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중서부지방
가) 석기(<그림 3> ①∼(17), (22))
중서부지방(여기서도 석기에서와 마찬가지 구분임)의 유적 가운데 석기가 많이 출토되는 곳으로는 궁산과 지탑리, 대동강유역의 남경·금탄리, 한강유역의 암사동과 미사동 등이 있다. 중서부지방 석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련의 농사도구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궁산·지탑리 등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출토되는 석기를 보면 가장 많은 것이 화살촉인데 모두 판암으로 만들었으며 간 것이다. 화살촉의 모양은 뿌리있는 것과 뿌리없는 것, 버들잎모양의 세 가지가 있다. 버들잎모양의 활촉을 확대한 것 같은 창끝, 활촉과 비슷하나 너비 1㎝ 미만에 길이 7∼8㎝(때로는 10㎝ 이상) 정도 되는 좁고 긴 찔개살 등도 있다. 중서부지방에서는 남해안지방이나 동북지방과는 달리 뚜렷한 물고기잡이도구가 잘 나타나지 않는 반면 그물추와 함께 찔개살이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찔개살은 궁산에서만 30여 점이 출토되었다. 그물추는 금탄리에서 600여 점, 남경유적에서 3,000여 점이 나와 대동강유역에서 민물고기잡이가 활발했음을 잘 보여준다. 도끼는 날부분만 갈았는데 단단한 섬록암질이며 단면이 주로 렌즈모양이나 네모꼴이다. 이와 함께 대팻날과 끌도 나오고 있다. 그물추는 지름 7㎝에 두께 2∼3㎝가 표준인데 화강암·규암·사암 등의 자갈돌 양면이나 네 면을 쪼아 만들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갈돌은 30여 개나 나왔다. 그 밖에 크고 작은 숫돌과 擦切具, 잘라 놓은 판암편(화살촉 반제품)들이 있다.
농경도구로는 지탑리 2지구에서 나온 보습과 낫이 가장 확실하며, 그 밖에 갈돌·갈판·괭이 등이 함께 나온다.
이러한 석기 조합은 아래쪽의 한강유역으로 내려오더라도 비슷하다. 즉 암사동·미사리와 함께 시도·백령도·연평도유적 등을 포함하여 보면 화살촉으로는 삼각형과 역자식(逆刺式 : 슴베가 없으며 밑부분에 결입이 있어 나래가 생긴 것)이 가장 우세하며 타제 및 마제의 도끼가 다 나오고 있다. 돌창·끌·그물추·숫돌 등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암사동에서는 특히 돌낫·보습·돌괭이·갈돌·갈판 등 농사도구가 모두 나와 주의를 끈다.
최근에 와서 한강유역을 발굴하거나 지표조사하여 뗀석기가 무척 많이 찾아졌는데 석기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648) 즉 이 곳에서는 자갈에다 간단히 타격을 가하여 그대로 긁개나 찍개로 이용한 것, 그리고 큰 격지나 길쭉한 강자갈을 가지고 거칠게 다듬어 날을 세운 도끼의 수량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대부분 잔손질없이 떼어낸 것들을 그대로 도구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들을 석기로 여기기보다 단순한 격지인 줄 아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남해안지방의 석기분류에서 이미 시사된 바 있다.
종합하면, 중서부지방 석기들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역시 농사짓는 도구가 많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중서부지방의 신석기시대에는 농사가 비교적 일찍 시작되거나 농사에 비중을 둔 문화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하면 금굴과 상시바위그늘의 경우649) 여전히 물고기잡이와 사냥을 중심으로 나타나므로, 역시 생활환경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다르며 이에 따라 석기가 달리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 뼈연모(<그림 3> (18)∼(21))
중서부지방에서 발굴된 유적 가운데 뼈연모가 나온 곳은 궁산유적뿐이며 상시와 금굴에서 약간의 뼈연모가 나왔다. 궁산에서는 뼈송곳과 예새가 각각 110점과 70여 점으로 가장 많이 나왔다. 송곳은 대개 짐승의 사지골을 쪼개어 끝을 갈아 날카롭고 뾰족하게 한 것인데 오늘날에 보면 이러한 것들은 모든 조개더미에서 나타난다. 즉 찌르개로 쓰인 것이며 짐승의 해체나 조리에도 많이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새는 이와 비슷하나 송곳보다 끝이 다소 둔하고 폭을 가진 것으로서 광범위하게 쓰였을 것이다. 때로는 토기의 무늬돋치개로도 쓰인다. 사슴뿔로 된 뿔괭이와 뒤지개 등 농사도구가 나온 것도 궁산의 특징이다. 뿔괭이는 뿔의 갈라진 가지를 이용하여 굵고 긴 줄기는 자루로 하고 갈라진 작은 가지를 10㎝ 정도의 길이로 잘라 간 것이다. 또 산돼지의 송곳니로 만든 낫 6점과, 작은 짐승의 송곳니로 만든 칼, 베실이 꿰여 있는 뼈바늘, 삿바늘도 나왔다. 석기 반제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짐승뼈도 미리 잘라 놓은 것이 있다. 궁산유적의 뼈연모는 아기자기한 신석기살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뼈연모가 나오지는 않은 나머지 중서부지방의 신석기유적에서도 뼈연모를 이용하는 양상은 대개 이와 같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서부지방의 뼈연모가 많지 않으므로 남한강가의 바위그늘이나 동굴유적에서 출토된 뼈연모를 참고할 수 있다. 상시에서 보면 간 뼈연모의 대부분은 끝이 뾰족한 찌르개·송곳·창끝 등이 차지한다. 그 밖에 긁개·밀개·째개 등의 뼈연모가 있고 자라의 배밑판을 이용하여 구멍을 뚫고 만든 치레걸이·투박조개팔찌 등이 나왔다. 금굴에서는 뼈송곳·뼈바늘·조가비팔찌·치레걸이 등이 나왔다. 투박조개는 원래 우리 나라 남동해안이 산지인데 상시와 같은 내륙지방에서 전복 등의 바다조개와 함께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남동해안지방과의 교역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