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1. 가야연맹의 발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1. 건국신화와 시조신화
          • 1) 박혁거세 신화
          • 2) 석탈해 신화
          • 3) 김알지 신화
          • 4) 신라 신화의 특징
        • 2. 성립과 발전
          • 1)≪삼국사기≫초기 기록의 문제점
          • 2) 성립
            • (1) 사로 6촌의 위치와 성격
            • (2) 사로국의 형성
          • 3) 발전
            • (1) 내부체제의 정비
            • (2) 진한 소국의 복속
            • (3) 복속 소국에 대한 통제의 강화
      • Ⅱ. 신라의 융성
        • 1.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 1) 내물왕의 등장과 김씨 세습왕조의 성립
          • 2) 나제동맹의 결성
            • (1) 나제동맹 성립 이전의 대외관계
            • (2) 고구려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성립
          • 3) 마립간시대의 정치적 발전
            • (1) 왕권의 강화
            • (2) 축성사업
        • 2. 정치체제의 정비
          • 1) 배경
            • (1)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생산력의 발전
            • (2) 사회의 변동
          • 2) 부체제
            • (1) 부
            • (2) 6부의 기원과 성립
            • (3) 부의 구조와 기능
            • (4) 부대표자 회의-화백
          • 3) 지증왕대
            • (1) 지증왕의 등장
            • (2) 국호 및 왕호의 개정
            • (3) 지방제도의 정비
          • 4) 법흥왕대
            • (1) 율령의 반포
            • (2) 군사제도의 정비
            • (3) 불교의 공인
        • 3. 영토의 확장과 왕권강화
          • 1) 영토의 확장
            • (1) 한강유역의 확보와 백제·고구려와의 항쟁
            • (2) 가야의 병합
            • (3) 대지방민 정책
          • 2) 왕권의 강화
            • (1) 대왕호의 사용과 연호의 제정
            • (2) 상대등과 관부의 설치
            • (3) 화랑도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1. 중국과의 관계
          • 1) 조공의 의미와 대중국 교섭의 전개
          • 2) 수 이전의 중국과의 관계
          • 3) 당과의 관계
          • 4) 대당사행의 유형
        • 2. 왜국과의 관계
          • 1) 시기 구분
          • 2) 4세기 후반∼5세기 초 왜국과의 관계
          • 3) 5세기 왜국과의 관계
          • 4) 6세기 전반 왜국과의 관계
          • 5) 6세기 후반 왜국과의 관계
          • 6) 대수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7) 대당관계의 개시와 왜국과의 관계
          • 8) 당과의 군사동맹 강요와 왜국의 동향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관등과 관직
          • 2) 행정조직
          • 3) 화백회의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조직
          • 2) 군사조직
          • 3) 교통로 개척과 성곽시설
        • 3. 경제
          • 1) 농업
            • (1)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
            • (2) 수전의 확대
            • (3) 맥류 재배의 확산
          • 2) 수공업
          • 3) 상업
          • 4) 토지제도와 조세·요역제도
            • (1) 토지제도
            • (2) 조세·요역제도
        • 4. 사회구조
          • 1) 신라사회의 대본이 되는 골품제도
          • 2) 골품제도의 형성 배경
            • (1) 왕경 6부의 성립과 그 전개과정
            • (2) 율령의 수용과 신분층의 결정화 과정
          • 3) 골품제도의 계층 구성
            • (1) 골제-성골과 진골-
            • (2) 두품제
            • (3) 불완전한 사회성층의 지표-화랑도
          • 4) 골품제사회의 권력구조
            • (1) 경위제-골품제도와의 대응관계-
            • (2) 외위제―지방촌락사회의 계층구조―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1. 가야사 연구의 개관
          • 1) 가야사 연구의 전통
          • 2) 임나 문제의 제학설
            • (1) 임나일본부설의 성격
            • (2) 임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경향들
          • 3) 가야관계의 제학설
            • (1) 문헌사학 계통의 가야사 연구
            • (2) 고고학 계통의 가야문화 연구
        • 2. 가야사의 범위
          • 1) 가야의 명칭과 6가야
          • 2) 변한 및 임나와의 관계
          • 3) 가야사의 시기 구분
      • Ⅵ. 가야의 성립
        • 1. 가야의 풍토와 지리
        • 2. 가야의 건국 설화
          • 1) 가락국 수로왕 신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 3. 가야 제국의 성립
          • 1) 성립 배경
          • 2) 성립 시기
          • 3) 존재 형태
        • 4. 가야연맹의 형성
          • 1) 가야연맹의 성립
          • 2) 전기 가야연맹의 영역
          • 3) 전기 가야연맹의 해체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1. 가야연맹의 발전
          • 1) 후기 가야연맹의 형성
          •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 3) 후기 가야연맹의 영역
        • 2. 가야연맹의 약화
          • 1) 탁기탄국의 신라 투항
          • 2) 백제의 안라 걸탁성 진주
          • 3) 남가라국(금관국)의 신라 투항
          • 4) 백제의 구례모라성 축성과 안라 경영
        • 3. 가야의 멸망
          • 1) 대가야·안라 이원체제로의 분열
          • 2) 가야연맹의 자구노력과 백제 부용화
          • 3) 가야연맹의 신라 복속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1. 백제·야마토왜의 접근과 중개외교
          • 1) 4세기의 대신라관계
          • 2) 대백제관계의 시작
          • 3) 대야마토왜관계의 시작
          • 4) 대백제관계의 진전
        • 2. 대백제관계의 심화와 부용외교
          • 1) 신라·고구려의 침입과 대백제관계의 심화
          • 2) 야마토왜에 대한 군사기지 제공
          • 3) 백제군의 주둔
        • 3. 백제·신라의 각축과 분열외교
          • 1) 신라의 진출
          • 2) 백제의 직접지배 시도
          • 3) 가야의 멸망
      • Ⅸ. 가야인의 생활
        • 1. 산업의 발달
          • 1) 전기 가야의 산업
          • 2) 후기 가야시기
        • 2. 종교와 풍속
          • 1) 문헌에 보이는 가야의 종교
            • (1) 불교
            • (2) 유교
            • (3) 도교
          • 2) 가야의 신앙과 풍속
            • (1) 소도신앙
            • (2) 태양신앙
            • (3) 산악신앙
          • 3) 유물자료에 보이는 신앙과 풍속
            • (1) 장례 풍속
            • (2) 점복풍속
            • (3) 기타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대가야 세력권의 확립

