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도적
형법지 盜賊 항목의 내용들은 당률의 적도율에 대응하는 것들이다. 고려는 당률을 계수하는 과정에서 이를 도적이라 개칭하였다.
① 절도를 범하여 5貫에 달하면 사형에 처하고, 5관에 차지 않으면 脊杖 20에다 流 3년에, 3관에 차지 않으면 척장 20에다 유 3년에, 2관에 차지 않으면 척장 18에다 유 1년에 처한다. 1관 이하는 죄를 헤아려 처결하고 여자는 유배를 보내지 않는다(≪高麗史≫권 85, 志 39, 刑法 2, 盜賊).
② 1匹을 절도하면 장 60에, 2필은 80에 … 5필은 도 1년에 … 30필은 유 2천 리에 처한다(위와 같음).
③ 동거하는 卑幼가 남을 시켜 자기집의 가재를 훔치게 한 것은 사사로이 재물을 함부로 쓴 죄로써 논하여 2등급을 더하여 과죄하고 무릇 타인은 도의 상례에서 1등급을 감한다(위와 같음).
④ 緦麻·小功親의 재물을 훔치면 1등급을 감하고, 大功親(의 재물을 훔치면) 2등급을 감하고, 周親의 재물을 훔치면 3등급을 감한다(위와 같음).
⑤ 盜를 범하여 유배한 곳에서 도망한 자는 鈒面하고 형기가 끝난 뒤에는 遠陸와 주현으로 유배한다(위와 같음).
⑥ 投化人이 盜를 범하면 南界의 수로에 유배하여 주현과 통하지 못하게 한다(위와 같음).
① 은 절도죄에 대한 규정으로 이 율문은≪宋刑統≫建隆 3년(962;고려 광 종 13) 2월 21일 勅과 일치하고 있다. 장물액에 대응하는 형벌도 宋制를 그 대로 모방하여 결척장이 부가된 配役刑이 과해지고 있다. 그런데 고려율에서 장물액으로 보이는「貫」에 대한 해석을「累犯」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송형통≫建隆勅에 나오는「貫文」은 화폐단위이므로 고려에서의「관」도 누범을 뜻하는 말이 아니고 화폐단위로 보아야 한다. ① 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행형에 있어서 남녀를 구분한 점이다. 이 역시 당률에서는 볼 수 없는 법제라 하겠다.
② 는 절도범에 대한 규정으로 절도장의 액수에 대응하여 형량이 정해져 있다. 이 율문은 당 적도율 35, 竊盜條를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③ 은 동거하는 손아랫사람이 타인을 시켜 자기집 가재를 훔치게 했을 경우에는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고「私輒用財物罪」로써 논하였고, 손아랫사람에게는 그 죄의 2등을 더하고, 凡人에게는 常盜罪에서 죄 1등을 감하였다. 고려 율의 법의는 손아랫사람을 벌하는 데 있어 徒罪보다 가벼운「사첩용재물죄」로써 논한 것은 아마 고려의 가족제도가 당의 그것과 같은 家族共産制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④ 는 시마 이상의 親이 별거한 상태에서 존장이 卑幼家에서 절도 또는 강도를 한 경우와 비유가 尊長家에서 절도행위를 한 경우에 대한 처벌규정이다. 이 때 시마·소공친이면 보통 도죄에다 죄 1등을 간하고, 대공친이면 2등을 감하며, 주친이면 3등을 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율문은 당 적도율 40, 盜緦麻小功財物條의 법의를 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율문이 당률의 법의를 취했다 하더라도 용어 선택에 있어 송률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당률에서는 1년복에 해당되는 근친을「期親」으로, 송률에서는 「周親」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 송률의 영향인 것을 알 수 있다.
⑤ 는 盜를 범하여 배소에 복역 중인 자가 도망친 경우에 적용되는 형률로서 고려 독자적인 율이며, ⑥ 은 투화인에 대한 고려의 특수한 행형체계를 뒷받침하는 고려 독자적인 율이라 짐작된다. 만약 투화인에 대해 屬人法主義를 그대로 고수했다면 당연히 ② 의 고려율을 적용했을 것이다. 당률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외국인이거나 국적이 같은 경우에는 그 本俗法(本國法)에 의거하였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국적을 달리할 때는 속인법주의를 채택하였다. 이 원칙은 고려에도 그대로 계수되었다. ⑥ 의 투화인은 여진인 또는 거란인을 지칭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의 도범행위에 대해 “南界의 水路에 유배하여 주현과 통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 것은 고려사회와 완전히 격리시키려 한 법의로서 그들을 야만시하는382) 고려인의 선입견이 깔려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382) | ≪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殺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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