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2.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1. 중대에서 하대로
          • 1) 기로에 선 중대 전제왕권
          • 2) 혜공왕 말년(780)의 정변 ― 중대의 종말
          • 3) 하대의 개막과 원성왕계의 성립
        • 2.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 1) 왕실가족에 의한 권력독점
          • 2) 무열왕계의 반발과 김헌창의 난
          • 3) 범진골 귀족세력 화합책의 시도
          • 4) 원성왕계 내부의 왕위계승쟁탈전
        • 3. 정치개혁의 실패
          • 1) 율령의 개정을 통한 집권체제의 정비 시도
          • 2) 근시기구와 문한기구의 합체화에 의한 권력집중 시도
        • 4. 골품제도의 퇴화
          • 1) 골품제의 사회적 기반의 축소
          • 2) 진골귀족의 분열
          • 3) 6두품세력의 성장
        • 5. 수취체제의 모순과 농민층의 피폐
          • 1) 귀족 및 사원의 농장경영과 왕경의 번영
          • 2) 농민층의 피폐와 자영농민의 몰락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1.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1) 호족의 개념
          • 2)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2. 호족세력의 대두
          • 1) 낙향귀족 출신의 호족
          • 2) 군진세력 출신의 호족
          • 3) 해상세력 출신의 호족
          • 4) 촌주 출신의 호족
        • 3. 장보고와 청해진
      • Ⅲ. 후삼국의 정립
        • 1. 후삼국기의 신라
        • 2. 후백제
          • 1) 후백제의 성립
            • (1) 견훤의 출신과 군사적 기반
            • (2) 후백제의 성립과정
          • 2) 후백제의 발전과 호족연합
            • (1) 영토의 확대
            • (2) 호족과의 연합
          • 3) 후백제의 대외정책
            • (1) 대신라정책
            • (2) 대고려정책
            • (3) 대중국·일본정책
          • 4) 후백제의 몰락
            • (1) 신검 형제의 정변
            • (2) 신검정권과 그 멸망
        • 3. 태봉
          • 1) 궁예의 출신과 사회적 진출
          • 2) 후고구려의 건국
            • (1) 자립과 세력기반의 확립―하층농민의 포섭
            • (2) 건국―호족들과의 제휴
          • 3) 마진과 태봉의 중앙정치조직
            • (1) 광평성체제의 성립과 호족연합정권-마진
            • (2) 광평성체제의 변화와 전제왕권―태봉
          • 4) 태봉의 몰락
            • (1) 궁예의 정교일치적 전제주의의 추구와 그 지지세력
            • (2) 반궁예세력의 동향과 918년 정변
      • Ⅳ. 사상계의 변동
        • 1. 유교사상의 변화
          • 1) 유교사상의 발달
          • 2) 숙위학생의 활동
          • 3) 유교사상의 변화
        • 2. 불교의 변화
          • 1) 교학 불교의 전개
            • (1) 화엄종
            • (2) 법상종
          • 2) 선종의 흥륭
            • (1) 북종선의 전래와 남종선의 도입
            • (2) 선종 유행의 사회적 기반
            • (3) 선종산문의 성립
            • (4) 선종사상의 경향
          • 3) 미륵신앙
            • (1) 미륵의 출현과 말법신앙
            • (2) 궁예의 이상세계 건설
          • 4) 유·불·선 3교의 융합
            • (1) 유·불 2교의 교섭
            • (2) 유·불·선 3교의 조화
        • 3. 풍수지리·도참사상
          • 1) 풍수지리설의 도입
          • 2) 유식론적 선사상의 성립
          • 3) 지방호족 중심의 국토 재구성안
          • 4)<삼국도>의 작성과 비보사상
          • 5) 도참사상의 전개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1) 왕실가족에 의한 권력독점

 앞에서 보았듯이 하대는 중대 전제왕권에 반감을 품은 내물왕 계통의 汎眞骨귀족 연합세력에 의해 개막되었다. 또한 여기에는 金周元과 같은 태종무열왕 계통의 일부 왕족도 가담했다. 혜공왕대의 대란 때에 전국의 96角干이 서로 무기를 들고 싸웠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중대 말기에 정계에 진출하고 있던 진골귀족의 수효는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12代祖가 내물왕이라고 자처하는 원성왕 계통이 등장하면서 진골귀족의 족적인 기반은 한층 더 확대되었다. 이처럼 양적으로 확대된 진골귀족들에게 권력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하대 왕권이 직면한 제1차적 과제였다.

 원성왕은 즉위와 동시에 장남 仁謙을 태자로 책봉하여 왕위계승권자로 확정시켰다. 그러나 동왕 7년(791) 정월에 태자가 죽자 그 이듬해 8월 차남인 義英을 다시금 태자로 삼았다. 그런데 의영마저 동왕 10년 2월에 죽고 말았다. 그러자 왕은 인겸의 장남인 俊邕을 그 이듬해 정월 태자로 책봉했다. 왕에게는 셋째 아들 禮英이 있었으나 준옹을 책봉할 당시 살아있었는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 원성왕이 재위 14년(798) 12월 29일 죽자 결국 장손인 준옹이 즉위하여 昭聖王이 되었다. 그러나 소성왕은 오래 재위하지 못했다. 왕은 재위 1년 반 만인 800년 6월에 죽었다. 이에 태자인 淸明이 즉위하여 哀莊王이 되었다. 당시 왕은 13세였고 따라서 숙부인 兵部令 彦昇이 섭정으로 취임했다.

