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9권 통일신라Ⅳ. 대외관계1. 당과의 관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1. 삼국통일 과정
          • 1) 7세기 신라의 내정변화
          • 2) 대여제항쟁과 나당군사동맹
            • (1) 대여제항쟁
            • (2) 나당군사동맹
          • 3) 백제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백제의 패망
            • (2) 백제국 부흥운동의 진압
            • (3) 새로운 나제관계
          • 4) 고구려의 패망과 부흥운동
            • (1) 고구려의 패망
            • (2) 고구려국 부흥운동
          • 5) 대당전쟁
            • (1) 대당전쟁의 원인
            • (2) 대당전쟁의 승리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1) 민족융합의 문제
          • 2)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1. 무열왕계의 왕권확립
          • 1) 문무왕의 왕권강화
          • 2) 김흠돌란의 발생
          • 3) 신문왕의 개혁정치
        • 2. 전제왕권과 귀족
        • 3. 중앙통치조직의 정비
          • 1) 중앙통치조직의 정비과정
          • 2) 중앙통치조직
          • 3) 내정기관의 정비
          • 4) 재상제도의 운영
        • 4. 지방·군사제도의 재편성
          • 1) 9주 5소경
          • 2) 군사조직
            • (1) 중앙의 군사조직
            • (2) 지방의 군사조직
          • 3) 진과 성곽시설
        • 5. 토지제도의 정비와 조세제도
          • 1) 토지제도
            • (1) 관료전
            • (2) 녹읍
            • (3) 정전·연수유전답
          • 2) 조세제도
            • (1) 전조
            • (2) 호조
            • (3) 부역
      • Ⅲ. 경제와 사회
        • 1.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
          • 1) 수공업의 발달
            • (1) 궁중수공업과 관영수공업
            • (2) 민간수공업
            • (3) 각종 수공업 기술의 발달
          • 2) 상업의 발달
            • (1) 국내 상업
            • (2) 대외교역
        • 2. 귀족의 경제기반
          • 1) 사유지와 목장
          • 2) 식읍
          • 3) 녹읍과 녹봉
          • 4) 문무관료전
        • 3. 농민의 생활
          • 1) 신라장적
            • (1) 문서의 성격과 작성연도
            • (2) 신라장적과 농민생활
          • 2) 촌락과 농민의 지위
        • 4. 천민의 생활
          • 1) 향·부곡
          • 2) 노비
        • 5.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머리장식
            • (2) 의복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Ⅳ. 대외관계
        • 1. 당과의 관계
          • 1) 친당외교의 추진
          • 2) 나당 친선외교의 확립
        • 2. 일본과의 관계
          • 1) 7세기 후반∼8세기 일본과의 국가간 교섭
          • 2) 9세기 전반 일본의 사신파견
          • 3) 신라상인에 의한 무역의 전개
          • 4) 9세기 후반 일본의 신라에 대한 경계강화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 (2) 황해횡단항로
            • (3) 남방해로
            • (4) 선박과 항해술
          • 2) 해외무역
            • (1) 수출품
            • (2) 수입품
            • (3) 일본과의 교역
            • (4) 이슬람과의 교역
          • 3) 당에서의 활동
            • (1) 유학생과 문인의 교유
            • (2) 구법승의 순례
            • (3) 재당신라인과 무역상
      • Ⅴ. 문화
        • 1. 유학과 역사편찬
          • 1) 유학의 발달
            • (1) 성격
            • (2) 유학의 발달
            • (3) 도당유학생의 활동
          • 2) 역사의 편찬
        • 2. 불교철학의 확립
          • 1) 교학의 발달
            • (1) 유식사상
            • (2) 원효 교학
            • (3) 화엄교학
            • (4) 계율학
          • 2) 불교신앙의 일반화
            • (1) 미타신앙
            • (2) 관음신앙
            • (3) 미륵신앙
            • (4) 지장신앙
          • 3) 승려들의 국가적 활동
        • 3. 과학과 기술의 발달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와 천문현상의 기록
            • (2) 천문도의 도입과 천문기관의 발달
            • (3) 해시계와 물시계
            • (4) 역법과 연호
            • (5) 수학과 도량형
          • 2) 땅의 과학과 기술
            • (1) 풍수지리와 지리학
            • (2) 농업기술과 생물 지식
            • (3) 풀·나무·흙의 기술:종이·직물·유리·도자기
            • (4) 쇠붙이의 기술
          • 3) 사람의 과학과 기술
            • (1) 의약학
            • (2) 빙고-얼음의 저장 이용
            • (3) 인쇄술
            • (4) 간단한 기계와 자동 장치
            • (5) 탑과 건축
            • (6) 선박 기술
        • 4. 언어와 문학
          • 1) 이두와 언어
            • (1) 고대국어의 자료와 표기법
            • (2) 차용어
            • (3) 문법
          • 2) 향가
          • 3) 한문학
            • (1) 한문학의 전개
            • (2) 한문학의 의의
        • 5. 예술
          • 1) 회화
          • 2) 서예
            • (1) 초기의 서풍
            • (2) 서풍의 발전
            • (3) 후기의 선풍 글씨
          • 3) 조각
            • (1) 불교조각
            • (2) 탑과 부도의 조각
            • (3) 일반 조각
          • 4) 공예
            • (1) 금속공예
            • (2) 토기 및 와당과 전
          • 5) 건축
            • (1) 사원 건축(목조)
            • (2) 궁실 및 연못
            • (3) 고분
            • (4) 석조건축
            • (5) 성곽
          • 6) 음악
            • (1) 역사적 배경
            • (2) 향악과 향악기
            • (3) 당악과 불교음악의 대두
            • (4) 일본에서의 고려악
          • 7)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Ⅳ. 대외관계

