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0권 발해Ⅱ. 발해의 변천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1. 발해의 건국
          • 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 (1) 고구려유민의 동향
            • (2) 말갈 부족들의 상태
          • 2) 676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세
          • 3) 대조영집단의 동주와 건국
        • 2. 발해의 발전
          • 1) 대외적 팽창
          • 2) 국가체제의 정비
        • 3. 발해국의 주민구성
          • 1) 요·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
          • 2) ‘토인’과 말갈
          • 3) 발해 왕실의 출자
          • 4) 발해인의 귀속의식
          • 5) 발해국의 성격에 대한 인접국인의 인식
      • Ⅱ. 발해의 변천
        • 1. 발해의 융성
          • 1) 내분의 발생
          • 2) 해동성국의 구현
          • 3) 발해국의 위상
        • 2. 발해의 쇠퇴와 멸망
          • 1) 멸망의 배경
          • 2) 요동의 상실과 멸망
        • 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1) 발해유민의 의미
            • (1) 발해유민과 발해유예
            • (2) 발해국 지배층의 성씨 분포와 그 유민
          • 2) 전기 부흥운동-후발해와 정안국-
          • 3) 후기 부흥운동-흥요국과 대발해국-
            • (1) 대연림의 흥요국
            • (2) 고영창의 대발해국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1. 신라와의 관계
          • 1) 발해 건국기의 남북교섭
          • 2) 발해 왕권확립기의 남북대립
          • 3) 신라 귀족항쟁기의 남북교섭
          • 4) 발해의 영토확장과 신라·당 밀착기의 남북대립
          • 5) 발해 멸망기의 남북교섭
        • 2. 당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양국의 전쟁과 교섭
          • 3) 전쟁의 경과와 신라·발해의 대립
        • 3. 일본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발해와 일본의 신라협공계획과 양국교섭
          • 3) 신라협공계획 무산 후의 양국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조직의 정비과정과 성격
          • 2) 조직의 내용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제도
          • 2) 군사제도
        • 3. 사회·경제구조
          • 1)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토인과 수령
            • (3) 사회생활
          • 2) 경제구조
            • (1) 경제생활
            • (2) 대외무역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불교와 기타 신앙
        • 2. 유학과 한문학
          • 1) 유학
          • 2) 한문학
        • 3. 예술
          • 1) 건축
            • (1) 성곽과 건물지
            • (2) 사원과 탑
            • (3) 고분
          • 2) 미술
            • (1) 회화
            • (2) 공예
          • 3) 음악과 무용
        • 4.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국내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2) 국외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3) 주요 연구 주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전기 부흥운동-후발해와 정안국-

 발해가 멸망한 후 그 유민들 가운데서 발해왕조를 다시 세우려는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발해유민들의 자발적 운동 결과는 아니었지만, 발해가 멸망한 후 발해인들이 다수 참여한 최초의 왕조는 발해의 옛 수도 忽汗城(上京 龍泉府)에 세운 東丹國이었다.168) 그러나 동란국은 거란 정복자들이 세운 괴뢰정권이었으므로 이를 발해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동란국의 왕은 거란 耶律阿保機의 큰 아들 耶律倍였고 기타의 고위직에 발해인들이 상당수 등용되었던 것은 발해인을 회유하기 위한 배려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거란에 의한 동란국 건설의 근본 목적은 발해지역의 거란화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목적은 발해유민의 저항 등으로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몇 가지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첫째는 927년 동란국 수도를 홀한성에서 거란 수도와 가까운 遼陽으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동란국의 右次相 耶律羽之가 수도를 옮기는 이유로 “홀한성의 위치가 거란의 상경 용천부와 너무 멀어, 만약 발해유민이 이러한 구석진 곳에서 서식하면 반드시 뒷날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였던 점이다.169) 셋째는 926년 8월 거란이 항복시켰던 발해의 長嶺府 등을 다시 정벌하였던 점170) 등이다. 그리고 거란은 압록강 중류와 두만강 하류 일대 특히 한반도 서북부의 옛 발해 영토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못 쓰고 있었으며, ‘여진’으로 남아 있던 발해유민들에게 많은 저항을 받고 있었다. 어쨌든 대다수 발해유민들이 거란에게 제압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後渤海 兀惹정권이 거란의 공격을 받고 싸우다가 평화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1004년(거란 聖宗 統和 22) 전후가 아니었을까 한다.

 발해가 멸망한 후 거란에 의해 세워졌던 동란국이 927년 서쪽의 요양으로 옮겨가고, 그 곳 홀한성에 발해 대씨 왕실의 진정한 부흥 왕조가 세워졌는데, 이것을 926년 이전의 발해와 구별하여「후발해」라고 한다.171) 후발해의 건국 연대는 高正詞가 발해 사신으로 후당에 갔던 929년경으로 보고 있으며,172) 멸망 시기는 후발해의 올야정권이 거란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붕괴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1003년 무렵으로 보고 있다.173) 사실 발해유민과 거란과의 관계에서 ‘발해’라는 이름이 최후로 나오는 것이174) 바로 이 때였다.

