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비파형동검이 쓰이나 고조선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기원전 11세기∼9세기)
비파형동검이 만들어지지만 아직 고조선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가 있다. 이를 북한의 경우 ‘小國’이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어떤 성격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302) 북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동검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쌍방 6호 돌무덤에서 나온 것인데 쌍방 6호는 부장품이 풍부하며 절대연대는 기원전 12세기에 해당한다. 이후 비파형단검과 미송리형단지가 부장되는 석관묘가 이 지역의 대표적인 주묘제로 등장하게 된다.
이 시기의 미송리형단지는 북한에서 ‘전형’이라 부르는 것이며 대표적인 新岩里유적의 경우 전형 미송리형토기(단지)가 나오지만 줄무늬가 3∼4줄이고 손잡이도 위를 향하고 꼭지손잡이는 없으며, 겹아가리의 심발형토기도 이와 함께 출토되고 있다. 新金縣 쌍방 6호 석관묘의 경우 ‘전형 미송리토기(단지)’, 겹아가리의 심발형토기와 함께 초기 형태의 비파형단검이 발견되었다. 비파형단검의 경우 북한학자의 분류에 따르면 첫째 부류에 해당되는 것으로, 단검의 길이가 짧고 양쪽의 돌기와 불루기가 뚜렷하며 피홈이 검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주요 유적은 요령성에서는 신금현 쌍방·遼陽縣 二道河子·吉林省 星星肖·淸原縣 門臉과 李家堡·盤石縣 小西山 등으로 모두 석관묘이다.303)
302) | 북한에서는 요동지방의 오덕형 고인돌 중에서 대형이 고지에 단독으로 위치하며, 여러 지역을 포괄하여 하나만 있는 것으로 보아 종족연합 추장(군사령관 또는 족장)의 무덤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장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세습되었을 것인데 무덤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오히려 다른 제사나 신앙의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겠다. |
---|---|
303) | 북한이 설정한 고조선 이전의 비파형동검기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절대연대를 들 수 있는데, 그 예가 많지 않은 데다가 유물간의 상대연대가 치밀하지 않으며, 그나마도 몇 가지 유물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북한은 요동기원설에 따라 요동지역의 비파형단검을 요서지방보다 소급시켜서 보기 때문에 요서기원설의 중국과는 다른 연대관을 보여준다. 여하튼 북한이 설정한 고조선 성립 이전의 초기 비파형동검이 과연 시기차이인지 아니면 동시기에 공존한 형식상의 특징인지는 아직 속단을 내리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