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1. 부여의 성립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가. 부여국 전기의 왕성

 부여국의 중심지역, 즉 왕성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부여 왕성의 위치는≪資治通鑑≫의 기록에 따르면 후기에 서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전·후기로 나누어 고찰해야 한다.

 부여 전기의 중심지에 관해서는 西豊縣 西岔溝유적→老河深유적설438)이 주장되기도 하고, 한서 상층(Ⅱ기)→望海屯문화→노하심설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학계의 경우에는 ‘예성’이 있는 곳에 부여의 수도가 있었는데, 그곳은 오늘날의 ‘부여’ 일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439) 부여 전기의 왕성을 지금의 농안에, 후기 왕성은 요령성 昌圖縣 북쪽 40리의 四面城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440) 이와 달리 부여 본래의 위치를 농안의 동북방, 즉 송화강 북쪽의 雙城에서부터 그 북쪽에 있는 阿勒楚喀(일명 阿什河) 일대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441) 그러나 이곳에서는 漢·魏시기의 古城과 유물이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도군에서 북으로 천 리(지금의 700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과도 맞지 않으며, 346년 부여가 서쪽 燕 가까이로 이동하였다고 했으므로 阿什河 일대는 그 위치가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후한서≫와≪삼국지≫의 기록에 의거하여 부여는 초기부터 길림시를 중심으로 한 松嫩평원에 중심을 두었다고 보고 있다.442) 그 이유는 대개 길림시 일대의 서단산문화를 부여 선주민의 문화로 보고, 이후 길림 일대의 한·부여시기의 여러 유적과 유물, 특히 동단산 南城子古城을 부여의 중심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蛟河市의 新街古城址443)와 福來東고성지444) 등 길림시 교외에서 부여시기의 읍락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나와, 남성자유적을 왕성으로 주변의 고성지 유적은 하나의 읍락지역으로 볼 수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다.

 먼저 부여의 중심지역으로 현도군 북쪽으로 천 리 떨어진 곳을 찾는다면 마땅히 지금의 길림성 중부 송화강 중류 일대가 된다. 특히 용담산과 동단산 일대에서는 많은 漢代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445) 동단산유지에서는 한대 五銖錢을 비롯하여 청동거울 및 漢式 ‘長樂未央’ 와당이 나왔다. 길림 동단산에서 용담산에 이르는 철길 양측에서는 한대 무덤이 발견되었고, 陶爐·耳環 등 漢나라 시기의 무덤에서 항상 보이는 明器가 출토되었다.446) 특히 길림시 동단산에서는 남성자고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고성지는 동단산 남록의 높은 대지상에 위치하였고, 황토흙을 판축하여 주위를 두른 고성지로서 성 내부의 평면은 둥근 타원형을 띠고 있었다.447) 성 내부에서는 대량의 토기편과 벽돌·기와 및 銅鈴·陶俑 등 한대 부여의 유물들이 출토되었고,448) 고구려 및 발해시기의 유물이 산포하고 있었다.449) 이 고성에서 나온 유물로 보아 남성자고성은 한과 부여 이전 시기부터 존재하였으며 하한은 고구려와 발해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남성자고성지를 전기 부여국의 왕성으로 보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삼국지≫동이전 부여조에 따르면 “부여는 현도군에서 북쪽으로 천여 리 떨어진 곳에 왕성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곳은 바로 길림성 중부, 특히 길림시 일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둘째, 남성자고성은 평면이 대략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성책을 만드는데 모두 둥글게 하였으며 감옥과 비슷하다”고 한≪삼국지≫동이전 부여조의 기록과 들어맞는다는 것이다.450) 셋째, 남성자의 지리적 환경과 문헌의 기재가 부합한다는 점이다. 부여는 “처음에 鹿山에 있었고”, “산·구릉과 넓은 못이 많으며”, “남녀가 음란하고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이는데… 시체를 國 南山에 버린다”고≪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古음운학연구에 따르면 녹산은 오늘날의 동단산과 부근의 龍潭山을 가리킨다고 한다.451) 이 일대는 산이 중첩되어 있고, 강에 면한 개활지로서 넓은 못이 많다는 기록과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또 ‘國의 남산’이라는 것은 왕도(수도)의 남산을 지칭하는 것으로,452) 남성자의 동남쪽 1㎞ 떨어진 곳에 帽兒山이 있는데, 모아산 일대에서는 ‘有槨無棺’의 한대 봉토 토광목곽묘군453)이 발견되었다. 이곳이 바로 왕성의 남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발굴중이지만 모아산 일대에는 약 천여 기 이상의 토광목곽묘가 존재한다고 한다.454) 넷째, 남성자 안에서 서단산문화의 석기·토기 외에 대량의 한식이 아닌 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사실이다.455) 이는 예맥족계의 한 지파가 예족이 살던 ‘濊城’에 와서 서로 융합하여 부여를 건국하였던 사실을 반영한다는 것이다.456)

