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Ⅲ. 경제와 사회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1) 수공업의 발달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수공업 분야에 상당한 기술적 발전이 있었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고구려·백제의 기술까지 포용하고 중국과의 교류를 통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기술을 수용한다는 범위를 넘어서서 신라 특유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시기 수공업 기술의 발전은 주로 궁중·관영수공업 분야의 것이었지만, 이 또한 귀족이나 민간 수공업분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白紙墨字大方廣佛華嚴經寫經>(755)에서 볼 수 있듯이 경위와 외위의 관등을 가진 장인들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진 불사에 일종 工價를 받고 작업을 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 관장들의 기술이 일반 장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애장왕 5년(804) 승려 장인인 覺知師가 禪林院鐘을 주조하였던 데서 볼 수 있듯이, 기술적인 문제로 인하여 관장들이 주도하였던 주종이 9세기 초엽에는 점차 일반 승장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수공업과 일반 수공업 사이에 기술적인 교류가 있었고, 그 결과 사회 전반적으로 수공업기술이 제고되었음을 보여준다.

 먼저 통일신라시대의 철생산은 자석 등의 광물을 생산하여 중국에 수출하기도 했으며, 이와 함께 철의 사용량도 전시대에 비하여 놀랄 만큼 증가하였다. 이는 신라가 이 시기에 이르러 중고기에 비하여 채광 및 야철기술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채광법의 발전은, 원광석이 砂鐵에서 赤鐵鑛 또는 磁鐵鑛 등의 보통 광석으로 바뀐 것에서 살필 수 있는 바,0418) 삼국시대에는 露天法이었던 것이 통일 이후 땅속의 광맥에 따라 수직으로 갱도를 파내려가 채광하는 竪坑法으로 변하였다.0419) 야철법에 있어서도 종래 삼국시대에는 原鑛과 木炭의 炭燒式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통일 이후에 규모를 확대시켜 도가니와 풀무를 이용한 방법으로 발전하였다.0420)

 철가공 기술은 鑄鐵과 鍛鐵技術을 들 수 있다. 주철기술은 삼국시대에 馬具나 무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그 후 점차 합금기술이 발달함으로써 불상이나 종을 조성하거나 솥 등의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데 이용되었다. 특히 무기와 농구류의 경우 삼국시대에는 주로 炒鋼法에 의해 생산된 중·고탄소강의 철소재를 목탄 중에 가열하여 반복 鍛打하는 방법이었으나,0421)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으로 인정되는 馬塚 138호분과 안압지·황룡사지·월정교·월성해자에서 출토된 무기·농구류의 경우 대부분이 섭씨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용해한 白鑄鐵로서 주조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0422)

 한편 금속의 넓게 펴지는 성질이나 열을 가하면 용해되는 성질 등을 이용하여 금속제품을 가공하는 기술도 발달하였는데, 대체로 板金法과 打出法 등의 기술이 사용되었다. 또한 금속제품을 장식하는 기술 곧 彫金技術로는 魚子文과 象嵌, 線彫技術 등을 비롯하여 금가루와 금실로 무늬를 장식하는 鏤金細工技術(Filigree 기술)이 있었다. 이러한 기술은 7, 8세기 무렵 각종 사리장엄구나 器皿·粧飾金具 등에 連珠文帶와 함께 이용되었는데, 통일신라 토기나 나말려초 도자기에까지 응용되어 고려시대의 독특한 청자상감법을 창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금속제품을 장식하는 기술로서 鍍金法을 들 수 있는데, 아말감에 의한 도금과 金箔鍍金·漆箔法 등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주로 금아말감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수은에 금을 섞어서 동 또는 동합금한 제품에 바른 후 이를 가열하여 수은을 증발시킴으로써 금만을 남게 하여 도금하는 방법이었다.0423)

 다음으로 통일신라시대에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는 수공업 제품으로 궁중수공업 관사에서 생산하였던 직물류를 들 수 있다. 이는 중국과의 교역 물품 가운데 보이는데, 7세기부터 비단류의 품목이 다양해지고 보다 섬세한 베가 생산되었다. 그 후 8세기 무렵에는 명주류와 모직물류가 새로이 나타나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의 유입이나 또는 직물류의 기술을 모직물에 응용한 결과였다. 또한 이 시기에 五色氍毹 등 염색과 관련된 직물류의 이름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염색기술상의 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비단류에 문양을 내는 기술과 함께 가는 베류의 직조기술이 마직물이나 모직물의 직조에 응용되기도 하였다.