 하대의 권력구조와 정치과정을 볼 때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현상은 왕실가족에 의해서 정치권력이 송두리째 장악되어 있는 점이다. 그것은 준옹과 언승 형제가 조부인 원성왕 때 띠고 있던 관직을 보면 곧 알 수 있다. 즉 준옹은 아버지 인겸태자가 아직 살아있을 때인 원성왕 5년(789) 唐에 사신으로 다녀와 大阿湌이 되었고, 그 이듬해 波珍湌으로 宰相이 되었으며, 아버지가 죽은 직후인 원성왕 7년 10월에는 侍中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 8월 숙부인 의영이 태자로 책봉될 때 신병으로 물러난 뒤 곧 병부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의영이 죽자 태자에 책봉되었다. 한편 언승은 역시 아버지 인겸태자의 在世時인 원성왕 6년에 대아찬이 되었고 동왕 7년 정월 아버지가 죽은 직후 반란을 일으킨 전 시중 悌恭을 제거한 공로로 迊湌에 승진했으며, 그 뒤 동왕 10년 2월 시중에 취임했다. 그리고 그는 형이 태자로 책봉된 해에는 伊湌으로 재상이 되었고 곧 이어 원성왕 12년 4월에는 병부령에 올랐다.

 앞에서 본 것처럼 언승은 병부령의 자격으로 조카인 애장왕의 즉위와 동시에 섭정이 되었는데, 동왕 2년(801) 2월에는 종전까지 內省의 一局에 지나지 않던 御龍省을 독립시켜 일종 攝政府를 만들고 스스로 그 장관(私臣)에 취임했다. 그는 곧 이어 상대등에 올라 정치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처럼 원성왕과 그의 후계자들은 태자를 정점으로 하여 매우 좁은 범위의 근친왕족들이 상대등을 비롯하여 병부령·재상·어용성사신·시중 등 요직을 독점하는 권력구조를 만들어냈다. 실로 이러한 요직은 모두 재상제도의 테두리 속에 포괄되는 것으로, 재상제도가 갖는 권력집중의 기능은 이미 원성왕 때에 확립된 것을 알 수 있다.019) 이는 흔히 전제왕권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중대의 권력구조 아래서도 찾아보기 힘든 권력집중 현상이었다. 그러므로 골품제국가의 정치적 모순은 전시대에 비하여 한층 더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

 애장왕대의 정치는 당연히 섭정을 맡고 있던 숙부 언승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왕대의 주요 치적으로서는 율령의 개정과 五廟制度의 확립을 들 수 있다. 애장왕 6년(805) 8월 조정은 公式 20여 조를 頒示했는데, 그 구체적인 법규의 내용은 잘 알 수가 없다. 다만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位和府의 長·次官 직명이 이 해에 종래의 衿荷臣·上堂에서 각기 令·卿이라는 漢式名으로 개정된 것이라든지 또는 四天王寺成典을 비롯한 奉聖寺·感恩寺·奉德寺·奉恩寺成典 등 寺刹 관계 관청의 장·차관직 역시 애장왕 때 위화부의 경우와 같은 명칭으로 바뀐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애장왕 6년을 기하여 漢化政策이 시도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그 개혁의 규모에 있어서는 경덕왕 18년(759)의 官號개혁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만 어쨌든 개혁의 기본방향만은 경덕왕 때와 마찬가지로 한화정책을 통해 국왕의 권력집중을 꾀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음 5묘제도에 있어서는 애장왕 2년 2월 근본적인 개혁이 단행되었다. 즉 종래 永世不變의 廟主로 되어 있던 태종대왕·문무대왕을 5묘에서 탈락시키는 한편 애장왕의 高祖까지의 직계존속을 이에 대치했다. 비록 태종·문무 양 대왕을 위해서는 따로이 二廟를 세웠으나, 어쨌든 이로써 명실상부한 5묘제가 확립된 것이다. 사실 중대 왕통을 단절시킨 선덕왕은 5묘제를 정할 때 태종·문무 양 대왕의 존재 때문에 자신의 직계존속으로는 오로지 아버지만을 太廟에 入祔시켰을 뿐이며, 원성왕도 그 즉위년(785) 2월에 5묘를 다시 정할 때 태종·문무 양 대왕을 여전히 存置시키게 됨으로써 겨우 자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만을 5묘에 입부시킬 수 있었다.020)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애장왕 2년 완성된 5묘제가 그 뒤 원성왕계 혈족집단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왜냐하면 이로써 왕위계승에 있어 直系상속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나아가 이러한 직계 존중은 자연히 傍系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게 되어 내물왕계 혹은 태종무열왕계라고 하는 광범위한 씨족 연대의식을 약화시키게 됨은 물론, 원성왕계 내부의 혈족집단 자체를 점차 가족 규모의 작은 단위로 分枝化시킨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로 830년대 후반의 苛烈한 왕위계승쟁탈전의 遠因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021)

019)木村誠,<新羅の宰相制度>(≪人文學報≫118, 東京都立大, 1977), 25∼33·35∼38쪽.
020)邊太燮,<廟制의 変遷을 通하여 본 新羅社會의 發展過程>(≪歷史敎育≫8, 1964), 56∼76쪽.
021)李基東,<新羅 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歷史學報≫85, 1980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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