 삼국 및 가야 사이의 국제관계는 6세기에 접어들어서도 큰 변화는 없어서 고구려·백제는 계속하여 변경을 다투며, 백제·신라는 서로 충돌하지 않았으나 변경을 정비하는 정도의 암투는 있었다. 신라는 그런 속에서 지증왕대에 들어 州縣制를 정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한편으로는 波里(원덕)·彌實(흥해)·珍德·骨火(영천) 등 12城을 쌓고 悉直州軍主를 두는 등 삼척방면의 동해안로 경영에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한 변경 정비와 영역 확보에 주력하느라고 신라는 백제·가야와 다툴 수 없었다.

 그러므로 대가야로서는 이 시기에 자기 세력을 정비하고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대가야의 세력권은 고령에서부터 서쪽으로 확산되어 합천·거창·함양 등을 거쳐 지리산 북록의 남원군 아영면 즉 阿莫山城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이는 고고학적으로 월산리 고분군과 건지리 고분군의 유적·유물성격이 고령 계통의 것임을 보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백제는 6세기 초 무령왕대에 南遷의 후유증을 거의 극복하고 남방경영을 서둘러서 지리산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그 결과 백제의 남방경영과 대가야의 西進政策이 부딪쳐서 대가야와 백제는「己汶」을 놓고 영역을 다투게 되는데, 당시에 기문은 대가야에 속해 있었다. 이 사실은≪백제본기≫를 토대로 하여 개작된 듯한≪日本書紀≫소재의 사료에 보인다.718) 여기서의 기문은 가야 계통 국명의 하나로서≪新撰姓氏錄≫吉田連條에 上·中·下의 3기문이 나오고,≪梁職貢圖≫소재의 百濟旁小國 중에 상기문이 나오며,≪삼국사기≫樂志의 우륵 12곡명 중에 상·하의 奇物이 나온다. 기문은 상·하 또는 상·중·하로 나뉘는 것으로 보아 넓은 지역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위치는 지금의 남원(옛 지명 古龍郡) 및 임실(옛 지명 任實郡 居斯勿縣)지방으로 비정된다.719)

