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1. 부여의 성립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부여국 후기의 왕성

 ≪자치통감≫晋紀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는 처음에 鹿山에 거주하였는데 東晋 永和 2년(346) 백제의 침입으로 서쪽으로 燕 가까이에 옮겼다가 연 慕容皝 자제의 공격을 받아 왕 이하 5만여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459)고 한다. 이 기사를 통하여 동쪽에 왕성을 두고 있던 부여는 346년에 백제로 표현된 세력의 침략을 받아 서쪽으로 수도를 옮겼음을 알 수 있다.

 부여 전기의 중심지였던 길림 일대에서 서쪽에 위치한 후기 扶餘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長春·農安 부근으로 비정하는 설이 일찍이 제기되었다.460) 문헌상 뚜렷한 시기인≪삼국지≫단계의 부여국은 東遼河 상류 송화강유역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는 바, 원부여 서쪽에 해당하는 도읍은 오늘날의 장춘 북쪽 伊通河畔의 농안 부근이라는 의견이 유력하다.461) 농안은 曹廷杰(1850∼1916)의≪東三省輿地圖說≫서문462)에서도 동삼성을 지배하려면 이 농안을 장악하여야 한다고 역설한 만주의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예족이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어온 비옥한 평야지대로, 하천유역의 비옥한 땅과 넓은 초원은 농업과 목축 발전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346년 백제로 표현된 세력의 침입으로 옮긴 부여성의 위치로 농안 일대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부여국의 후기 왕성과 관련하여≪遼史≫지리지의 通州와 龍州黃龍府에 관한 내용이 주목되고 있다.463) 이 기사에 의하면 통주는 용주황룡부였고, 발해의 부여성이며 부여국의 王城이었다. 그런데 이 용주황룡부는 1020년 이후 그 위치를 동북방인 지금의 농안 일대로 옮기게 되는데, 따라서 원래의 용주황룡부는 농안의 서남쪽 부근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464)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는 원래의 황룡부가 농안과 가까운 서남쪽, 즉 농안 부근에 있었다고 주장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부여가 “서쪽으로 연 가까이에 도읍을 옮겼다”는 기사를 다시 살펴보면 당시는 타국의 침략을 받아 급하게 피난을 가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山地가 있고 험한 곳,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역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평야지역인 농안·장춘지역은 일단 피난지로는 부적절했다고 판단된다.

 부여가 피난간 지역은 4세기 당시 연과 가까운 곳으로 뒤이어 부여는 연의 침입을 받게 된다. 346년 당시 부여 서쪽에 있던 연은 전연 모용황의 세력을 말한다. 이 당시 전연은 龍城(지금의 朝陽)으로 중심을 옮겨 서요하 이남지역과 요동의 鐵嶺·撫順·本溪를 포함하여 淸原까지 세력이 미치고 있었다.465)

 이러한 전연의 세력분포 범위를 고려한다면, 길림시 일대에 있던 부여가 왕성을 서쪽 연 근처로 옮겼다고 할 때 그 지역은 당연히 연의 以東지역과 가까운 四平·昌圖·西豊·遼源 등지였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이는 당시의 세력판도를 지도에 나타낸 다음의<그림 6>을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그림 6>340년 전후 동북아시아 제세력의 판도

 또한 346년 당시에는 길림 동북부의 挹婁 혹은 勿吉세력이 급속히 성장하여 부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466) 그리고 도리어 부여가 물길에게 쫓기는 상황이었다. 따라서≪자치통감≫에서 부여를 공격하였다는 백제는 물길, 구체적으로는 伯咄靺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467)

 최근 부여가 피난한 지역으로 西豊縣 城山子山城을 든 견해가 나왔는데468) 경청할 만한 주장이라 생각된다. 이 지역에서는 漢·魏시기의 유물은 보이지 않고 주로 고구려시기의 유물이 출토되는데 이는 부여시기의 부여성을 고구려가 그대로 사용했던 데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 7>성산자산성 평면도

 한편 길림 일대에서 서남쪽으로 이동하는 교통로를 분석한 결과 송화강 상류의 輝發河와 柳河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고대의 주된 교통로였다고 한다. 이는 346년 당시 부여의 피난경로를 추정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많으며서풍현 성산자산성을 후기 왕성으로 비정하는 데 하나의 방증이 된다고 한다.469) 특히 4세기 이후인 慕容廆시기 연의 위치는 朝陽과 錦州를 중심으로 한 요서지역과 서요하의 동북부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는 분석470)이 있다. 이에 근거할 때 ‘西徙近燕’했을 때의 부여의 위치는 길림지역의 서북쪽보다는 서남쪽인 서풍 일대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4세기 이후에 農安 서북지역에는 室韋나 烏洛侯의 선조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여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는 것이다.471)

 백제의 요서진출설과 관련하여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한강유역의 백제가 고구려지역을 지나서 부여를 공격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므로 이를 기록 그대로 백제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백제를 단순히 고구려의 誤寫로 보는 것도472) 문제가 있다. 만약 당시에 남쪽에 있던 고구려의 공격으로 부여가 피난하였다면 길림 북쪽 방면으로 도읍을 옮겨갔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므로 서쪽으로 연 가까이 옮겼다고 한 기록과는 어긋나는 셈이다.

 따라서 4세기 중엽 부여는 동북쪽에 존재한 물길·읍루 등의 세력에 밀려 피난하였고 그 방향은 서북쪽이 아닌 서남쪽의 어느 지역에 비정하는 주장도473) 충분히 고려하여 앞으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고학계에서 지금의 農安城지역을 수차례 조사한 결과 유물의 연대는 빨라야 발해 이후의 遼·金시대를 넘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早期 유적과 유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474) 후기 왕성의 비정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전성기인 3세기까지 부여의 영역은 길림 일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가장 합리적이나, 그 이후 단계의 중심지문제는 종래의 통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고고학 자료를 참조하여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宋鎬晸>

459)≪資治通鑑≫권 97, 晋紀 19, 穆帝 永和 2년 정월.
460)池內宏, 앞의 글.

日野開三郞,<扶餘國考>(≪史淵≫34, 九州大, 1946), 1∼104쪽.
461)盧泰敦, 앞의 글(1989), 35∼36쪽.

≪中國歷史地圖集釋文彙編≫東北卷 夫餘條(中央民族學院出版社, 1988), 32쪽.
462)傅朗雲,<評曹廷杰的歷史公的>(≪博物館硏究≫2期, 1989)
463)≪遼史≫권 38, 志 2, 地理 東京道 通州·龍州 黃龍府.
464)盧泰敦, 앞의 글(1989), 34∼36쪽.
465)≪中國歷史地圖集≫4, 東晋十六國 南北朝時期, 9∼10쪽.
466)≪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挹婁.
467)당시 史家들은 伯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音이 가까운 百濟를 써서 표기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孫進己·馮永謙 主編,≪東北歷史地理≫2,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89쪽).
468)王綿厚, 앞의 글, 83쪽.
469)王綿厚·李健才, 앞의 책, 178∼185쪽.
470)池培善,≪中世東北亞史硏究≫(一潮閣, 1986), 54∼56쪽.
471)≪魏書≫권 100, 列傳 88, 庫莫奚國·契丹國·烏洛侯國.
472)盧泰敦, 앞의 글(1989), 49쪽.
473)王綿厚, 앞의 글, 82쪽.
474)王綿厚, 위의 글, 82∼8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