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3. 고려왕조의 멸망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1) 중앙 통치체제의 변화
            • (1) 도평의사사
            • (2) 충렬왕대의 관제격하
            • (3) 충선왕대의 관제개혁
            • (4) 공민왕대의 관제개혁
            • (5) 고려 후기 정치체제의 성격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1) 감무제의 확산과 농촌사회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 (2) 과거제와 음서제 등의 변질
            • (3) 첨설직제와 납속보관제의 신설
          • 4) 군제의 개편
            • (1) 원간섭기의 군제
            • (2) 군역체계의 변화
            • (3) 중앙군제의 개편
            • (4) 지방군제의 재편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 (2) 개혁정치의 성격
            • (3) 신진사대부의 성장
        • 3. 고려왕조의 멸망
          •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 (1)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 (2)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1) 이성계 집정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1.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 1) 전시과체제의 붕괴
          •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 (1) 수조지집적형 농장
            •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 3) 녹과전의 설치
          • 4) 사전·농장의 혁파
        • 2. 수취제도의 변화
          • 1) 조세
          • 2) 공부와 요역
            • (1) 공부
            • (2) 토목공사에서의 부역실태
            • (3) 수취기준의 변화
        • 3. 농업기술의 발전
          • 1) 농법의 발전
          • 2) 목면의 재배
        • 4. 수공업과 염업
          • 1) 수공업
            • (1) 관청수공업
            • (2) 소 수공업
            • (3) 사원수공업
            • (4) 민간수공업
          • 2) 염업
            • (1) 고려 전기 소금의 생산과 유통
            • (2) 고려 후기 소금 전매제의 실시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1) 도시상업
            • (2) 지방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 2) 대외무역
            • (1) 원과의 무역
            • (2) 다른 지역과의 교역
          • 3) 화폐의 유통
            • (1) 포화
            • (2) 은병과 소은병
            • (3) 쇄은과 은전
            • (4) 원의 보초
            • (5) 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가. 명의 철령위 설치와 요동정벌

 이인임 집권 후 고려와 명과의 관계는 북원과의 통교와 채빈살해사건으로 원만하지 못하였다. 물론 우왕 11년(1385) 明 太祖는 고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민왕의 시호를 정하고 우왕을 책봉해 줌으로써 사대관계를 재개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명의 고려에 대한 태도는 고압적이었다. 고려에서 파견한 사신들의 입국을 거절한다거나, 또는 고려사신을 정탐꾼으로 몰아부치기까지 하였다.

