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Ⅱ. 신석기문화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3) 신석기시대의 유물(1) 토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1. 구석기시대
          • 1)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구석기시대의 개념
            • (2) 구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2)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제4기의 지질과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화석인골과 편년
            • (1) 편년별 화석인골
            • (2) 화석인골의 몇 가지 특징
        • 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구석기유적의 분포
            • (1) 남한의 구석기유적
            • (2) 북한의 구석기유적
            • (3) 집자리 복원
          • 2) 구석기시대의 유물
            • (1) 유물의 분류
            • (2) 전기 구석기
            • (3) 중기 구석기
            • (4) 후기 구석기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1) 생계경제
            • (2) 구석기시대의 주거지
            • (3) 구석기의 도구제작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 2) 의식과 예술
            • (1) 예술작품
            • (2) 의식
        • 4. 주변지역 구석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시기별 구석기문화
            • (2) 비교와 문제점
          • 2) 일본
            • (1) 한반도와 일본의 자연환경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3) 시베리아
            • (1) 구석기유적의 발견
            • (2) 전기 구석기시대
            • (3) 중기 구석기시대
            • (4) 후기 구석기시대
            • (5) 한국과의 비교
      • Ⅱ. 신석기문화
        • 1. 신석기시대
          • 1) 신석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시대설정
            • (2) 연구사 개관
            • (3) 시기구분
          • 2) 신석기시대의 자연환경
            • (1) 후빙기의 자연환경
            • (2) 식물상과 동물상
          • 3) 인골의 출토
            • (1) 인골의 인류학적 연구
            • (2) 인골의 해부학상 형태 비교
        • 2.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신석기유적의 분포
            • (1) 유적분포의 특성
            • (2) 주요 신석기유적
          • 2) 신석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조개더미
            • (3) 무덤
          • 3) 신석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와 뼈연모
            • (3) 예술품
        • 3. 신석기시대의 생업과 사회
          • 1) 생업
            • (1) 수렵·어로·채취
            • (2) 농경과 목축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교역
            • (3) 의식·신앙 및 예술
            • (4) 의식주
        • 4. 주변지역 신석기문화와의 비교
          • 1)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영역구분과 지역성
          • 2) 동아시아 신석기문화의 이동
            • (1) 신석기문화의 이동
            • (2) 남해안계와 규슈지역의 신석기문화
          • 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 (1) 미송리 하층과 후와 하층
            • (2) 서포항 Ⅰ∼Ⅲ기층 당산유적과 소주산 중·하층, 오가촌기
            • (3) 쌍학리유적, 서포항 Ⅳ기층과 소주산 상층기
            • (4) 신암리 Ⅰ기층, 농포·호곡동 Ⅰ기층과 우가촌 하층기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신석기시대의 유물

(1) 토기
가. 신석기시대 토기에 대한 논의

 토기는 신석기시대에 들어와 만들어지고 쓰여진 것으로서 간석기(磨製石器)와 함께 신석기시대를 나타내는 지표유물로 여겨져 왔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토기가 등장했으며, 그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빗살무늬토기에 앞서는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가 있었음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개관하기에 앞서 이들 토기가 알려지게 된 경위와 그간의 논의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조사된 것은 1916년이며 그 결과는 1917년에 보고서로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평안남도 용강 용반리와 대동강가의 미림리 및 고방산, 평양 사동 등과 황해도 해주 남산, 옹진 점암동, 은율 군량리, 장연 몽금포유적 등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구분되지 못한 채 소개되어 있다.544) 당시에는 두 시기에 각각 해당하는 토기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들을「有紋土器(혹은 有紋厚手土器)」와 「無紋土器(혹은 無紋薄手土器)」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토기는 물론 유문후수토기이다.

