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고조선 후기309)의 문화는 고고학상에서 볼 때 철기시대 전기(종래의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철제 무기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며, 車馬具가 존재하는 등 전쟁도구도 발달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상당히 보편화된 철제 농기구는 당시 농업생산력을 제고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국의 화폐가 대량으로 발견된 점은 그러한 발달된 생산력을 토대로 하여 주변지역과 교역이 활발했던 증거로 볼 수 있다. 철기의 제작은 철기 그 자체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철광의 발견과 확보, 채광 등과 무기의 제작 등을 위해서 직업의 전문화도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위만조선을 포함한 고조선 후기의 고고학적 연구를 서북지방과 요동지방의 철기문화의 발전과 관련하여 살펴보겠다. 이 시기의 문화는 크게 (1) 기원전 4세기의 비파형동검-세형동검의 중간형이 보이고 철기가 조금씩 등장하는 시기, (2) 기원전 3∼2세기의 세죽리-연화보문화와 세형동검문화가 전성기를 맞은 때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두 시기를 문헌과 관련시킨다면 연과 맞서서 稱王을 하며 대립한 시기와 準王-위만조선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철기가 도입된 시기에 관하여 북한에서는 기원전 8∼7세기에 이미 철기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310) 이 연대를 인정할 경우 우리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철기 제작기술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아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남한에서는 대체로 위만조선 이전에 철기가 도입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위만조선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3∼2세기 문화에서는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제작되는 등 철기문화가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 및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온다.
고조선의 철기는 기본적으로 燕나라에서 도입된 것으로 보여진다. 연나라는 전국시대 말기부터 선진적인 철기문화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 문화는 크게 2단계로 주변지역에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311) 1단계는 연의 전성기인 昭王대에 행해진 것으로 秦開의 동호와 조선공략이 계기가 되었고, 2단계는 진의 건국 후 연의 유이민이 이주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연나라에서는 4세기대에 중국에서 가장 선진적인 제철기술을 가졌고, 그러한 기술이 우리 나라에 전파된 것이 세죽리-연화보유형문화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길림지역은 연나라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독자적인 철기문화의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위에서 말하는 2단계의 철기문화의 전파는 고조선의 철기문화를 설명하는데 비교적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