 후발해의 수도는 옛 발해 수도가 있던 홀한성으로 짐작되며,175) 그 시조는 발해국의 대씨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후발해의 대씨정권은 곧 그들의 실질적 권력을 올야 출신의 烏氏에게 빼앗겼다.「대씨발해」가「오씨발해」로 바뀐 것이다.176) 후발해의 발전은 군사·외교적 면에서 두드러졌다. 975년에는 거란에게 반기를 들고 도망해온 발해유민 출신의 장수 燕頗와 함께 발해의 옛 부여부를 탈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펴기도 하였다. 그리고 발해의 옛 長嶺府지역이었던 輝發河(回跋河) 유역에서의 싸움에서도 원군 7천 명을 보내기도 하였으며,177) 979년경에는 定安國의 일부 세력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한편 외교적 면에서는 후당에 高正詞, 成文角 등을 7차례나 보내기도 하였다.178) 그러나 후발해와 중국과의 관계는 954년 7월 발해 호족(酋豪) 崔烏斯 등 30인이 後周에 귀화했던 기록이179)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아, 이 때부터 후발해는 주로 내정과 거란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상경 용천부를 중심으로 하여 후발해가 발해의 부흥왕조로서 계승되고 있을 때에, 한편으로 발해의 서경 압록부였던 압록강 일대를 중심으로 한 발해유민들의 부흥운동이 烈氏 定安國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180) 정안국의 건국 연도에 대해서는 935∼936년설과 937년설, 970년설 등이 있다.181) 아무튼 정안국에 관해서는≪宋史≫열전에도 나와 있는데, 이에 의하면 정안국은 970년에 국왕 烈萬華가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고도 한다.182)

 그렇다면 고려 경종 4년(979)에 고려에 내투해 오는 수만 명의 발해사람들은183) 대체로 정안국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184) 당시 고려의 北進策은 정안국과 마찰하였을 가능성도185) 없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168)東丹國은 일반적으로「동단국」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그 명칭은 원래 동쪽의 거란(글안)이라는 뜻이므로「동란국」또는「동안국」이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169)동란국 수도의 천도 이유에 대해서는 동란왕 야율배의 아우였고 거란 태종이었던 耶律德光이 그의 형 동란국왕 야율배를 제치고 아버지 야율아보기의 급작스러운 병사를 이유로 거란국왕이 되었던 형제간의 알력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李龍範,<高麗와 渤海>,≪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70∼72쪽).
170)≪遼史≫권 2, 本紀 2, 太祖 下, 天顯 원년 3월 및 8월.
171)和田淸,<定安國に就いて>(≪東洋學報≫6, 1916 ;≪東亞史硏究(滿洲篇)≫, 東洋文庫, 1955)에서 後渤海를 언급한 이래 日野開三郞,<後渤海の建國>(≪帝國學士院紀事≫2­3, 1943)에 의해 그 이름이 굳어졌다(韓圭哲,<渤海復興國 ‘後渤海’硏究-연구동향과 형성과정을 중심으로->,≪國史館論叢≫62, 國史編纂委員會, 1995 참조).
172)발해에서 사신 高正詞를 파견하여 입조하고 특산물을 바쳤다(≪冊府元龜≫권 972, 外臣部, 朝貢 5, 後唐 天成 4년 5월 및≪五代會要≫권 30, 渤海, 後唐 天成 원년).
173)≪遼史≫권 14, 本紀 14, 聖宗 統和 21년 4월 무진.
174)後渤海의 멸망 시기는 日野開三郞의 견해를 따랐다. 그러나 和田淸의 생각을 받아들인 李龍範은 후발해의 존속기간을 10여 년으로 보았다. 즉 후발해의 대씨 왕실이 10여 년만에 烈氏 定安國에게 왕실을 찬탈당하였던 것으로 파악하였다(和田淸, 앞의 글 및 李龍範, 앞의 글, 76∼78쪽).
175)日野開三郞은 忽汗城이 975년경에는 兀惹城으로 고쳐 불려졌다고 하였다. 한편 李龍範은 和田淸의 생각을 받아들여 後渤海의 중심지도 忽汗城이 아닌 鴨綠江 일대로 보았다(日野開三郞,<兀惹部の發展(3)>,≪史淵≫32, 1944, 42∼53쪽 및 李龍範, 위의 글, 73∼76쪽).
176)兀惹를 “올야 자체는 여진족의 집단이나, 그 지배층은 여진화된 발해민 오씨일 것”이라고 한 견해가 있다(李龍範, 위의 글, 85쪽). 그러나 필자는 오씨가 발해시대「고씨」등과 함께 귀족성의 하나였다는 사실과, 대조영이 송화강 출신으로 후대에 그를「속말말갈」로 표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발해시대의 올야 부락 역시 발해국의 한 부락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177)≪遼史≫권 8, 本紀 8, 景宗 上, 保寧 7년 9월.
178)日野開三郞, 앞의 글(1943), 474∼477쪽.
179)崔烏斯는 崔烏斯多·烏斯多·烏思羅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그의 귀화 기록은≪宋史≫권 491, 列傳 250, 外國 7, 渤海國 및≪五代會要≫권 30, 渤海, 後周 顯德 원년 참조.
180)池內宏,<遼の聖宗の女直征伐>(≪史學雜誌≫26­6, 1915).

―――,<余の遼聖宗征女眞考と和田博士の定安國考について>(≪東洋學報≫6­1, 1916).

三上次男,<高麗の定安國>(≪東方學報≫11­1, 1940).

日野開三郞,<定安國考(一·二·三)>(≪東洋史學≫1·2·3, 1950·1951).

和田淸, 앞의 글.
181)935∼936년설은 三上次男, 위의 글, 338∼339쪽, 937년설은 日野開三郞, 위의 글(二), 45∼54쪽, 그리고 970년설은 和田淸, 위의 글 참조.
182)≪宋史≫권 491, 列傳 250, 定安國.

이 때를 定安國의 건국 연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和田淸, 위의 글).
183)≪高麗史≫권 2, 世家 2, 경종 4년.
184)三上次男, 앞의 글, 340쪽.
185)三上次男, 위의 글.

姜大良,<高麗初期의 對契丹 關係(上)>(≪史海≫1, 1948), 33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