1. 당과의 관계

1) 친당외교의 추진

 신라가 唐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때는 眞平王 43년(621)이었다. 당시 3국은 隋의 등장(581) 이후 외교전쟁을 치열하게 추진하였으며, 당도 수 이래로 빈번한 고구려원정에 실패한 과거의 복수심에서 3국, 특히 고구려에 대한 견제의 정략으로 진평왕 46년에 책봉을 하였다. 따라서 통일 이전까지의 朝貢을 중심으로 한 3국과 당과의 외교관계는 고구려가 25회, 백제는 22회, 그리고 신라는 34회에 이르렀다.0667) 그러므로 통일 이전에도 이미 신라의 대당외교관계는 백제·고구려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3국의 외교전쟁은 遣唐使의 파견에도 나타나 있다. 즉 고구려의 경우 桓雄(영류왕자)·任武와 福男(보장왕자)의 예나, 백제의 福信(무왕의 조카), 그리고 신라의 경우는 金春秋와 그 아들(法敏·仁問·文王) 및 고구려 왕족(淵淨土)을 사신으로 보낸 사실에서 엿볼 수 있었다.0668) 더구나 신라는 진흥왕대에 이르러 黨項城의 확보에 이어 백제에 의해서 개척·독점된 西海直航路(赤山航路)를 탈취함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게 하였다.0669) 그러나 신라의 대당외교는 일반적인 朝貢使나 謝恩·請兵使보다 宿衛外交에서 통일전쟁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음이 특이하다.0670)

 신라의 적극적인 대당관계는 백제·고구려정벌에서 군사동맹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문무왕 8년(688) 이후 당의 영토야욕과 신라의 고토회복, 백제·고구려유민의 흡수책이 충돌하면서 양국관계는 정면으로 대립관계로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문무왕 8년 이후 성덕왕 2년(703)까지는 사실상 국교단절 상태가 되었으며, 신라로서는 단순한 당의 영토야욕 분쇄의 성격을 벗어난 통일전쟁이며 민족생존을 위한 거족적 전쟁관계로 확대되었다.

 당의 對百濟戰에서 신라와 연합한 것은 대고구려작전의 일부였고,0671) 신라로서는 무열계의 명예회복의 군사적 모험이었다.0672) 나아가서 당의 고구려정벌은 대국의 체통을 되찾으려는 전략이었으며, 수·당시대의 天下觀에 입각한 동아시아 세계질서 확립을 위한 전략이었다.0673) 따라서 竹旨의 신라군이 石城에서 승리한 계기로 문무왕 11년(671)부터 양국은 정면 충돌을 시작하였으며,0674) 薛仁貴의 항의각서와 문무왕의 답서가 교환되는 등 극도의 긴장상태로 진전되었다.0675) 이러한 각서교환 직후 唐運送船 70여 척을 격침시켰으며,0676) 그 후 계속된 충돌은 문무왕 12년 7월의 高侃·李謹行의 연합군 격파, 15년의 劉仁軌·이근행·薛仁貴의 연합군 격파, 그리고 買肖城·七重城 戰役의 승리 등 대소 18전에 6천여 명의 희생자를 안기고 신라측의 완승을 가져왔다. 더구나 설인귀의 당 해군도 伎伐浦敗戰(문무왕 16년)으로 재기불능케 됨으로써, 신라군은 매초성(육)·기벌포(해)의 승리를 계기로 당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할 수 있게 되었다.0677)

