선문 등의 종속구연부문양을 삽입한 것이 있다.
남해안지역 Ⅲ기인 부산기토기는 그 문양기법에 있어 압인기법에 의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런 기법에 의하면 구연부위에 소형어골문을 시문하고 기복부와 바닥에는 민무늬로 한 둥근밑(圓底)토기로 대표된다.
다) 중기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중기(B.C.3,500∼B.C.2,000)에 들어서면 서해안지역의 경우는 Ⅱ기에 해당하게 된다. 전형적 빗살무늬토기에 변화가 생겨 시문면적이 축소된 구분계 바닥무늬 생략형식과 기복부에 전용으로 시문되던 어골문이 구연부까지 시문된 동일계 바닥무늬 생략형식의 토기가 성행한다.
동해안지역의 토기 중 서포항 Ⅲ기에서는 종래의 납작밑토기 외에 굽이 달리고 기복부가 부풀며 목이 달린 유경호류와 마연토기, 융기문토기가 새로이 출현하며 문양이 다양화된다.
남해안지역의 Ⅳ기인 두도기에서는 전기 초부터 성행했던 융기문토기가 거의 사라지고 토기 표면의 일부 혹은 전면에 걸쳐 단사선문·사격자문·횡주어골문·조대문 등 부위별로 다른 문양을 굵게 시문한 남해안의 특징적인 태선어골문토기가 성행한다. 이는 세부적인 차이는 있으나 서한토기와 유사성이 있다.
라) 후기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 후기(B.C.2,000∼B.C.1,000)는 서해안지역의 Ⅲ기, 동북해안지역의 Ⅳ기와 Ⅴ기, 그리고 남해안의 Ⅴ기가 여기에 속한다.
서해안지역에서는 전형적 빗살무늬토기가 퇴화되어 구연부에만 시문을 하는 토기가 성행되며 동북해안지역 및 남해안지역에서도 시문면적이 축소화되는 경향이 보인다. 특히 동북해안지역의 경우 민무늬토기의 증가와 함께 번개무늬토기, 붉은색토기가 출현하며, 남해안지역의 경우 이중구연토기가 나타난다.
<任孝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