 명의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고려 조정에서 배명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우왕 13년(1387) 都堂을 통하여 명에서 장차 처녀와 秀才 및 宦者 각 1천 명과 牛馬 각 천 필을 요구할 것이라는 말이 전해짐으로써 그 동안 공물문제로 시달려온 고려 조정은 다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듬해 2월 명나라에 파견되었던 偰長壽가 돌아와 明帝의 口傳을 전하였는데, 첫째 고려에서 보낸 말은 모두 작고 힘없는 것으로서 쓸모가 없는 것이며, 둘째 고려에서 몰래 사람을 大倉에 보내어 興師·造艦의 여부를 규찰하거나, 또 명나라 사람을 매수하여 명의 동정을 살피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러한 일을 하지 말 것이며 또 사신을 보내지도 말라는 것과, 셋째 철령 이북의 땅은 본래 元朝에 속하였던 땅이므로 모두 遼東에 귀속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건은 명나라에서 으레 상투적으로 써오던 트집이었기 때문에 별로 주목되는 바가 아니었으나 철령위 귀속문제는 고려 조정을 경악시키는 대사건이었다. 鐵嶺衛, 즉 鐵嶺으로부터 公嶮鎭에 이르는 지역은 이미 공민왕 때 회수한 것이었는데 이제와서 이를 새삼 명에 귀속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명은 원을 구축하고 안으로 경쟁세력을 토평하면서 그 영역을 만주지역으로 확대하였다. 때마침 북원의 納哈出〔나하추〕의 저항이 격렬하였지만 오래지 않아 이들은 명에 투항하였다. 주지되는 바와 같이 나하추는 우왕 3년 경부터 막강한 서여진의 지배자로서 고려에 화친책을 강구한 바 있다. 이것은 명의 東進을 저지하려는 고려의 대북정책에 청신호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하추의 명으로의 투항은 곧 명의 동진정책의 재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명은 즉각 遼東都司로 하여금 1천여 기를 거느리고 鐵嶺衛를 세우게 하였다. 그 준비로써 요동에서 철령에 이르기까지 70개의 역참을 설치한다는 보고가 고려에 접수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고려는 전국 8도에 군사를 징발하고 각 도의 성을 재정비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비록 철령위 설치가 당장의 군사적 침공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대륙 정권의 안정은 필연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공격을 야기시켰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그 대응책에는 국운을 걸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가 鐵嶺衛를 설치하였으므로 신우가 密直提學 朴宜中을 보내 서면으로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遼 乾統 7년(1107)에 東女眞이 반란을 일으켜 咸州 이북의 땅을 강점하였으므로 睿王이 요에 통고하여 토벌에 대한 동의를 얻어 군사를 파견하여 그 땅을 회복하고 咸州와 公險鎭 등에 성을 쌓았다. 원나라 초엽 무오년에 몽고의 散吉大王·寶只官人 등이 군사를 이끌고 여진을 예속시켰을 때 우리 나라 定州의 叛民 卓靑과 龍津縣人 趙暉가 화주 이북의 땅을 가지고 투항하였다. 이 때 금나라의 遼東 咸州路 부근에 있는 瀋州에 雙城縣이 있고, 또 함주 근처인 우리 나라 和州에도 옛날에 쌓은 성이 두 군데 있다는 말을 듣고 황제에게 애매하게 보고하였다. 그래서 화주에 쌍성이라는 당치 않은 이름을 붙이고 조휘를 雙城官으로, 탁청을 千戶로 임명하여 인민을 관할하게 하였다. (그 후) 至正 16년에 이르러서 (우리 나라는) 원 조정에 통고하고 이들 總管·千戶 등의 직제를 혁파하여 화주 이북을 다시 우리 나라에 귀속시켰다. 지금은 州縣에 관원을 임명·배치하여 인민을 관할하고 있다. 이로써 반역자에 의하여 침해된 국토가 大國에 예속되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高麗史≫권 137, 列傳 50, 신우 14년 2월).

 위의 사료는 철령위 설치 철회를 요청하는 표문의 일부이다. 명의 철령위 설치를 보고 받은 후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여 5도에 城堡를 수축하게 하고, 동시에 밀직제학 朴宜中을 명에 보내 이 지역이 비록 탁청과 조휘의 배반으로 원에 귀속된 적이 있지만 이미 12세기초 윤관의 9성 설치 이래 고려땅임을 역사적인 연원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려는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영토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다음달(3월) 명에서는 遼東百戶 王得明을 고려에 보내 철령위 설립을 정식 통고해 왔다. 이에 우왕은 최영과 함께 요동공격을 실행해 옮기고자 비상사태를 선언하였다.

 물론 이 요동공격은 이성계의 ‘四不可論’ 가운데도 지적되어 있듯이 미약한 군사력으로 흥기하는 명에 대응한다는 것은 지극히 무모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우왕 즉위 이래 권신들의 횡포를 겨우 잠재운 시기였으며 거듭되는 왜구의 침구로 농촌이 황폐화되고 국고는 고갈되어 있었다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요동공격은 무모한 계획으로도 보여진다. 하지만 영토를 수호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서도 고려는 요동진공의 원정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왕은 평양으로 진격하여 군사를 징집하여 압록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또 중외의 승도를 징발하여 군사력을 보강시켰다. 이 해 12월 최영을 八道都統使로 삼아 원정군을 총령하게 하고, 그 아래 左右軍을 편성하였다. 창성부원군 曹敏修를 左軍都統使로, 이성계를 右軍都統使로 삼으니 좌우군이 38,830명이요, 딸린 인원이 11,634명, 말이 21,682필이었다.

 고려의 마지막 북진정책은 이렇게 전군을 동원하여 시작되었던 것이다.0574) 아울러 명의 홍무 연호를 정지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元服을 입게하여 명에 대한 적개심을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당시 요동공벌의 총책 8도도통사 최영은 우왕의 청으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 이것은 곧 처음부터 요동정벌의 불가를 주장한 이성계 및 그의 친위부대를 대거 참여시킨 정벌군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였다.

0574)金成俊, 앞의 글, 383쪽.

이러한 견해와 달리 이 요동공벌은 최영이 자신의 정국주도의 걸림돌인 이성계 세력을 제거할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이성계를 배제한 채 우왕과 의논하여 요동공벌을 시작하며 정국을 전시체제로 몰아갔던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姜芝嫣, 앞의 책, 10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