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동식물화석연구의 효용성과 의의
동식물화석연구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당시의 자연환경과 기후를 알아내는 것이 첫째 목표이다. 옛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기후와 환경에 제약을 많이 받았을 것이고, 한편 이를 극복하려 하였을 터이니 당시의 자연환경을 안다는 것은 곧 옛사람들의 생활에 접근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동식물화석을 분석하고 연구하면 옛사람들의 생업경제를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앞에서 우리 나라의 신석기 늦은 시기에 소나무꽃가루가 늘어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당시의 기후가 나빠진다는 징후이지만 한편으로 당시의 농사짓기와 관련되는 정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소나무는 삼림의 벌채·화전 등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삼림이 파괴되고 토양침식이 진행된 곳에 2차림으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사짓기의 증거를 찾고 싶어하는 입장에서는 참나무/소나무꽃가루의 증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려면 풀꽃가루 가운데 재배벼로 판단되는 대형의 꽃가루가 같이 나와주어야 한다. 시흥 군자리 등의 경우에는 대형 꽃가루가 나오지 않았으나 소나무꽃가루는 많이 나왔는데, 보고자들은 이를 인위적인 삼림파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385)
소나무꽃가루의 증감에 대한 해석도 그렇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자료로 보자면 우리 나라의 농사짓기의 시원은 상당히 소급될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일산 신도시지역의 토탄층에서 나온 볍씨의 연대는 4,070BP(보정연대 4,733∼4,413BP)로서 지금까지의 학계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연대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석기 중기-후기에 해당하는 대화리층-토탄층에서 검색된 가래나무·감나무류·개살구나무·사과속의 樹種들은 자연상태에서 공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식용을 위한 목적으로 심고 가꾸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 것이다.386) 이것은「낟알」농사가 아닌「과수재배」로서는 최초의 자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나라 농사짓기의 실상에 더 가까이 가려면 꽃가루와 대형화석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좀더 다양한 재배식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채집식물자료의 출토도「도토리」만의 단일종에서 벗어나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실제로 참나무속에 포함되는 견과류만 하더라도 도토리 이외에 매우 많을 것이다. 봉계리에서 나온 열매를 보면 살구·매실 등 5∼6월에 채집하는 것부터 10월경에 따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즉 여러 계절의 채집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들은 모두 식물화석의 연구를 통해 그 곳의 식생대 및 자연환경에 대한 복원과 생업경제에 대한 접근이 동시에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동물화석들은 식물화석보다 당시의 생업경제를 한층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설명이 필요없다. <표 3>에서 보듯이 식용으로 한 종류가 바다-산에 걸쳐 다양하고, 뿐만 아니라 오소리·너구리 등 겨울에 털을 쓰기 위해 잡았다고 여겨지는 동물들도 많다. 다만 아직까지 신석기시대에 「개」이외의 집짐승을 기른 흔적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서포항유적에서는 집집마다 식용으로 한 개의 뼈가 출토되어387) 무척 즐겨 먹은 것으로 나타난다. 남해안의 조개더미유적에서는 약 40여 종의 조개류가 보고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식용이거나 또는 식용으로 직접 채취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식용의 대상이 된 조개가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더구나 조개류는 유적 주변의 소환경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나아가 당시 사람들의 활동상도 추정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욕지도388)나 연대도389)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사람뼈에서 일종의 잠수병인 外耳道骨瘤현상이 자주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이는 깊은 곳에 있는 조개따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같이 동물화석에 대한 연구는 당시의 생업경제 및 이와 관련된 사람들의 활동상을 알아보는데 있어 직접적이고 흥미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申叔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