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서북한·동북한지역과 요동반도의 신석기문화
중국과 한반도지역간의 신석기문화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지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유물에 대한 편년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겠으나, 현재까지는 중국과 한반도 전역에 걸쳐 신석기문화를 직접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두 지역의 편년체계가 확립되지 못하였다. 다만 최근 한반도 북부지방과 인접한 중국 동북지방의 유적조사가 급진전되어 이 지역 전반에 걸친 신석기문화의 지역분포권이 세분화되고 있으며, 각개 지역의 개별편년도 시도되고 있다802)(<지도 1>). 특히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서 요동반도 남부지역에서는 郭家村유적·小珠山유적·于家村유적 등이 분층발굴됨으로써 이 지역 신석기문화편년의 기초가 확립되었으며,803) 이러한 편년체계를 토대로 각 시기별 문화의 특징이나 변천양상도 어느 정도 밝혀져 가고 있다.
이와 같이 요동반도 신석기문화의 편년이 확립되어 그 변천양상이 파악됨에 따라 여기에 인접한 미송리·당산·쌍학리·신암리 Ⅰ기 등 서북한지방 유적들의 병행시기와의 상호관계도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한 연구가 1980년대 전반 일본측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되었으며,804) 같은 무렵 국내에서도 요동반도와 서북한 및 동북한지방과의 관계를 검토한 연구가 나온 바 있다.805)
그 뒤 1980년대 후반에 요동반도지역에서는 압록강 하류역의 丹東地區의 東溝縣 後洼와 石佛山유적조사가 진전되었을 뿐 아니라, 후와유형과 석불산유형의 여러 유적들이 요동반도 북부지역의 일정한 범위에 걸쳐 분포권역을 이루고 있음이 밝혀졌다.806) 이 지역은 서북한지방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둔 인접지역권이기 때문에 두 지역 신석기문화의 상호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압록강 하류지역의 유적조사의 진전은 요동반도지역 신석기문화의 편년체계를 보정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 서북 및 동북지방의 신석기문화와의 상호관계를 비교해 보는데 있어서도 보다 구체적인 자료가 추가되었다.
편년별로 나누어 살펴보겠지만 중국 요동반도지역과 서북한 및 동북한지역의 신석기시대 토기문화는 먼저 요동반도지역에서 선도적 변용이 일어나고, 그러한 토기변용은 서북한 및 동북한지역으로 파급되면서 축차적 변화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아래의 <표 1>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소주산 중층기 이후 기하무늬와 덧띠무늬의 발생과 소멸이 축차적 시간차를 보여주는 점에서도 그 한 측면이 드러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평저유형의 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 동북계 신석기문화의 영향은 비록 단편적인 자료이긴 해도 양양군 오산리·지경리, 춘천 교동 등 동해안지역과 상노대도, 김해 수가리 등 동남부지역에서도 그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앞으로의 조사진전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802) | 白弘基,<東北亞 平底土器의 硏究-遼東半島와 韓半島 北部地域을 中心으로>(≪韓國上古史學報≫12, 1993), 7∼2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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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 許玉林,<旅大地區新石器時代文化和靑銅器時代文化槪述>(≪東北考古與歷史≫, 文物出版社, 北京, 1982). |
804) | 小川靜夫,<極東先史土器の一考察>(≪東京大學 文學部 考古學硏究室 硏究紀要≫ 1, 東京, 1982), 123∼149쪽. 宮本一夫,<中國東北地方における先史土器の編年と地域性>(≪史林≫ 66-2, 東京, 1985), 167∼217쪽. |
805) | 白弘基, 앞의 글. |
806) | 許玉林,<後洼遺址考古新發現與硏究>(≪1987年代中國考古學會第6次年會論文集≫, 文物出版社, 北京, 1987), 13∼23쪽. ―――,<遼寧東溝縣後洼遺址發掘槪要>(≪文物≫ 1989-12, 文物出版社, 北京), 1∼12쪽. ―――,<遼寧東溝縣石佛山新石器晩期遺址發掘簡報>(≪考古≫ 1990-8, 科學出版社, 北京), 673∼68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