 유문토기라는 이름을 벗어나서 빗살무늬의 뜻인 「櫛文」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930년에 발표된 글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글의 원래 목적은 석기시대 문화의 전파와 토기무늬와의 관계를 밝혀 보려 한 것이었다.545) 즐목문토기란 이름은 櫛齒모양으로 평행해서 밀접한 이를 가진 것으로 토기면에 무늬를 인각했다고 보는 데서 유래하며, 독일에서 Kamm Keramik라고 부르는 것의 번역어이기도 하다고 정의되었다. 그리고 조선의 즐목문토기 및 석기문화는 단독으로 조선에서 발달한 것이 아니라 시베리아·스칸디나비아·알래스카 및 북미주를 포함하는 歐亞美 3대륙의 북단을 연락하는 일종의 문화연쇄로서 「북방문화」의 한 파문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조선의 즐문토기문화 혹은 석기시대 문화가 단독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문화의 기원지가 어느 계통인가(당시에는 시베리아) 하는 점과, 이를 만든 인종 혹은 주민집단, 그리고 전파루트를 찾는 것이 중요한 관심거리가 된다. 결국 계통을 추구하는 연구는 언제나 위의 세 가지 주제에로 귀결된다. 그리고 위의 글은 우리 나라 근 100여년의 신석기연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 가운데 하나인 만큼, 이 이후로 한국의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논의는 위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갔다. 요컨대 한국 신석기문화의 시베리아기원설이 뿌리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오산리유적546)의 발굴은 그 동안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 왔던 시베리아기원설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의 빗살무늬토기와 북구의 캄케라믹은 구별된다고 하는 주장들547)이 있었으며, 동삼동과 한강 주위의 신석기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가지고 각각 한국의 신석기문화를 연구한 경우548)도 양자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정하였다. 이들은 한국의 빗살무늬토기가 시베리아의 것과 시문법도 다르며 토착적인 요소가 많아 지역적인 발달형식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동삼동발굴로 인해 빗살무늬토기보다 시기적으로 앞서는 덧무늬토기의 존재가 강하게 부각된 것도 이러한 주장을 재고하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산리유적에서 얻게 된 일련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값은 우리 나라의 신석기의 개시연대와 전파관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도록 하였다. 오산리유적은 대략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연대값을 가지고 연대가 더 내려가는 시베리아로부터의 기원설을 주장하기는 곤란하였던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자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보다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여겨지는 덧무늬토기들이 잇따라 출토되었고, 마침내 많은 관심이 덧무늬토기에 관한 문제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연구의 향방은 여전히 전통 깊은 것으로서 예의 기원과 전파문제가 덧무늬토기에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를 또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연구자가 의식하든 못하든 덧무늬토기를 빗살무늬토기와 별개의 것으로 다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부터 그러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 나라에서 덧무늬토기는 비교적 일찍부터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색다른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다. 1930년 동삼동의 발굴에서는 하나의 무늬요소를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새김무늬는 沈刻式으로, 덧무늬는 隆起式으로 나뉘어진다고 보았으며, 혹은 덧무늬토기를 紐線文土器라고 하여 여러 종류의 토기무늬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549) 대동강가의 청호리유적550)에서도 덧무늬토기가 나왔으나 이들 역시 별다른 취급은 받지 않았다. 광복 후 북한은 1956년 금탄리유적을 발굴하였으며551) 여기에서도 덧무늬토기 여러 개체가 나왔으나 주목되지 않았다.

 덧무늬토기가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동삼동 및 남해도서지방에서 잇따라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 덧무늬토기를 둘러싼 논의가 일어났는데 주로 덧무늬토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러한 토기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인가 아닌가, 등에 집중되어 있다.

 덧무늬토기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고찰에는 주변지역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남해안지방의 덧무늬토기보다 연대가 더 올라가는 유적은 일본에 많이 분포한다. 이런 까닭에 우리 나라의 융기문토기가 규슈지방의 토도로키(轟)식토기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552) 한편, 아무르강유역의 덧무늬토기에서 기원했다고 하는 견해553)도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중국 동북지방으로부터 남해안지방까지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는 가운데 요동지방의 신석기문화를 우리 나라 신석기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554) 그리고 한·일 양국의 토기를 철저히 연구하기 전에 속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면서555) 아울러 중국 동북지방의 신석기토기들과 우리 나라 토기들의 관련성에 대해서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이전의 막연한 시베리아기원설과는 달리, 한국과 시베리아(알타이)지역에서의 빗살무늬토기·뼈작살·동쪽으로 펴묻기(東枕伸展葬)·돌톱(植刃尖頭器) 등 여러 문화요소에서 찾아지는 유사성에 주목하여 우리 나라 빗살무늬토기의 기원지가 알타이지역 일대를 포함하는 바이칼호 주변이라고 추정하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556)