 그러므로 5세기 말 내지 6세기 초 무렵에 대가야는 서쪽으로의 영토 개척을 더욱 추구하여 이미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북도 남원·임실지방을 영유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륵 12곡 중에 이들의 지명과 같은 상기물·하기물의 두 곡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물 즉 기문은 상당 기간 대가야의 영유 아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륵 12곡은 대가야 왕정에서 특별한 의식 때 연주되던 궁정음악 및 연맹체 소속국들의 음악을 궁정악사인 우륵이 듣고 가야금곡으로 편곡한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가야의 의식 때 기문국이 사람을 보내 고유음악을 연주케 할 정도였다면, 그 취득 방식도 백제의 부진함에 실망한 기문국이 자진하여 신흥 대가야의 연맹체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6세기에 들어와 왕권의 안정을 회복한 백제는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백제측은 대가야가 기문을「약탈」하였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림으로써 침공의 명분을 만들고, 왜에 五經博士 段楊爾를 보내는 등 문화 전수를 통하여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만든 다음 곧바로 반격하여 기문을 강압적으로 회복하였다. 6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남원 초촌리 고분군의 문화 성격은 백제의 지방지배력이 본격적으로 이 지역까지 침투해 왔음을 반영한다. 그 결과 가야와 백제는 소백산맥과 지리산을 자연적 경계로 삼게 되었다.

 또한 백제는 그 사실을 국제사회에 공표함으로써 힘을 과시하고, 성공의 여세를 몰아 가야의 커다란 이권의 하나였을 왜와의 교역 항구인 滯沙 즉 帶沙津·多沙津(하동)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였다. 이 경우에도 백제는 무리하게 대가야를 자극하지는 않고, 자기의 우수한 물품을 미끼로 왜를 하동으로 유인하여 그 곳에 대한 대가야의 기존 독점권을 유린하려 한 것이다. 이에 왜는 백제의 문화에 경도되어 백제측에 동조하였던 듯하다.720) 즉 가야의 무역권과 백제의 무역권이 경쟁하게 되자, 왜는 보다 이익이 많아 보이는 백제와 연결코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가야는 구태의연하게 왜의 한 세력에게 무역선을 보내 교역을 자청하였으나, 이미 백제가 사전 공작을 벌여 선수를 친 뒤라 효력을 보지 못하였다.

 앞서 5세기 후반에 후기 가야연맹체를 형성시키고 그 맹주로 대두한 대가야는 얼마 후 그 여세를 몰아 소백산맥을 넘어 남원·임실지방까지 진출하여 일시적으로 성공하였으나, 6세기 초에 이르러 백제의 반격과 세련된 대처방안에 휘말려 실패하고 도리어 하동 방면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제관계의 힘의 원리에 시달리면서 대가야는 점차 자기 세력 자체내의 결속을 강화해 나가는 수성기로 돌입하게 된 듯하다.

