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Ⅲ. 경제와 사회4. 천민의 생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노비

 신라장적에는 4개 촌의 전체 인구 462인 가운데 노비가 25명이 기록되어있다. 25명이라는 노비의 숫자는 437명의 양인 숫자에 비하면 5.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唐代에 총인구 5천 만에 대한 노비 2백 만이 차지하는 비율인 4%보다0564) 1.4%나 높은 비율이다. 이처럼 왕경에서 멀리 떨어진 西原京 부근의 촌에도 노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당시에 노비가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0565)

 신라장적에는 양인을 남녀·연령별로 나누어 큰 글자로 기록해 놓고, 노비의 수는 양인의 성별과 연령에 맞추어 작은 글자로 기록해 놓았다. 이는 신라장적을 작성한 국가권력이 노비를 양인과 차별대우하였고, 장적의 작성 근거가 된 신라의 율령에서도 차별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노비는 그 귀속대상에 따라 公奴婢와 私奴婢로 나누어진다. 공노비는 왕실이나 관아에 소속된 노비를 말하며, 사노비는 개인이나 사원이 소유한 노비를 말한다. 사노비를 다시 率居奴婢와 外居奴婢로 나누기도 하고, 納貢奴婢와 使喚奴婢로 구분하기도 한다.

 노비는 발생유형에 따라 포로노비·형벌노비·부채노비·매매노비 그리고 출생에 의한 세습노비로 구분된다.0566) 삼국통일을 계기로 포로노비의 공급이 중단된 반면에 부채노비가 노비발생의 중심적 요인으로 등장하였다.0567)

 전쟁포로노비는 진흥왕 23년(562)에 사다함에게 포로로 잡은 200명을 상으로 주었다는 기록을 통하여 그 존재를 유추해볼 수 있다. 형벌노비는 문무왕 13년(673)에 아찬 大吐가 모반하여 唐에 붙으려다가 탄로되어 그 자신은 사형을 당하고 그 자식은 賤에 편입되었다는 기록을 통하여 그 존재가 확인된다. 부채노비의 경우는≪新唐書≫新羅傳에 곡식을 꾸고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는다고 한 기록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매매노비는 눌지왕 4년(420)과 진평왕 50년(628)에 백성이 굶주리다 못해 자식을 파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역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三國史記≫孝女 知恩傳에도 보면 지은은 자기 몸을 스스로 婢로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한다. 국왕이 관노비를 하사하여 사노비로 된 경우는 문무왕 2년(662)에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하사한 노비를 들 수 있겠다.0568) 출생에 의해 노비로 된 경우는 A촌의 문서에 보이는 三年間中小女子 가운데 포함된 비 1명을 들 수 있다. 신라장적은 율령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 장적에 출생노비가 기재되었다는 사실은 노비의 신분세습이 율령에 규정되어 있었음을 나타낸다.

 노비는 牛馬나 기타 재물과 같이 매매·증여·교환·재산분할의 대상이었다. 효녀 지은이 32세에 婢子가 되어 쌀 10여 석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면,0569) 노비의 가격이 쌀 10여 석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丁婢라 하더라도 얼굴이 예쁘거나 일을 잘하는 경우는 이보다 더 비싼 가격에,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보다 싼 가격에 매매되었을 것이다. 또 丁奴나 追子 이하의 연령에 해당하는 노비도 이보다 싼 가격에 매매되었을 터이다.

 노비와 양인 사이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노비의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규정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에서 주인이 자신의 私奴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는≪삼국사기≫丕寧子傳에 전해진다. 이를 보면 진덕왕 원년(647)에 김유신의 독려를 받고 비녕자가 新羅軍의 사기진작을 위해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비령자의 아들 擧眞도 적진을 향해 돌격해 들어가려 하자, 그의 私奴인 合節이 말고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에 거진이 합절의 팔을 끊고 적진중으로 달려가 싸우다 죽었다고 한다. 여기서 아무리 전쟁중이라 하더라도 주인이 사노의 팔을 베었다는 사실은 평소에도 주인에게는 자신의 사노에게 상해를 입혀도 범죄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訥催傳에서 사람들이 눌최에게 ‘종이 재주가 있으면 害가 되니 멀리 하라’고 한 말을 통해서 보면, 평소에는 國法이 엄격히 적용되므로 노비가 주인의 말을 잘듣고 구타를 당하면서도 복종하지만 전쟁터에서와 같이 生死가 혼란스러운 지경에서는 노비가 주인을 해치는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신라에서도 주인이 노비를 가해한 경우는 범죄가 구성되지 아니하나 노비가 주인을 가해한 경우는 엄격히 처벌하였던 것으로 헤아려진다. 이에 합절은 자신의 팔을 끊은 주인을 가리켜 私天이라 하면서, ‘사천이 무너졌는데 죽지 않고 무엇하리요’라는 말을 남기고 적진으로 들어가 싸우다 전사하였다.0570)

