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대악
형법지 大惡 항목에 수록되어 있는 고려율은 가족윤리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가족윤리를 저해한 범죄행위에 대해 이를 규제하는 형벌적 제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법제는 고려가 유교적 윤리관을 상민층에까지 침윤시킴으로써 친족적 유대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질서의 토대 위에서 사회적 안정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375)
형법지에는 모두 10여 개 조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周親尊長·外祖父母로부터 시작하여 小功 緦麻의 친인척을 殺傷한 경우, 욕한 경우, 또 그들의 죄를 고발한 경우 등에 대한 처벌규정이다.376) 그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보기로 하자.
① 周親尊長·外祖父母·夫婦의 부모를 죽이려고 했을 때는 비록 상처를 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참형에 처하고, 道士·女冠·僧尼가 師主를 죽이려고 했을 때는 伯叔父母를 죽이려 한 것과 같다(≪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大惡).
② 조부모나 부모를 구타하였을 때는 참형에, 고발하거나 욕하였을 때는 교형에, 잘못하다 상처를 내거나 과실로 욕하였을 때는 도 3년에, 과실로 구타하였을 때는 유 3친 리에 처한다(위와 같음).
③ 백숙부모나 외 조부모에게 욕하였을 때는 도 1년에, 구타하였을 때는 도 3년에, 상처를 냈을 때는 유 2천리에 처한다. 뼈를 부러뜨린 상처를 냈을 때는 교형에, 죽었을 때는 참형에 처한다. 과실로 상처를 냈을 때는 본래의 傷罪에서 2등을 감한다(위와 같음).
④ ㉠ 주친존장·외조부모·부부의 조부모를 고발하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도 2년에, 流罪에 처해질 때에는 도 3년에, 死罪에 처해질 때는 유 3천 리에 처한다. 誣告한 자는 무고한 죄에다 加 2등하며, 周親卑幼의 죄를 고발한 자는 장 60에 처한다. ㉡ 大功尊長의 죄를 고발하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徒 1년 반에, 유죄에 처해질 때에는 도 2년반에, 死罪에 처해질 때에는 도 3년에 처한다. 무고한 자는 무고한 죄에다 2등을 더한다. ㉢ 小功과 緦麻의 존장을 고발하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도 1년에, 유죄에 처해질 때는 도 2년에, 사죄에 처해질 때는 2년 반의 도형에 처한다(위와 같음).
① 을 검토해 보면 고려율도 당률과 마찬가지고 동종의 범죄에 있어서는 그 犯意와 범죄의 상황에 따라 종류를 나누고 科刑에도 단계를 붙이고 있으며, 범죄의 준비행위에 해당하는 豫謀(단독계획 또는 합의통보)·未遂·旣遂의 구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율은 주친존장·외조부모·부부의 부모를 죽이려고 모의했을 때 미수에 그쳐 未傷의 단계에서도 참형을 과하고 있다. 따라서 살상단계에는 미수와 기수를 불문하고 참하며, 또 백숙부모에 대한 미상의 단계에서 이미 최고형을 과한다면 부모에 대한 경우에는 적용법규가 없더라도 최고형을 과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① 은 당 적도율 6, 謀殺期親尊長條와 名例律 57, 稱道士女冠條의 법의를 취하여 한 조문으로 설정한 것이라 생각된다.
② 는 조부모나 부모에 대한 毆詈罪를 규정한 것인데, 이는 당 鬪訟律 27, 毆詈祖父母父母條를 법원으로 하여 같은 조문의 순서를 약간 바꾸었을 뿐이다.
③ 은 백숙부모나 외조부모에 대해 책임차별에 따른 과형을 설정한 것이다. 이는 당 투송률 26, 毆詈緦麻兄姉條의 법의를 취하였고, 백숙부모에 대한 규정은 당률에서 그 일부를 취하여 과형의 내용만 약간 달리했을 뿐이다.
④ 는 ㉠ 주친존장·외조부모·부부의 조부모, ㉡ 대공(복)존장, ㉢ 소공(복)과 시마(복)존장 등 친속범죄자를 고발한 경우에 대응하는 형량이 설정되어 있다. 이 율을 설정한 당이나 고려에서는 부모의 범죄뿐만 아니라 그 밖에 친족 에 대한 범죄를 인지하더라도 국가안위에 관한 것 이외에는 절대로 고발해서는 안된다는 입법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형법지 대악조에서 구현하려는 입법 취지의 기본골격을 보면 항렬이 낮거나 어린 자(卑幼)에 대한 가해자는 촌수가 멀어질수록 형량이 무거워지는 데 비해 존속에 대한 범법행위는 이와 반대로 촌수가 가까울수록 형량이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이 존비속, 근원친에 따른 형률의 차이는 가족구성원을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복종과 순종이 요구되는 상하 질서체계로 이해하려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377) 이것은 가족질서의 확대로 이해되는 고려사회가 곧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에 질서유지의 명분을 주고, 한편으로는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통치권 행사에 확실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