 그리하여 대가야는 팽창을 멈추고 주변과의 경계지역에 성을 쌓음으로써 자기 세력권을 안으로 정비해 나가게 된다. 즉 대가야는 子呑(진주)과 대사(하동)에 성을 쌓아 滿奚(광양)에 이어지게 하고, 烽候와 邸閣을 설치하여 백제 및 왜국에 대비하였다. 또한 爾列比(의령 부림)와 麻須比(창녕 영산)에 성을 쌓아 麻且奚(삼랑진)·推封(밀양)에까지 뻗치고, 사졸과 병기를 모아서 신라를 핍박하였다.721) 대가야의 축성 범위로 보아 후기 가야연맹 중에서도 대가야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세력권은 일단 소백산맥으로 서쪽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으로는 낙동강과 남강으로 경계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고령 계통 토기유물의 분포 범위와도 일치한다.

 또한 대가야는 당시에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무력을 행사하여 사방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그 영역을 확고히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좀더 좁혀서 생각한다면 가야연맹의 영역내에서 왜와 백제·신라 사이의 교역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대비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듬해 왜에 갔던 백제사신의 선박이 500명 정도의 수군을 태운 왜의 선박들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길에 沙都嶋(거제도)에 이르렀는데, 伴跛人 즉 대가야가 한을 품고 사납게 군다는 말을 듣고는 근처에 상륙을 못하여, 백제사신은 신라를 통하여 상륙하였고 왜의 선단은 곧장 帶沙江(섬진강 하구)에 이르러 정박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대가야는 그것도 용납하지 않고 6일만에 그들을 공격하여, 옷을 벗기고 가진 것을 빼앗고 천막을 모두 태웠으며, 왜선들은 달아나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汶慕羅(섬 이름, 미상)에 정박하였다.722)

 多沙津 즉 하동은 전통적으로 가야와 왜 사이의 교역항구였는데, 백제가 이를 빼앗아 왜와의 교역에 이용하려 한 것이고, 대가야는 이미 그 곳에 축성해 두고 지키고 있다가 저지하려 한 것이다. 왜의 선단은 지난번 기문을 둘러싼 백제·가야의 영역 다툼 이후로 백제의 우월성을 믿고 다사진에 와서 백제측의 교역 상대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를 용납치 않는 대가야의 공격을 받아 도망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가야는 왜에 대한 중개무역의 주도권을 백제에게 빼앗길지 모르는 우려감에서 군사력을 행사해서라도 하동지방의 이용을 억제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섬에 후퇴해 있던 왜인들은 그 다음 해에 결국 기문에까지 도착하였으며, 백제는 이들을 도성까지 불러들여 衣裳·斧鐵·帛布 등을 주어 후한 교역을 이루었다.723) 여기서 왜인 일행이 기문까지 어떻게 들어왔는 지는 불문하고, 그들이 일년 이상이나 기다렸다는 점이나 대가야의 방해를 무릅쓰고 통과하여 기문까지 도달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당시의 왜는 백제와의 교역에 대하여 집요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백제는 그들을 우월한 교역물품으로 유인하는 여유있는 태세였다고 생각된다.

 사건의 결과 대가야는 다사진 영유권 분쟁에서는 백제에게 이기고 하동을 지켜냈으나, 對倭貿易 경쟁에서는 결국 선진문물을 앞세운 백제에게 패배한 꼴이 되었다. 그 이후로 백제와 왜는 가야를 제쳐두고 빈번한 교역을 성립시켰을 것이므로 가야는 아직 내부체제도 정비하지 못한 중에 대외적인 고립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718)≪日本書紀≫권 17, 繼體天皇 7년 6월.
719)古龍의 발음은「komil」로 추정된다. 己汶의 위치에 대한 자세한 고증은 金泰植,<5세기 후반 大加耶의 발전에 대한 硏究>(≪韓國史論≫12, 서울大, 1985), 78∼87쪽 참조.
720)≪日本書紀≫권 17, 繼體天皇 7년 11월. 사료에서 왜가 己汶과 帶沙를 백제에게 주었다고 표현한 것은 그런 정도의 상황에 대한 왜곡일 것이다.
721)≪日本書紀≫권 17, 繼體天皇 8년 3월.
722)≪日本書紀≫권 17, 繼體天皇 9년 2월 및 4월.
723)≪日本書紀≫권 17, 繼體天皇 10년 5월.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