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동해안지역
동해안지역에서 발견조사된 신석기유적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은 편이며, 정식으로 발굴이 실시된 유적은 양양의 오산리유적418)과 지경리유적,419) 그리고 최근에 발굴한 가평리유적420) 정도이다. 오산리유적 상층에서는 서해안 뾰족밑빗살무늬토기가, 하층에서는 납직밑토기류가 출토되어 층서에 의한 편년설정에 중요한 단서가 제시되었다. 또한 오산리 하층의 방사성탄소연대가 B.C.6,000∼5,000년으로 나와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의 상한연대가 종래 생각했던 것보다 2,000년 이상 상회함은 물론, 기원전 6,000∼5,000년에 아가리부분에만 무늬를 새긴 납작밑토기 사용인들이 한반도 동해안과 중국 동북부지역 및 연해주 일대에 살면서 수렵·어로·채집 등 기술의 개선을 통해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신석기문화를 정착시켰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최근 발굴된 양양 가평리유적이나 지경리유적은 오산리 상층문화와 동일한 시기에 형성된 유적인데, 이 시기의 유적은 동해안을 따라 양양과 강릉 주변에 밀집·분포되어 있고421) 북으로는 함경남도 성진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또한 오산리 상층의 뾰족밑빗살무늬토기는 남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토기와도 유사한 문양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동해안을 따라 오산리 상층과 같은 뾰족밑토기문화가 널리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해안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신석기유적들은 해안가에 형성된 석호 주변에 위치한 것들이 많아 이들의 생계양식이 석호와 주변 산간지역에 의존한 채집·어로생활이었다는 것을 판단케 해준다.
418) | 임효재·권학수,≪오산리유적≫Ⅰ(서울大 博物館, 1984). 김원용·임효재·권학수,≪오산리유적≫Ⅱ(서울大 博物館, 1985). 임효재·이준정,≪오산리유적≫Ⅲ(서울大 博物館,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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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 白弘基,<東海岸 先史文化의 特性>(≪韓·日 先史文化의 交流와 襄陽 鰲山里遺蹟 新石器文化≫, 한국신석기연구회발표요지, 1995). |
420) | 윤근일,<양양 가평리 신석기유적에 대하여>(≪동아시아에 있어서 양양 오산리 신석기문화의 위치≫, 양양문화원·한국신석기연구회, 1996), 29∼56쪽. |
421) | 지헌병,≪강원도지방의 선사문화연구≫Ⅰ(강원대 박물관, 1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