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술품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 예술품의 출토량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이는 뼈연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예술품이 뼈로 만들어지다 보니 잘 남아 있지 않은 데서 오는 현상일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최근에 오면서 예술품의 출토도 조금씩 늘어가므로 앞으로 이에 따른 연구-즉 옛 사람들의 미의식이나, 예술품을 매개로 한 관념형태 나아가 신앙 등에 관한 연구도 심화되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신석기시대 예술품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나온 유물들을 모아서 함께 서술하고자 한다.
신석기시대의 예술품을 다루기 전에 먼저 어떤 것을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가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광범위하게 말한다면 토기나 석기도 하나의 예술품-즉 생활예술품이라고 한 견해가 있다.650) 왜냐하면 하나의 토기에 있어서도 그릇모양이나 무늬·채색 등에서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이 있으며 그다지 실용가치가 없을 듯한 데도 불구하고 많은 공을 들여 아름다움과 장식성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석기에 있어서도 희귀한 돌감을 사용해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경우 그 자체가 하나의 치레걸이(裝身具)처럼 보이기도 하며, 실생활에서 필요한 크기보다 작은 경우도 더러 나오는데 이 때의 용도는 확실히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의 기준이 확실하지 않으며, 토기·석기·뼈연모란 유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하였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주로 실생활에 쓰이는 도구가 아닌 조각품·장신구들을 예술품으로 보려한다(<그림 1> 참조).
우리 나라에서 치레걸이나 조각품이 가장 많이 나온 곳으로는 역시 서포항과 농포조개더미가 있다. 서포항유적에서는 각 기층마다 사슴·멧돼지 등의 뼈를 가공하거나 송곳니에 구멍을 뚫어 매달 수 있게 한 치레걸이 등이 나오고 있다. 일종의 호신부 또는 당시의 신앙과 관련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서포항 3기부터 출토된다. 이들은 개·뱀·망아지 등으로 여겨지는데, 이들을 통해 토테미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뱀조각은 사실성이 뛰어난데, 뱀은 동북아시아의 선사시대 문화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으며 종족적 토템의 위치에 있다고 한다.651) 농포동에서는 흙으로 만든 개의 머리조각품과 납석제 새의 조각품이 나왔다. 동물조각은 남한지방에서는 찾아보기 드물어 욕지도조개더미에서 출토된 멧돼지모양의 흙조각품이 유일하다.
인물조각으로는 서포항 4기층에서 두 개의 사람얼굴 조각품이 나오고 있다. 선사시대에 있어서 사람얼굴의 상징이란 때로는 구멍 3개로도 표현되는 만큼 간단한 데서 출발하며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듯한데 서포항 4기층의 것은 형상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사람얼굴 조각품은 동삼동·오산리에서도 나왔다. 동삼동의 것은 국자가리비의 껍질에 크게 세 개의 구멍을 뚫어 사람을 표현한 것이며, 오산리에서는 흙으로 만든 것인데 꾹꾹 눌러서 눈과 코·입을 표시하고 있다(<그림 1> ⑨). 사람얼굴은 청동기·철기시대의 여러 유적(울주 천전리·고령 양전동 등)의 암각화에서도 나타나는 만큼 선사시대의 지속적인 소재이다. 아마도 신앙적인 의식에 관련된 듯하나 이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빨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인물상 가운데서도 여성조각품이 출토된 곳은 비교적 많다. 서포항 3·4기층에서는 여성을 상징한다고 해석되고 있는652) 구멍뚫은 조각품이 나왔으며(<그림 1> ①·②), 농포동에서는 흙으로 만든, 매우 사실적인 여성조각이 나왔다. 농포와 서포항의 여성조각품들은 모계사회제도 아래 주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신숭배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여653) 북한에서 신석기시대가 모계사회라는 주장을 제창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남한지방에서 보자면 울산 신암리에서 흙으로 빚은 여성의 조각이 나왔고 부산 금곡동 율리에서는 흙으로 빚은 자안패모양의 조각이 나왔다. 나중의 것도 여성을 상징함은 물론이다. 즉 남한에서도 여성을 상징하는 조각들이 출토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이들이 모계사회와 관련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관념과 관련된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며, 자료의 축적과 함께 더 이상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조가비나 돌로 만든 팔찌(또는 발찌)는 전국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가장 흔한 치레걸이이다. 남해안지방 조개더미유적에서는 거의 빠짐없이 출토되는데 최근에는 조개더미유적의 무덤에서 껴묻거리(副葬品)로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투박조개로 만든 것이다. 특히 단양 상시유적에서도 투박조개팔찌가 나와 바닷가와의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울산 신암리의 흙귀걸이도 치레걸이로 볼 수 있겠다.
신석기시대의 조각품이나 치레걸이 등은 말 그대로 치레걸이 또는 호신부·껴묻거리 등으로 쓰이거나 어떤 기원(풍요나 다산 등의), 관념(토템 등)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시기의 예술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잇따라야 할 것이다.
<申叔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