 한편 통일신라의 토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정형화된「신라토기」를 계승하면서 백제와 당나라의 기술이 일부 수용된 형태로 발전하였다. 7세기초에 이르러서부터 당나라 영향을 받은 그릇 모양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전후하여 스탬프로 문양을 찍은 인화무늬 토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초기 통일신라의 토기로 이해되는 경주 西岳里 石室墳 출토 굽다리접시나 목항아리는 고식 신라토기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안압지에서 출토된 일련의 토기 가운데 홈이 파인 구연고배 등은 백제 계통이며, 그리고 신라의 고배와 수·당 계통의 굽달린 사발(盌)이 합해진 다리 달린 사발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신라의 전통적인 토기 형식에다 백제나 중국의 토기 형식을 가미한 것이었다. 특히 안압지 출토 굽다리접시에는 물고기알무늬(魚子文)가 보이는데, 이는 7세기 무렵 각종 금속제품의 장식문양으로 이용되었던 것이 토기에까지 응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후 忠孝洞古墳 단계에서는 굽다리접시의 뚜껑이 완전히 사라져,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고배의 형식 곧 다리에 아주 작은 구멍을 가진 뚜껑없는 굽다리접시(無蓋高杯)의 전형을 이룬다.0424) 이와 아울러 9세기 무렵에 중국 浙江省 지구의 越州窯 햇무리굽 청자가 당시 활발한 사무역에 힘입어 도입됨으로써 고려청자의 기원을 이루기도 하였다.0425)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나타난 토기 제작기술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뼈단지나 鬼面瓦 등에 유약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종래의 신라토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굽는 과정에서 잿물에 의한 자연유만이 나타났던 것인데, 7세기 중엽부터 鉛釉 즉 산화연을 염기로 하는 유약과 灰釉의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 시기 토기의 형식이 그러하듯이 백제·중국을 통하여 전래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유는 용해도가 섭씨 700∼800도에 불과하여 가마의 온도가 올라가면 모두 타버리기 때문에, 연유를 바른 토기는 저화도의 산염으로 구워야 하고, 고온 환원염의 전통 신라토기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유약을 바른 토기는 회백색 또는 적갈색의 빛깔을 띤 軟質土器로서 실용성보다는 특수 용도에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0426)

 통일신라시대의 조선기술은 문무왕 18년(678) 船府라는 독립된 관사를 설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발달한 해상력에 기인하지만, 실제로 당시의 조선기술이 어떠하였는지, 배의 형태와 구조가 어떠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5, 6세기 무렵의 연안용 소형 배모양의 금령총 출토의 배모양 토기(호암박물관 소장)와 안압지에서 출토된 7, 8세기 무렵의 놀이배(경주 국립박물관 소장)만이 현존할 따름이다. 특히 안압지에서 출토된 배는 韓船의 초기 모습을 전해주는 半構造船으로서 L자형 邊材, 독특한 나무못(木釘), 加龍木 등 우리 나라 고대선의 특징을 보여주며, 11세기 중·후반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莞島船」과 상통한다고 한다. 이는 신라시대에 중국선이나 일본선의 구조와 선형을 달리하는 독자적인 구조법에 의한 한선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0427)

 사실 신라선에 관한 기사는 우리측 사료상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에, 오히려 일본측 사료에 많이 보이고 있다.≪續日本後紀≫권 8, 仁明天皇 承和 6·7년조에는 9세기 중엽의 신라선이 ‘바람과 파도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또는 ‘능히 파도를 헤치고 갈 수 있다’는 우수한 배로 소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신라선은 9세기 초엽 張保皐가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해상권을 장악할 때에 이미 존재하였는데, 당시에 장보고의 원양무역선은 갑판 위에 선실을 두고 돛대를 두 개 이상 장비한 平底型船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중국선인지, 신라 고유의 배인지, 아니면 양자의 절충형인지는 분명하지 않다.0428)