 신라장적에 보이는 노비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인간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갖지 못한 존재였다. 이들 노비는 대부분 私奴婢였다. 노비는 조·용·조의 부담을 지지 않았다. 또 노비는 토지나 가옥을 원칙적으로 소유할 수 없었다. 이는 신라장적에서 丁奴를 제외시키면, 호등별 토지결수와 丁數를 어느 정도 일정한 비율로 일치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0571) 따라서 노비를 포함시켜서 신라의 9등호제가 설정된 것으로 볼 경우에는 土地와 人丁數의 비례관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호등별 인정수에 노비를 포함시키게 되면, 토지와 인정수의 비례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은 노비가 給田의 대상도 토지소유의 주체도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양인이 재산의 소유권이나 토지 경작권을 가진 권리 주체임과 동시에 조·용·조나 軍役의 의무를 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여, 노비는 권리의 주체도 아니고 의무의 주체나 객체도 아니었다.≪삼국사기≫의 기록에 奴들이 주인과 함께 전쟁에 나아간 기록이 보이지만, 이들 노에게 군역의 의무가 부과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노비는 군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출전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사유물로서 출전하였다. 그래서 公民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없었던 노비는 賣買·質入·分割 등의 처분 대상이 되었다. 노비에게 의무가 주어졌다면, 율령국가의 신분구조인 良賤制를 받아들이고 인간사회의 기본질서를 존중하면서 말없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할 의무만이 주어졌다.0572)

 신라장적에 보이는 노비는 사노비로서 사역되었다. 노비의 대부분은 丁年層이고, 노년층이 전혀 없으며 아이의 숫자도 아주 적다. 이에 대해서 노비는 부부와 자식이 함께 거주하는 가족생활을 하지 못하였으며 노비가 절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0573) 반면에 비록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노비도 어느 정도의 가족생활은 하였으며, 노비는 증가추세에 있고, 평민 사이에도 상당한 계층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0574)

 ≪삼국사기≫孝女 知恩傳에서는 효녀 지은이 부자집의 婢子가 되어 그 집에서 종일토록 일을 하고 날이 저물어야 밥을 지어가지고 집으로 와서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고 전한다.0575) 이를 통해서 노비도 어느 정도의 가족생활은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인 가족생활은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노비는 부부와 자식이 함께 동거하면서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고 생각된다.

 노비가 부부와 자식이 동거하는 형태의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장적에는 어린 노비가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출생에 의한 노비가 존재하는 한, 노비의 정상적인 가족생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비의 공급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출생에 의한 노비공급원 이외에 노비공급을 가능하게 한 현상으로 촌락사회의 계층분화를 들 수 있다. 촌락사회 내부에서 계층분화가 일어나고 소득격차가 심해지면서, 일부 富農에게는 노비를 더 많이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를 마련해주었지만, 극빈층의 농민에게는 노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에 효녀 지은처럼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팔아서 노비가 되거나, 자식을 노비로 팔아먹는 경우가 있었다. 촌락사회 내부의 계층분화가 또다른 노비공급원이 되었던 것이다.0576) 이렇게 공급된 노비는 귀족의 경제기반이 되었다.0577) 하지만 노비는 신라 하대의 왕위쟁탈전에서 귀족의 사병으로 활동하여 커다란 사회불안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李仁哲>

0564)尾形勇,<良賤制の展開とその性格>(≪岩波講座 世界歷史≫5, 1970), 332쪽.
0565)旗田巍,<新羅の村落>(≪歷史學硏究≫226·227, 1958∼1959;앞의 책, 445쪽).
0566)盧泰敦,<統一期 貴族의 經濟基盤>(≪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6), 135쪽.
0567)高慶錫,<三國 및 統一新羅期의 奴婢에 대한 고찰>(≪韓國史論≫28, 서울大, 1992, 39∼56쪽).
0568)≪三國史記≫권 6, 新羅本紀 6, 문무왕 2년.
0569)≪三國史記≫권 48, 列傳 8, 孝女知恩.
0570)≪三國史記≫권 47, 列傳 7, 丕寧子.
0571)李仁哲,<新羅統一期의 村落支配와 計烟>(≪韓國史硏究≫54, 1986;≪新羅政治制度史硏究≫, 一志社, 1993, 244∼246쪽).
0572)李仁哲, 앞의 책(1993),173∼174쪽.
0573)旗田巍, 앞의 책, 445쪽.
0574)金鍾璿,<正倉院 所藏 新羅帳籍에 나타난 奴婢>(≪歷史學報≫123, 1989), 60∼82쪽.
0575)지은은 일종의 使喚奴婢였다고 생각된다.
0576)李仁哲, 앞의 책(1996), 190∼191쪽.
0577)盧泰敦, 앞의 글, 134∼14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