<그림 5>남성자 평면도 및 채집유물 ①

<그림 5>남성자 평면도 및 채집유물 ②
1. 陶豆, 2. 方格紋陶罐, 3. 銅鈴, 4∼7. 花紋磚, 8. 陶俑, 9∼10. 陶耳.

 최근에는 남성자의 규모가 주위가 1㎞ 정도로 비교적 작기 때문에, 이를 부여 왕성(지금의 용담산 기차역 부근)의 衛城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457) 대개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여 최근 대다수의 학자들은 남성자는 宮城이었고 용담산역 일대는 ‘都城’에 해당되며, 두 성이 합쳐져서 부여 전기의 왕성을 이루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의하는 한 立國 초기 및 3세기 전성시기까지의 부여 왕성은 서단산문화 이래 부여의 문화 및 중국 한대의 문화요소들이 많이 보이는 길림시 용담산·동단산 일대로 비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된다.458)

438)孫進己·馮永謙, 앞의 책, 256∼259쪽.
439)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앞의 글.
440)金毓黻,≪東北通史≫上編, 권 3(國立東北大學, 1977), 30∼31쪽.
441)阿勒楚喀 일대는 金朝의 발상지로 평야도 넓고 토양도 비옥하여≪魏書≫동이전에서 말하는 지세에 농안보다도 더 적합하고 녹산은 아륵초객 부근의 한 산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후기의 왕성은 농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池內宏, 앞의 글, 452∼454쪽).
442)李殿福, 앞의 글.

武國勳, 앞의 글.

盧泰敦, 앞의 글(1989).
443)山本首,≪蛟河敦化的古迹調査報告書≫(1938 鉛印本).

張忠培,<吉林市郊古代遺址的文化類型>(≪吉林大學社會科學學報≫1期, 1963).
444)董學增,<吉林蛟河縣新街·福來東古城考>(≪博物館硏究≫2期, 1989).
445)李健才, 앞의 글(1982), 170∼173쪽.

부여가 漢·魏와 관계가 밀접하여 使者의 왕래도 빈번하였기 때문에 한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아 부여 전기의 왕성은 한·위시기의 문화유물이 다수 출토하는 용담산성과 동단산 일대라고 추정하고 있다.
446)李文信,<吉林市附近之史的遺物>(≪歷史與考古≫1, 沈陽博物館專刊, 1946).
447)城은 남북에 두 개의 門이 있고, 담장은 주위 1,050m, 남문 부근에는 하나의 장방형 高地가 있으며, 남북 길이 150m, 동서 너비 73m이다(董學增, 앞의 글).
448)馬德謙,<談談吉林龍潭山東團山一帶的漢代遺物>(≪北方文物≫2期, 1991).
449)董學增,<吉林東團山原始·漢·高句麗·渤海諸文化遺存調査簡報>(≪博物館硏究≫創刊號, 1972).
450)李健才, 앞의 글(1982), 170∼173쪽.
451)吉林省地方志編纂委員會 編,<古代文物遺蹟>(≪吉林省志≫권 43, 文物志, 吉林文史出版社, 1994), 102쪽.
452)盧泰敦, 앞의 글(1989).
453)吉林市博物館,<吉林帽兒山漢代木槨墓>(≪遼海文物學刊≫2期, 1988).
454)吉林省地方志編纂委員會 編, 앞의 글(앞의 책), 102쪽.
455)董學增, 앞의 글(1972).
456)武國勳, 앞의 글.
457)李健才, 앞의 글(1982).
458)李健才, 위의 글.

武國勳, 앞의 글.

王綿厚, 앞의 글, 80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