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구려의 의생활
삼국의 의복이 비슷하였음은 문헌자료740)와 회화·유물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삼국 가운데에서 일찍부터 여러 문화를 수용하여 다른 나라에 전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後漢書≫東夷傳,≪三國志≫魏書 동이전,≪梁書≫諸夷傳,≪南史≫동이전 등의 고구려조에는 “시월에는 동맹이라 일컫는 제천을 위한 공회가 있어, 이때의 의복은 모두 繡錦·金銀으로 장식했으며, 大加主簿는 머리에 無後幘을 착용하였고, 小加는 折風弁을 착용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北史≫열전,≪周書≫異域傳,≪隋書≫동이전 등의 고구려조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모두 弁과 같은 折風을 썼으며(≪수서≫에는 皮冠), 士人은 여기에 二鳥羽를 꽂았는데 특히 貴人의 冠은 蘇骨多라고 하여 紫羅로 만들었으며 金冠으로 수식하였다. 그리고 의복은 大袖衫(≪주서≫에는 袖衫)·大口袴를 입고 素皮帶를 띠었으며 黃革履를 신었다. 또 부인의 裙襦의 거수에는 모두 선을 가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新唐書≫동이전에는 “王服은 五采服이며 王冠은 금테를 두른 白羅冠이었고 여기에 金釦를 장식한 革帶를 띠었으며, 大臣級은 靑羅鳥羽冠, 일반 官人은 絳羅鳥羽冠에 모두 금은을 장식하였고 의복은 筒袖衫·대구고 위에 白韋帶를 띠었으며 黃革履를 신었다. 그리고 庶人은 褐衣를 입고 弁을 썼으며 여자는 머리에 巾幗을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740) | ≪三國志≫권 30, 魏書 30, 東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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