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상활동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삼국 정립시대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하여 중국대륙과의 통교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중국과의 교빈은 육로나 해로를 막론하고 두 나라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들 나라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신라가 奈勿王 22년(377) 前秦(351∼394)에 入貢한 것이나 26년 衛頭를 보내어 조공한 일들은 모두 고구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0771) 중국 南朝(420∼589)와의 교빈도 다를 바 없다. 法興王 8년(521) 백제 사신을 따라 梁(502∼556)에 입공한 일은 그러한 예에 속한다0772). 신라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당시로서는 중국과의 교류에 있어서 이들 양국의 주선을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