 이러한 고찰과 주장들을 통해 우리 나라의 신석기연구가 점차 달라져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출자와 기원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신석기문화를 선사시대 동아시아의 전체 속에서 조망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의 기원을 빨리 단정하기보다는 문화의 상호 관련성을 추구하는 연구로 이어져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 나라 및 주변지역의 신석기문화가 유물의 단순비교에서 벗어나 심도있게 연구된다면 그 주제도 기원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각 지역의 자연환경이라든가 당시의 주민 및 생활상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파악되어 가리라고 본다.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의문에는 아직 무어라 답하기 어렵다. 현재로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덧무늬토기에도 빗살무늬토기의 무늬새김 양식이 들어 있으며, 이와 공반되는 석기 및 석기제작수법·뼈연모 등을 살펴볼 때 양자 사이에 이질적이거나 비약적인 요소란 그다지 찾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근 우리 나라 남해안지방의 조개더미유적에서 덧무늬토기 또는 빗살무늬토기를 공반한 사람뼈화석이 자주 출토되고 있으므로 이들을 이웃한 중국·연해주지방 및 일본의 사람뼈 자료들과 비교하고, 언어학·언어연대학 등 인접학문들을 잘 활용한다면 원래 모습에 근접하는 像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44)鳥居龍藏,<平安南道·黃海道古蹟調査報告書>(≪大正五年度古蹟調査報告≫, 1917), 767∼850쪽.
545)藤田亮策,<櫛目文樣土器の分布につきて>(≪靑丘學叢≫ 2, 1930).
546)서울大博物館,≪鰲山里遺蹟≫ Ⅰ·Ⅱ·Ⅲ(1984·1985·1988).
547)橫山將三郞,<釜山府絶影島東三洞貝塚報告>(≪史前學雜誌≫ 5-4, 1933), 1∼48쪽.

三上次男,<朝鮮における有文土器の分布とその文化の擴がりについて>(≪朝鮮學報≫ 14, 1959), 309∼321쪽.

有光敎一,≪朝鮮櫛目文樣土器の硏究≫(1962), 1∼48쪽.
548)Sample, L. L., Tongsamdong : A Contribution to Korean Neolithic Culture History, Arctic Anthropology 11-2, 1974, p. 110.

Nelson, S. M., Han River Chulmuntogi, 1975, pp. 70∼79.
549)橫山將三郞, 앞의 글, 23쪽.
550)笠原烏丸,<櫛目文土器を發見せる北鮮淸湖里遺蹟について>(≪人類學雜誌≫51-5, 1936), 183∼197쪽.
551)김용간,≪금탄리 원시유적 발굴보고≫(1964).
552)廣瀨雄一,<韓國隆起文土器論>(≪異貌≫ 11, 1984).

최근에는 토도로키토기와 우리 나라의 덧무늬토기가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토도로키보다 연대가 올라가는 일본 最古의 덧무늬토기가 시기·문화적으로 우리 나라의 것과 더 유사하다고 본 견해가 나왔다.

李東注,≪韓國 先史時代 南海岸 有文土器硏究≫(東亞大 博士學位論文, 1996) 참조.
553)鄭澄元,<中國東北地方의 隆起文土器>(≪韓國考古學報≫ 26, 1991), 5∼35쪽.
554)宮本一夫,<中國東北地方における先史土器の編年と地域性>(≪史林≫ 68-2, 1985).
555)任孝宰,<新石器時代의 韓·日文化交流>(≪韓國史論≫16, 國史編纂委員會, 1986), 1∼29쪽.
556)韓永熙,<유물로 본 Altai와 한반도>(≪알타이문명전≫, 국립중앙박물관, 1995), 186∼18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