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옥관령
고려율이 당률을「刪削取簡」하여 13편목 71조를 만들어 이를 참작하여 시 의에 맞게 운용하였다는 것은 전술한 바 있다. 그런데 71조 가운데는 獄官令 2조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이 항목이 형법지에는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형법 지의 일부 항목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산견되고 있다.≪고려사≫에 옥관령이 라고 명시된 조문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다음의 기사가 있다.
門下侍中 劉瑨 등이 奏하기를 … ‘또 獄官令을 상고하면 立春부터 秋分까지는 死刑을 奏決하지 못하며, 만약에 惡逆을 범하면 이 令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하였사오나 法吏가 모든 것을 상세하게 살피지 못할까 두렵사오니 엎드려 청하옵건대 이제부터는 내외의 해당 기관 모두 月令에 의하여 시행토록 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이에 따랐다(≪高麗史≫권 85, 志 39, 刑法 2, 恤刑 현종 9년 윤4월).
이 기사는≪당률소의≫나≪송형통≫에 인용되어 있는 옥관령과 일치하고 있다.383) 그런데≪고려사≫에는 옥관령이라고 명시된 규정은 보이지 않지만, 당·송의 옥관령과 관련될 듯한 규정이 형법지의 여러 조항에서 산견된다. 따라서 사료의 인멸을 감안한다면 고려에서 시행된 옥관령은 형법지 찬자가 말한 2개조 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당의 옥관령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이는 형법지와 과조적 기사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옥을 살피는 관원은 먼저 다섯 가지 사항을 청취하고 또한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에 사실에 의심나는 것이 있는 데도 본인이 사실을 자백하지 않는 연후에야 고문을 가한다. 訊問은 매번 20일을 간격으로 한다. 만약 신문을 마치지 못하고 범인을 다른 부서로 옮긴다면 국문한 자가 본안을 連寫하여 이송하여야 하며 신문 횟수는 앞서 행한 신문과 합하여 세 차례 한다. 만약 의심할 바가 없으면 꼭 3번을 채울 필요는 없으며, 만약 신문으로 인하여 죽게 된 자는 모두 전말을 갖추어 신첩하며 해당 기관의 장관이 糾彈官과 더불어 입회하여 이것을 확인한다(≪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職制).
② 流移하는 사람이 유배지에 도달하기 전에 고향에 있는 조부모나 부모가 상을 당하였을 때는 휴가 7일을 주어 發哀를 하고 장례를 주선케 한다. 承重喪도 마찬가지이다(≪高麗史≫권 85, 志 39, 刑法 2, 恤刑).
③ 구금 중에 있는 婦人이 産月에 가까워졌을 때는 保人을 세워 출옥을 들어주되 死罪는 産後 만 20일로 하고, 流罪 이하는 만 30일로 한다(위와 같음).
④ 사죄를 범해 감금 중에 있는 자로서 惡逆 이상이 아닐 때에는 부모상·夫喪·조부모상을 당한 承重者는 휴가 7일을 주어 發哀케 하고, 流罪와 徒罪는 30일로 하되 보인을 세운 뒤에 나가게 한다(위와 같음).
⑤ 流移하는 죄수가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서 부인이 해산하였을 때에는 그의 가족과 함께 휴가 20일을 주며, 家女와 노비에게는 휴가 7일을 준다. 만약 자신과 가족이 환란 혹은 적을 만났거나 건널목에 물이 불어 갈 수 없을 때에는 부근 관청에서 매일 알아보고 갈만 하면 즉시 보낸다. 만약에 조부모나 부모의 상을 당한 자는 휴가 15일을 주고, 가족 중에 사망자가 있으면 휴가 7일을 준다(위와 같음).
위에 예시한 옥관령을 조목별로 살펴보면, ① 은 당 斷獄律 8, 迅囚察辭理條의 법의를 취하여 주로 형사사건의 심리 절차를 규정하고 있고, ② 는 流罪人이 배소에 도달하기 전에 조부모나 부모상을 당했을 때 휴가 7일을 주어 상을 치르게 하고 있다. ③ 은 여죄수의 출산에 보증인을 세우고 출옥을 허용하는 규정이고, ④ 는 수인이 형기 중에 당한 상으로 인한 급가규정이다. 또 ⑤ 는 流移囚가 배소로 가는 도중에 遇患·逢賊·水漲 등으로 인해 부득이한 사정이 생겼을 때 그에 대응하여 내리는 급가규정이다. 그런데 ①∼⑤는 당 옥관령과의 관련을 유추할 수 있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 이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일본≪養老令≫중의 獄令에서 찾아진다.384)≪고려사≫의 관련기사와 이≪양로령≫의 율문을 비교·검토하면 법의는 물론 문장의 구성까지 일치하고 있다.385) 형법지의 규정에는≪양로령≫의 주로서 기술된 것을 본문으로 나타냈다든지 숫자나 기타 일부 자구가 고쳐져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일부에 불과하다. 고려시대의 형사사건의 심리를 비롯하여 재판 및 행형의 여러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옥관령의 실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사료는 위의 사례뿐만 아니라 편년적 기사에서도 더러 산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