 그런데 9세기 초엽 중국을 다녀온 일본 승려 圓仁의≪入唐求法巡禮行記≫에 따르면, 원인 일행이 신라인 통역자 金正南의 주선으로 개성 4년(839) 윤정월 4일에 새로 산 배를 수리한 바 있는데, 楊州로부터 楚州에 보냈던 都匠·番匠·船工·鍛工 등 36명의 장인들은 신라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장보고의 원양무역선 등의 기술적 계통은 분명하지 않지만, 신라인 장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져 신라인 수수·초공들을 중심으로 운항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원인 등이 이러한 배를 이용하여 일본에 귀국한 이후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9세기 중엽경에 이르러서는 일본인들이 다투어 신라선을 선호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라에서의 제염법은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光宗 9년(958)에 세워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의 ‘바닷물을 찌는 수고를 더하고’라는 문구에서 바닷물을 쪄서 농축시키는 방법(海水直煮式)으로 소금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0429) 이러한 제염법은 많은 재목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대체로 재목과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닷가에 鹽盆 등을 설치하였다.「鹽盆」은 일반적으로 바닷물을 찌는 가마솥을 말하는데, 경문왕 12년(872)에 세워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의 끝부분에 이에 관한 기록이 있어 지금까지는 염분을 토지 면적단위인 結로 표시했다는 점에 착안하여, 鹽田과 염분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소금 생산시설을 일컫는 용어로 추측하여 왔다.0430) 그러나 고려·조선시대를 막론하고 염분은 소금을 찌는 가마솥을 일컫는 이름이었으며, 이를 세는 단위도 坐數나 所를 사용하였고, 염분은 솥의 크기에 따라 大釜·中釜·小釜 등으로, 그리고 솥의 재질에 따라 鐵盆·土盆 등으로 구분되었다는 점에서 10세기 중엽까지의 제염법은 여전히 바닷물을 쪄서 소금을 농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이라 하겠다.0431) 다만 이 시기에 단편적이나마 민간에 소금이 유통되었음직한 기록이 있어서,0432) 소금 생산량이 이전 시기에 비하여 상당히 증가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0418)尹東錫,<統一新羅의 鐵器>(≪三國時代 鐵器遺物의 金屬學的 硏究≫, 高麗大出版部, 1989), 203쪽.
0419)尹東錫,<古新羅의 鐵器>(위의 책), 134∼135쪽.
0420)尹東錫, 앞의 글(1989a), 134∼135쪽.
0421)尹東錫, 앞의 글(1989b), 136∼145쪽.
0422)尹東錫, 앞의 글(1989a), 158∼204쪽.
0423)李蘭暎,≪韓國古代金屬工藝硏究≫(一志社, 1992), 173∼256쪽.
0424)金元龍,≪新羅土器≫(열화당, 1981), 84∼90쪽.
0425)鄭良謨,<槪說 高麗靑瓷>(≪高麗靑瓷名品特別展≫, 國立中央博物館, 1989), 268·281쪽.
0426)金元龍, 앞의 책, 16∼19쪽.
0427)金在瑾,<張保皐 時代의 貿易船과 그 航路>(≪張保皐의 新硏究≫, 莞島文化院, 1985), 148∼149쪽.
0428)金在瑾, 위의 글, 147∼151쪽.
0429)崔仁渷 撰,<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朝鮮金石總覽≫上, 朝鮮總督府, 1919), 182쪽.
0430)權寧國,<14세기 榷鹽制의 成立과 運用>(≪韓國史論≫ 13, 서울大, 1985), 15·30쪽.
0431)朴南守,<각종 수공업기술의 발달>(앞의 책), 81∼87쪽 참조.
0432)≪三國遺事≫권 3, 塔像 4, 三所觀音 衆生寺.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