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2. 고조선의 변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위만이 기원전 4∼3세기 이래 초기국가로서 존재해오던 濊貊朝鮮(종래의 箕子朝鮮)을 攻滅하고, 강력한 정복국가인 위만조선을 수립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이었다. 그런데 이 위만조선은 위만의 손자인 右渠대에 와서 발달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위만조선은 주위의 변방 정치집단들의 對漢交易을 매개함으로써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기 위하여 그들의 대한무역로를 차단할 것을 기도하였다. 이는 주변 정치집단뿐만 아니라 한나라에게도 위만조선이 하나의 위협세력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바로 이 무렵에 우거가 한 무제의 정치·군사적 압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匈奴와 일종의 군사적 제휴를 모색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정될 수 있다. 이러한 우거275) 치하의 위만조선이 한나라와 제반 이해관계에서 충돌하게 된 상황이 한 무제로 하여금 조선정벌을 단행케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자식에게 전해지고 손자인 右渠에게 이르렀는데 漢의 亡人들을 꾀어 모은 자가 자못 많았고 또 일찍이 天子에게 입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眞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알현코자 하여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史記≫권 115, 列傳 55, 朝鮮).276)

 위의 사료는 한과 위만조선이 갈등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위만조선이 주변 정치세력을 장악한 패자로 등장한 데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 동안의 위만조선은 주변 정치세력의 중국내왕을 보장하는 漢의 外臣으로 규정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같은 형식적 복속과 中繼者로서의 위치를 거부하고 실질적으로 주변지역을 장악하여 이들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만조선이 단순한 중계무역의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패자로서 한에 대한 위협적 존재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은 匈奴에 대하여 적극 공세를 취하여 河西四郡을 설치하고, 위만조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하여 涉河를 사신으로 파견하였으나 회담은 결렬되었다. 한이 전송하던 朝鮮 裨王을 살해하고 귀국한 섭하를 遼東東部都衛에 임명하여 위만조선측을 자극하자, 위만조선은 한을 공격하여 섭하를 살해하였으므로 양측간에 전면전이 개시되게 되었다.277)

 한은 흉노와 南越에 대한 정벌이 일단락된 뒤 기원전 110년부터 전쟁준비에 착수하여 기원전 109년 가을 수륙양군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공하였다. 樓船將軍 楊僕은 齊兵 7천을 거느리고 산동반도에서 渤海를 건너 王險城으로 공격하여 들어왔고 左將軍 荀彘는 요동지역의 병사 5만을 거느리고 출동하였다. 한의 水軍은 주력군인 육군과 합동작전을 펼치기 위해 列口에서 기다리기로 하였으나 육군의 진격이 늦어져 단독으로 왕험성을 공격하다 조선의 수군에게 패하였다. 육로군도 요동병이 먼저 국경인 패수방면에서 위만조선군에게 격파되었으며 본진도 浿水西軍에게 격퇴되어 교착상태에서 양국간에 화의가 추진되었다. 한무제는 衛山을 파견하여 화의를 타결코자 하였으나 화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상호불신과 이에 따른 위만조선의 강경자세, 그리고 위산의 소극적 태도로 인하여 화의는 결렬되었다. 그러자 한은 齊南太守 公孫遂를 파견하여 위만조선을 다시 공격하였다. 이후 계속된 1년여에 걸친 전쟁에서 위만조선은 결국 지배층의 분열과 右渠王의 피살 및 主和勢力의 망명 등에 의해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최후까지 항전하였던 大臣 成己 등의 노력도 성과없이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은 붕괴되고 말았다.278)

 그런데≪史記≫朝鮮傳에 나타나 있는 전쟁 이후의 관련자 처리내용을 살펴보면 한 무제의 위만조선 공략은 사실상 遠征이 실패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원정사령관 가운데 수군을 지휘한 누선장군 양복은 초기 전투에서의 실패와 불성실한 행위로 인하여 斬刑을 간신히 면하고 庶人으로 신분이 강등되었으며, 육군을 지휘한 좌장군 순체는 공을 다투어 서로 협력치 않고 갈등을 초래하였다 하여 斬하여 저자거리에 시신을 내다버리는 棄市刑에 처해졌다. 또한 화의 추진의 책임자였던 위산 역시 일을 그르친 책임을 물어 참형에 처해졌다. 더욱이 마지막에 파견되어 재침공을 주도하였던 제남태수 공손수도 화의를 진행하려던 누선장군을 감금하고 재공격을 하는 도중에 역시 참형을 당하였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司馬遷은 위만조선 정벌에 참가한 장군들이 모두 極刑을 당하였고 兩軍이 모두 욕을 당해 전투에 참가한 將率 가운데 侯에 오른 이가 하나도 없었다라고 하였다.279)

 위만조선 원정과 관련된 한나라의 4명의 장군들 가운데 3명이 참형이라는 가장 극악한 형벌을 당하였고 단 1명만이 살아남아 서인으로 신분이 강등당하는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위만조선이 군사적으로 패배를 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전투과정 및 이후 전개된 상황으로 보아 결코 완전한 패배가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부 지휘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우거왕으로 대표되는 주전파세력이 몰락하고, 그 대신에 朝鮮相 路人·尼谿相 參·相 韓陰·將軍 王唊 등의 주화파세력이 중국과의 화의를 통해 새로이 중심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중국의 직접적 통제를 위하여 위만조선사회는 ‘四郡’으로 재편되었지만 사실 그 실상은 기존의 토착세력이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275)종래에는 우거를 단순히 衛滿의 손자 이름으로 보아 왔으나, 최근의 언어학적 연구에 의하면 우거는 고조선시대 공동체 혹은 생활 공동체 연합체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이거나, 또는 사람의 뜻을 지닌 보통명사라는 견해도 있다(조승복,<Reflection upon The Ko Tsosen Word/UK>,≪국내외에 있어서 한국학의 현재와 미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276)이 사료에서는 眞番과 인접한 국가들을 衆(무리)과 國(나라)의 두 글자로 표기하고 있다. 한편≪사기≫에서의 衆國이라는 표현은 다른 사료들, 특히≪한서≫와

≪자치통감≫에 비추어 보아, 한반도 남부의 진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李丙燾,<蓋國과 辰國>, 앞의 책, 238∼241쪽). 그러나 진국이라는 나라 하나만이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은 해석상 난점이 없지 않으며, 설사 진국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하나인 진국이지, 옛 삼한땅에 진국만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근본적인 문제는 진국이냐 중국이냐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존재하였던 정치집단의 성격규명에 있는 것이다. 즉 진번 등의 이름이 아울러 나타나는 것은 조선과 衆國 혹은 진국 뿐만 아니라 진번도 문제의 대상이 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 가운데 하나인 진국으로 해석할 경우 그것은 진번과 대비되는 정치발전상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국설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본 사료를 진번의 위치비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활용하고 있고, 또한 진번을 예로 들어 당시의 정치발전 단계를 고려함이 없이 국명으로서 진국을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인가 진국인가 하는 문제는 중국 가운데 하나인 진국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277)서영수, 앞의 글, 255∼260쪽.
278)≪史記≫권 115, 列傳 55, 朝鮮.
279)≪史記≫권 115, 列傳 55, 朝鮮.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