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세(민전조)의 감면
고려시대에는 수조 규정과 함께 恩免·災免으로 불리는 조세의 감면 규정도 있었다.≪高麗史≫식화지 진휼조에 있는 ‘恩免之制’와 ‘災免之制’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의하면 은면은 주로 왕의 즉위, 왕과 사행의 행차, 그리고 전란으로 州郡이 피폐해졌을 경우에 은전을 베푼다는 의미로 시행되었다. 이 때 조세와 함께 調(布)·役과 常徭·雜貢 등이 면제되기도 하였으나 역시 주된 면제의 대상은 조세였으며, 그 범위는 반년 분에서 수년 분에 이르는 등 매우 다양하였다. 이러한 은면 조치는 태조 이래 말기까지 줄곧 계속되었으나, 뚜렷한 감면의 원칙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감면의 내용이 결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재면의 경우는 감면의 기본 원칙이 세워져 있었다. “홍수나 가뭄·병충해·서리해 등의 재해로 수확의 4할 이상이 감소되면 租를, 6할 이상이면 租와 布를, 7할 이상이면 租·布·役을 모두 면제시켜 준다”는 성종 7년(988)의 판문이1058) 그것이다. 그러므로 각종의 재해로 4할 이상의 수확이 감소되면 일단 조세는 완전히 면제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문종 4년(1050)과 숙종 7년(1102)에 같은 원칙이 다시 확인되고 있으며,1059) 이 밖에 다른 내용의 새로운 재면 규정이 공양왕 3년(1391)에 가서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1060) 이러한 재면 규정은 고려 전시기에 걸쳐 적용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재면이 꼭 이 원칙대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재해 외에 전란으로 백성의 생활이 피폐해졌을 때에도 재면 조치가 있었으며, 큰 재해나 대기근이 들었을 경우에는 수년간의 조세를 면제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재면은 곧 국가 조세 수입의 감소를 의미하므로 매우 신중하게 처리되었다. 그리하여 문종 4년에는 수령과 안찰사의 踏驗을 통해서만 재면을 인정해 주는 규정을 마련하였는데,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즉 ①각종의 재해로 수확이 감소하였을 때 村典이 이를 수령에게 알리면, ②수령은 몸소 답험하여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한 후 호부에 보고한다. ③수령의 보고를 받은 호부가 관계 문서를 三司로 이첩하면, ④삼사는 문서 내용의 虛實을 심사한 뒤, ⑤관할 안찰사로 하여금 別員을 선발하여 재차 답험케 하고, 그 결과 실제로 재해가 들었다고 인정되어야만 소정의 조세를 감면시켜 주었던 것이다.1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