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본과의 관계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자, 왜국은 백제의 부흥운동에 군사원조를 하여 신라·당의 연합군과 전쟁을 하여 백강구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문무왕 8년(668)에는 신라와 왜국간의 국교가 성립되어 이후 양국은 8세기 후반까지 사신을 교환하고 있으며, 9세기에는 신라상인과 해적들이 활약하여 양국간에 사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신라와 왜국의 관계에 대해 우리 나라 학계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이다.0714) 우리 나라에서 연구가 지체된 원인은 통일신라시대의 양국관계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일본측 史書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측 사료만을 가지고 통일신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복원한다는 것도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三國史記≫는 이 시기에 일본에서만 사신을 파견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어 이들만을 근거로 하여 양국관계를 복원한다면 일본국이 신라에 일방적으로 사신을 파견한 관계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통일신라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일본측 사료로는≪日本書紀≫·≪續日本紀≫·≪日本後紀≫·≪續日本後紀≫·≪文德天皇實錄≫·≪日本三代實錄≫등 관찬사서가 있다. 이 사료들 중에서≪일본서기≫와≪속일본기≫의 신라와 일본과의 관계기사에서는 일본중심적인 서술이 많이 보이므로, 이를 이용할 때에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日本後紀≫이후의 사서들은 비교적 실록적인 성격이 강하고, 대외관계 서술에 있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여 양국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
0714) | 통일신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다룬 우리 학계의 연구는 대강 다음과 같다. 申瀅植,<統一新羅의 對日關係>(≪統一新羅史의 硏究≫, 三知院, 1990). 金恩淑,<8세기의 新羅와 日本의 關係>(≪國史館論叢≫29, 國史編纂委員會, 1991). ―――,<9世紀の新羅と日本の關係>(≪東アジア地域における新しい歷史表象をめざして-歷史硏究と歷史敎育との對話-≫, 上越敎育大, 1997). 洪淳昶,<統一新羅의 對日本關係硏究>(≪國史館論叢≫31, 1992). 崔在錫,<統一新羅와 日本과의 關係>(≪정신문화연구≫43, 1991). ―――,<統一新羅의 日本政治 指導>(≪韓國學報≫71, 1993). 李炳魯,<九世紀初期の“環ジナ海貿易圈”の考察-張保皐と對日交易を中心として> (≪神戶大學史學年報≫8, 1993). ―――,<九世紀초기의 “環지나海무역권”의 고찰-장보고와 對日교역을 중심으로>(≪日本學誌≫15, 啓明大, 1995). ―――,<寬平期(890년대)일본의 대외관계에 관한 일고찰>(≪日本學誌≫16, 1996). ―――,<고대일본열도의 ‘신라상인’에 대한 고찰>(≪日本學≫15, 동국대, 1996). ―――,<일본 지배층의 對新羅觀정책 변화의 고찰-주로 9세기를 중심으로->(≪大丘史學≫51, 1996). ―――,<8세기 일본의 외교와 교역-나일관계를 중심으로>(≪日本歷史硏究≫4, 1996). ―――,<일본열도의 “동아시아 세계”에 관한 일고찰-주로 9세기의 큐슈지방을 중심으로>(≪日本學誌≫17, 1997). 윤선태,<752년 신라의 대일교역과 買新羅物解-正倉院 소장 貼布記의 해석을 중심으로>(≪역사와 현실≫24, 1997). 南漢鎬,<9世紀 後半 新羅商人의 動向>(≪靑藍史學≫1, 한국교원대,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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