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세형동검문화
가) 유적의 입지와 분포
대부분의 청동기가 유적과 유리되어 발견되거나 학술조사가 뒤늦게 이루어져 유적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최근에 수습 조사가 충실하게 이루어진 몇 사례를 보면 세형동검이 공반되는 유적은 석관묘·적석석관묘·적석목관묘 또는 석개토광묘로 밝혀졌다.
특히 대전 괴정동이나 함평 초포리, 화순 대곡리 등은 이 시기의 묘제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유적들은 요령식동검문화의 유적들과는 달리 유적들이 하나씩 독립해서 자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초기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대전 괴정동0108)·부여 연화리0109)·예산 동서리0110)·아산 남성리0111)를 비롯하여 기타 화려한 청동기 일괄유물을 내는 무덤들은 한결같이 위치가 좋은 얕은 구릉의 사면, 넓은 뜰과 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단독으로 자리하고 있다. 요령식동검문화와 같이 주로 큰 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금강·낙동강·대동강유역에 밀집해서 발견된다. 이러한 상황은 고급 청동기를 사용한 지배자들의 권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보면 청천강 이북에서는 거의 청동기가 발견되지 않거나 발견된다 해도 내용이 아주 빈약하다. 북으로는 연해주 마이헤 이즈웨스토프0112)에서 동검과 동경이 예외적으로 발견된 바 있으나 주요 분포지역은 대동강 이남, 특히 남한지역이다. 현재 발견된 청동기를 기준으로 하면 대동강·금강·영산강·낙동강유역을 청동기문화의 중심지로 들 수 있다.
청동기의 내용에 따라 여러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청동기유적은 충남지방의 금강유역에 자리하고 있다. 괴정동·동서리·남성리·연화리 등은 초기의 세형동검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인데 모두 금강유역에 자리하고 있어 한국식청동기문화의 발생과 파급을 살피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특히 동서리의 경우 瀋陽 鄭家窪子0113)에서 발견된 청동기와 형태가 같은 나팔형동기와 원개형동기가 출토하여 요령지방과 충남지방의 문화교류와 경로를 알 수 있다. 대동강유역에서 청동기 형식으로 보아 후기에 속하는 청동기유적이 나오고 있는 점은 특이한 현상이다.
나) 유물의 분포
가장 표지가 되는 세형동검은 충남지방(금강유역)에서 나타나는 동검으로, 형식상 빠른 형태의 동검이 출토한다. 초기 세형동검과 반출하는 조문경은 대동강유역과 금강유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금강유역에는 2/3 이상이나 분포하고 있다. 세문경은 청천강 이남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역시 금강유역에서 가장 밀집하여 나타나고 다음이 영산강유역이다. 낙동강유역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으며, 기타 지역에서는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 청동기의 특징 중 하나인 이형동기(쌍두령·간두령·팔주령·동탁 등 방울류)들은 대동강·금강·낙동강·영산강유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밀집현상을 보이는 것이 특이한 현상인데 동탁과 누에고치형 방울을 제외하면 금강·낙동강·영산강유역에서만 보이고 예외적으로 함경도의 하세동리와 조양리에서 방울이 발견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빠르면서 다양한 이형동기들이 충청도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문화의 풍부함을 설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특히 괴정동과 남성리, 동서리에서 보이는 종교적 의기(검파형동기·원개형동기·방패형동기·나팔형동기)들은 충남지방에서만 보이는 현상인데 검파형동기는 한유적에서 3점씩만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식청동기는 아니지만 완주 상림리0114)에서 출토한 桃氏劍은 유물이나 유적의 성격이 특이하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유행한 도씨검이 한꺼번에 26자루가 출토되었는데 유적은 특기할 만한 점이 없다. 이 제품이 한반도에서 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해안에 가가운 완주지방에서 한곳에 대량으로 매납된 사실로 보아 제사적 성격의 유적이 아닌가 생각되며 한편 중국과 바다를 통하여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도 짐작된다.
청동기 제작을 알 수 있는 용범(거푸집)은 경기도 용인0115)·맹산0116)·강원도 거진,0117) 부여 송국리, 전남 영암0118) 등지에서 나왔다. 이 용범들은 청동기문화의 중심을 아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지만 초기 세형동검문화의 중심지였던 충남지방에서는 아직 용범이 나온 예가 없어 자료의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李康承>
0108) | 李殷昌,<大田 槐亭洞 靑銅器文化의 硏究>(≪亞細亞硏究≫11-2, 高麗大, 1968). 國立中央博物館,≪韓國靑銅遺物圖錄≫(學術資料集 1, 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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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 金載元·尹武炳,<扶餘·慶州·燕岐出土 銅製遺物>(≪震檀學報≫26·27, 1964). 國立中央博物館, 위의 책. |
0110) | 池健吉,<禮山 東西里 石棺墓出土 靑銅一括遺物>(≪百濟硏究≫9, 忠南大, 1978). |
0111) | 韓炳三·李健茂,≪南城里石棺墓≫(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 10, 1977). |
0112) | 平井尙志,<沿海州新出土の多紐細文鏡とその一括唯物に對ついて>(≪考古學雜誌≫46-3, 東京;日本考古學會). |
0113) | 瀋陽古宮博物館 外,<瀋陽鄭家窪子的兩座靑銅器時代墓葬>(≪考古學報≫1975-1). |
0114) | 全榮來,<完州 上林里出土 中國式銅劍에 關하여>(≪全北遺蹟調査報告≫6, 全州市立博物館, 1976). |
0115) | 國立中央博物館, 앞의 책. |
0116) | 梅原末治·藤田亮策, 앞의 책. |
0117) | 梅原末治·藤田亮策, 위의 책. |
0118) | 林炳泰,<靈岩出土 靑銅器鎔范에 對하여>(≪三佛金元龍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Ⅰ, 一志社, 19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