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무용·체육
1) 무용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 형성 이전부터 부여에는 迎鼓가, 예에는 舞天 등의 제천행사가 있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하는 기사가 陳壽의≪三國志≫에 실려 있다. 馬韓의 鐸舞,≪三國遺事≫駕洛國記에 보이는 蹈舞 등의 전통은 삼국시대까지도 그대로 전해져 내려왔으리라 짐작되나 그 춤의 형태나 내용은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이들 歌舞가 제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할 뿐이다.
당시의 춤의 형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고구려의 고분벽화가 있다. 다음<그림 1>은 4세기경의 舞踊塚의 벽화로 당시의 무용 내용과 형태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야외에 7명이 한 줄로 서 있는 남녀 가수의 노래 속에 긴소매가 달린 웃옷과 통이 큰 바지를 입은 4명의 남자와 긴소매가 달린 옷깃치마 입은 2명의 여자가 娑婆舞를 추고 있다.657) 남자 3명의 중간에 여자가 끼어서 전후로 일행을 이루고 좌측 전방은 일단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다른 한 남자는 대열을 마주보며 춤을 추는데, 마치 그 무용의 선두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시범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동작이 같아 팔을 앞뒤로 뻗치고 긴소매가 축 늘어진 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획일적으로 정렬되어 아름다운 춤의 모습은 질서정연히 날르는 기러기 떼와 같고 거기에 무용의 음율감이 첨가되어 훈련 잘 된 한 떼의 무용수를 연상시켜 준다.
이들 무용수의 바로 위에는 벽면에 바른 석회가 떨어져 나가서 사람의 형체는 없으나 한 사람의 두 발이 보인다. 최초의 보고에 의하면 이 사람은 阮咸 연주가라 한다. 이런 것으로 판단하건대 군무의 주요한 음향은 노래였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의 복장은 고구려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 중에 입는 것으로 남자는 꽃무늬가 있는 짧은 상의와 통이 큰 바지를 입었고 여자는 옷깃을 여민 긴 치마를 입고 있다. 여자 무용수는 머리를 곱게 빗었으며 남자는 대부분이 산뜻하고 깨끗하게 머리털을 풀어헤쳤는데 그 중 3명은 고구려 사람이 흔히 쓰는 折風을 쓰고 있다.
14명이 연출하는 무용에 관람자는 단 한 사람이다. 행렬의 전면에 개를 앞세우고 대단히 거만한 모습으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 고분의 주인일 것이다.
고구려 무용에는 群舞 이외에 혼자서 추는 獨舞와 두 사람이 함께 추는 二人舞도 있다.
<그림 2>의 두 사람은 모두 幘冠을 쓰고 긴소매가 달린 상의의 옷깃을 여며 입고 한 사람은 녹색바지 또 한 사람은 붉은 바탕에 검은 점의 꽃무늬 바지를 입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의 춤은 서로 다른 무용자세로 호응하는 것이 독특하다.
<그림 3>의 윗 부분에서는 왼편에 1남1녀가 대칭되게 서 있다. 남자는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에 하나의 연봉오리를 들었으며 여자는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좌우로 각각 한 송이 연꽃의 줄기가 가슴 앞에 매여져 있다. 그녀의 뒤에 다른 여자가 거문고를 들고 서 있다. 화면의 전체 구도로 보아 이 세 사람은 독무의 완료를 기다리는 다음 순서의 2인무를 출 무용수로 보인다.
<그림 3>의 아래 부분 그림은 한 여자가 거문고를 타서 반주하는 남자의 독무이다. 무용수는 짧은 상의와 통이 큰 바지를 입고 왼쪽 다리를 가볍게 들고 오른쪽 어깨를 펴고 왼팔을 쳐들어 손을 가슴 위에 올려 놓고 있는데 이 모습은 옷소매의 형태로 보아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태연자약한 편안한 자세를 나타내주고 있다.658)
고구려에서는 이미 4∼5세기에 군무·2인무·독무 등의 무용형식이 정비되어 있었으며 귀족의 관람을 위한 직업무용단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고구려의 춤에 관해 문헌자료를 찾아보면≪三國史記≫樂志에 그 일단이 피력되어 있다.659)
신라에서는 8월 15일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음악과 춤을 즐겼는데 이때의 음악이 會蘇曲이다. 중앙관서에는 음악·노래·춤을 관장하는 音聲署가 설치되어 六頭品 출신의 長이 이를 관장하고 있었다.660) 당시의 춤으로는 내물왕 때에 만든 歌舞가 있었으며 가야금에 맞추어서 추는 춤으로는 韓伎舞·美知舞·碓琴舞 등이 있었다.661) 그러나 당시의 춤의 내용이나 그 형태는 후세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백제의 춤으로는 현재 그 이름조차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은 백제 멸망 이후 唐나라에서 외롭게 백제악의 전통을 이어갔던 백제인들의 춤을 묘사한 다음의 구절뿐이다.
춤추는 사람은 두 사람인데 큰 소매 달리 붉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章甫冠을 썼으며 가죽신을 신었다(≪三國史記≫권 32, 志 1, 樂)
삼국시대의 무용은 악기·춤·노래가 혼합된 종합공연예술의 성격이 강하며 국가의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서 전문무용소가 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