 한편 이러한 당측의 일방적 패배는 신라인의 거족적인 저항에 기인된 것이지만, 한편 당시의 突厥·吐蕃·吐谷渾 등의 빈번한 침입에 따른 邊患의 절박성에 기인한 것도 사실이다.0678) 그러나 당시 중국측 기록(≪資治通鑑≫·≪新·舊唐書≫등)은 패전사실을 삭제하고 日食·大赦기록으로 바꿔 놓았으며,0679) 당측 대표적 군지휘자인 고간은 열전조차 없다.0680) 더구나 나당전쟁에 참여한 군통솔자들의 從軍記錄이 없으며, 流配事實만 나타나 있어 중국측이 패전기록을 삭제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0681) 더구나 張文瓘(侍中)의 東部(신라)遠征反對上疏에서 볼 때,0682) 나당전쟁의 실상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당은 邊患除去의 일환인 동방정책(고구려 정벌과 신라고토 장악)에서 완전히 실패하였고, 오히려 신라와의 원만한 관계정립으로 서쪽 변경의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나당전쟁의 종결은 당측에서도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나당전쟁 속에서도 문무왕은 4차에 걸친 명목상의 謝罪使를 파견함으로써 양국 친선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장기간의 대립이 있은 후 神文王이 즉위하고(681), 당에서는 中宗이 등장하여(684) 양국관계에 새로운 분위기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때 중종은 신라측이 太宗廟號를 사용하는 데 대한 부당성을 추궁할 사신을 보냈으나, 신문왕은 정중한 답서를 보내 태종묘호 사용의 불가피성을 피력한 바 있다.0683)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24년 만의 접촉이었고, 신라측에서도 孝昭王 8년(699)에 당에 사신을 보내 양국관계의 정상화를 꾀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聖德王(702∼737)과 玄宗(712∼755)의 등장에 따라 새로운 관계는 급속하게 추진되었다. 성덕왕은 10여 회 사신을 파견했으며, 드디어 12년(開元 원년, 713)에 신라사신은 현종으로부터 공식사절로 대접을 받게 됨으로써 양국관계는 새로운 단계를 맞게 되었다. 이때 唐帝로부터 新羅王으로서의 공식직함(上柱國樂浪郡公新羅王)을 받아 국교단절 45년 만에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이러한 양국의 친선관계 회복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여, 발해와 일본과의 또다른 외교문제가 야기되었다.0684)

0667)申瀅植<三國의 對唐關係>(≪韓國古代史의 新硏究≫, 一潮閣, 1984), 315쪽.
0668)申瀅植, 위의 책, 316∼317쪽.
0669)孫兌鉉·李永澤,<遣使航運時代에 관한 硏究>(≪韓國海洋大學論文集≫16, 1981).

申瀅植,<統一新羅의 繁榮과 西海>(≪統一新羅史硏究≫, 삼지원, 1990), 265쪽.
0670)申瀅植,<新羅의 宿衛外交>(앞의 책, 1984), 352∼390쪽.
0671)申瀅植,<三國統一前後 新羅의 對外關係>(≪新羅文化≫2, 1985), 7쪽.
0672)李鍾學,<新羅三國統一의 軍事史的 考察>(≪軍史≫8, 1984), 183쪽.
0673)高明士,≪從天下秩序看 古代的 中韓關係≫(1983, 臺灣), 106∼111쪽.
0674)문무왕 11년초에 당군이 熊津에 침입하여 幢主 夫果가 전사였으며, 당군 예하의 말갈병이 舌口城을 침범하였으나 격퇴되었다. 이때 당군이 침입한다는 소식에 접하여 眞功(大阿湌)이 甕浦를 수비하고 있었다. 6월에 竹旨에 이끌린 신라병은 加林城(충남 林川 부근)에서 당군을 격파하여 5,300명을 살해하고 백제장군(2명)과 당의 관리(果毅) 6명을 나포하는 전과를 올렸다(≪三國史記≫권 7, 新羅本紀 7, 문무왕 11년).
0675)李昊榮,<新羅三國統一에 관한 再考察>(≪史學志≫15, 1981), 32∼35쪽.
0676)≪三國史記≫권 7, 新羅本紀 7, 문무왕 11년 10월.
0677)李鍾學, 앞의 글, 196∼197쪽.
0678)申瀅植,<三國統一의 歷史的 性格>(앞의 책, 1990), 15∼16쪽.
0679)申瀅植,<新羅史의 時代區分>(≪韓國史硏究≫18, 1977), 22∼23쪽.
0680)존·씨·제미슨,<新羅同盟의 互解>(≪歷史學報≫44, 1969), 5쪽.
0681)존·씨·제미슨, 위의 글, 6∼10쪽.
0682)≪資治通鑑≫권 202, 唐紀 18, 儀鳳 3년.
0683)≪三國史記≫권 8, 新羅本紀 8, 신문왕 12년.
0684)浜田耕策,<唐朝における渤海と新羅の爭長事件>(≪古代東アジア史論集≫下, 吉川弘文館, 1978).

鈴木靖民,<奈良時代における對外意識>(≪古代對外關係史の硏究≫, 吉川弘文館, 1985).

卞麟錫,<唐代外國使爭長의 硏究>(≪亞細亞硏究≫28, 1985).

韓圭哲,≪渤海의 對外關係史≫(신서원, 1994).

宋基豪,<발해에 대한 신라의 양면적 인식과 그 배경>(≪韓國史論≫19, 서울大, 1988).

―――,<동아시아 국제관계속의 발해와 신라>(≪韓國史 市民講座≫5, 一潮閣, 1989).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