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교통로와 교통수단
교통로는 일정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는 것으로 가장 먼저 개척된 것은 작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근거리 교통로이다. 다음에 일정지역에 중심 혹은 큰 마을이 있어 주변의 작은 마을과 연결되는 교통로가 개척되었다. 철기시대에 들어와 초기국가가 형성될 무렵에는 주변의 소국에서 중앙의 국읍과 연결되는 조공로는 물론, 더 나아가 이웃 중국과 일본과 바다로 통하는 원거리 교통로가 개척되었다.
육상교통로는 주로 저지대와 지구대를 따라서 개척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1000) 함남지역과 한강유역을 통하는 루트는 추가령지구대를 이용하였음이 분명하다. 한편 해안지방의 경우 육상루트는 해안 저지대를 따라 형성되었으리라 추정된다. 특히 동해안의 경우 태백산맥이 해안을 따라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안 저지대 교통로는 일찍부터 형성된 사실이 신석기시대 토기유물의 상호 비교를 통해 확인된다. 또한 제주도의 경우 중심부가 높고 해안지대로 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순상화산의 지형적 조건 때문에 저지대로 이어지는 루트가 주요 교통로이었다.1001) 이들 교통로를 중심으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이 유적의 분포조사를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대형화물을 수송할 경우는 육상루트보다는 강을 이용한 해상루트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대체로 강 지류가 만나는 지점과 함께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중요 교통로의 중심지가 형성되게 된다.1002) 구체적으로 살피면 전자의 경우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한강 중류지역, 금호강·황강 등이 만나는 낙동강 중류지역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후자의 경우는 진한지역에는 낙동강 하구의 김해지방, 마한지역에서는 영산강 하구의 영암지방, 백제지역에서는 한강 하구가 이에 속한다.
한편 한반도내에서 우선 서북한의 낙랑과 남한의 삼한지역과의 교통로는 앞서 육로와 해상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동강유역에서 낙동강유역으로 이르는 주요 루트, 특히 대량의 화물을 운송하는 루트는 연안항로였음이 틀림없다. 이 루트는 또한 낙랑에서 왜로 가는 루트가 되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과의 교통로 또한 당연히 해상항로일 수밖에 없다. 강이 아닌 도서지방의 경우도 당연히 해로를 이용한 교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할 경우 해상교통로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섬을 따라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 시기 육상로는 말과 소는 물론, 바퀴를 이용한 수레가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것으로 수레의 실물은 한반도에서 확인된 바 없으나, 대동강유역의 목관묘와 목곽묘, 그리고 낙동강에서도 車輿具의 부속품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일부 계층에서는 수레가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레를 이용한 화물수송은 한계가 있으므로 해상을 이용한 운반, 즉 배를 이용한 것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이해된다. 청동기시대 전후한 것으로 추정되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 배를 표현한 실례가 있는데 그 그림에는 여러 명을 태운 구조선이 그려져 있다.1003)
그러나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배의 실물자료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다만 이웃 일본에서 죠몬시대부터 그 실물자료가 알려지고, 야요이시대의 것도 여러 실물례가 확인되고 있다. 그 배는 통나무배로서 폭 60cm 이상, 길이 5m 내외의 통나무를 잘라 가운데를 파서 만든 이른바 獨木船이 많다. 독목선은 거의 돛을 달지 않고 다만 노를 이용해서 항해한 배이다.1004) 한편 다소 늦은 삼국시대 것으로 여러 가야 고분에서 원거리 항해용으로서 바닥이 깊은 배모양의 토기가 여러 점 발견되어 참고가 된다.
≪삼국지≫에 나타나는 것처럼 대방에서 왜로 가거나, 주호가 마한을 가는 경우처럼 하루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원거리 항해의 경우 조류만으로는 항해가 어렵다. 실제 사례에 의하면 조류가 항해에 미치는 영향은 20∼30%이고, 바람이 70∼80%가 된다.1005) 따라서 원거리 항해인 경우 바람을 이용한 돛을 단 범선이 이 시기에 적극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李淸圭>
1000) | 李盛周,<1-3세기 가야 정치체의 성장>(≪韓國古代史論叢≫5, 1993), 69∼2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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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 李淸圭,≪濟州島 考古學 硏究≫(學硏文化社, 1995), 301∼309쪽. |
1002) | Kwon, Hack-Soo,<Evolution of Social Complexity in Kaya, Korea>(≪韓國上古史學報≫10, 1992), 255∼293쪽. |
1003) | 金元龍,<蔚州 盤龜臺 岩刻畵에 대하여>(≪韓國考古學報≫9, 1980). |
1004) | 須藤利一,≪船≫(東京;法政大學出版局, 1969), 31∼44쪽. |
1005) | 鄭鎭述,<韓國先史時代 海上移動에 관한 硏究>(≪忠武公 李舜臣硏究論叢≫, 海軍士官學校, 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