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3. 고려왕조의 멸망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1) 중앙 통치체제의 변화
            • (1) 도평의사사
            • (2) 충렬왕대의 관제격하
            • (3) 충선왕대의 관제개혁
            • (4) 공민왕대의 관제개혁
            • (5) 고려 후기 정치체제의 성격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1) 감무제의 확산과 농촌사회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 3) 관리 등용제도의 변질
            • (1) 인사행정의 문란과 관원의 숫적 증가
            • (2) 과거제와 음서제 등의 변질
            • (3) 첨설직제와 납속보관제의 신설
          • 4) 군제의 개편
            • (1) 원간섭기의 군제
            • (2) 군역체계의 변화
            • (3) 중앙군제의 개편
            • (4) 지방군제의 재편
        • 2.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
          • 1) 권문세족의 성립과 그 성격
            • (1) 세족층의 형성과 그 특징
            • (2) 고려 후기 권력구조와 세족
            • (3) 고려 후기 사회모순의 심화와 세족층의 동향
            • (4) 고려 후기 세족의 역사적 성격
          • 2) 신진사대부의 대두와 그 성격
            • (1) 신진사대부의 대두 배경
            • (2) 사대부의 성격과 용어에 대한 논의
            • (3) 사대부의 성격과 시기구분
          • 3) 개혁정치의 추진과 신진사대부의 성장
            • (1) 개혁정치의 추진
            • (2) 개혁정치의 성격
            • (3) 신진사대부의 성장
        • 3. 고려왕조의 멸망
          • 1) 고려왕조 멸망의 배경
            • (1) 이인임 정권의 한계와 무장세력의 대두
            • (2) 이인임 정권 내부의 갈등과 최영의 집권
            • (3)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
          • 2) 이성계의 집권과 고려왕조의 멸망
            • (1) 이성계 집정체제 강화를 위한 개혁
            • (2)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의 실권 장악
            • (3) 정몽주 살해와 이성계의 왕권찬탈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1. 농장의 성립과 그 구조
          • 1) 전시과체제의 붕괴
          • 2) 농장의 발달과 그 구조
            • (1) 수조지집적형 농장
            • (2) 사적 소유지형 농장
          • 3) 녹과전의 설치
          • 4) 사전·농장의 혁파
        • 2. 수취제도의 변화
          • 1) 조세
          • 2) 공부와 요역
            • (1) 공부
            • (2) 토목공사에서의 부역실태
            • (3) 수취기준의 변화
        • 3. 농업기술의 발전
          • 1) 농법의 발전
          • 2) 목면의 재배
        • 4. 수공업과 염업
          • 1) 수공업
            • (1) 관청수공업
            • (2) 소 수공업
            • (3) 사원수공업
            • (4) 민간수공업
          • 2) 염업
            • (1) 고려 전기 소금의 생산과 유통
            • (2) 고려 후기 소금 전매제의 실시
        • 5. 상업과 화폐
          • 1) 국내상업
            • (1) 도시상업
            • (2) 지방상업
            • (3) 고려 후기 상업의 발달과 신분제의 변동
          • 2) 대외무역
            • (1) 원과의 무역
            • (2) 다른 지역과의 교역
          • 3) 화폐의 유통
            • (1) 포화
            • (2) 은병과 소은병
            • (3) 쇄은과 은전
            • (4) 원의 보초
            • (5) 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위화도회군의 성공과 이성계의 세력기반

 우왕 14년(1388) 5월 7일 요동정벌군은 위화도에 주둔하였는데 이곳에서 이성계는 조민수와 더불어 회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건의문을 서울로 보냈다. 당시 그들이 내세운 회군의 이유는 ① 앞으로 요동성까지는 하천이 많고 빗물이 넘쳐 강을 건너기가 어렵다. ② 작은 나라로서 대국을 섬기는 것이 보국의 길이라는 점, ③ 견명교섭사 박의중이 아직 돌아오기도 전에 큰 나라를 침범하는 것은 사직과 백성을 보호하는 길이 아니며, ④ 지금 장마로 활이 풀리고 갑옷이 무거워 군사와 말이 모두 곤핍한데 이러한 군사를 몰아 堅城을 치는 것은 이기기 어렵다는 점, 끝으로 ⑤ 만약 군량까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다면 진퇴난곡에 빠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러한 요구를 무시하고 환자 金完을 過涉察理使로 파견해 진군을 독촉하였다. 이에 이성계 등은 김완을 잡아 ‘공요불가’의 상소를 통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자 5월 22일 “돌아가 임금곁에 있는 악한 사람을 제거하여 생령을 편안하게 하리라”하고 군사를 돌려 압록강을 건너 되돌아 왔다. 6월 초하루, 개경에 도착한 회군파와 정부군의 싸움은 불가피 한 것이지만 그 수와 패기에서 열세였던 정부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에 최영은 체포되어 고봉현(고양)으로 귀양보내졌다. 그 후 최영은 합포·충주로 이배되고, 우왕 14년(창왕 즉위후) 12월 이성계의 주장에 따라 순군옥에 갇혔다가 참살되었다.

 요동정벌의 원정군은 36원수의 단위부대를 기간으로 하고 있다. 비록 8도도통사인 최영이 총령하고 있지만 중앙군의 실체는 각각 그 원수들에게 절대적 통수권이 부여된 인적관계 위에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원정군의 편성은 각 원수의 명령에 임의로 조종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비록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은 아닐지라도 이성계는 오랜 전란을 통하여 원수의 지위에 올랐던 武將들의 동조를 책동하여 회군을 단행함과 동시에 정치권력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회군을 성공리에 마친 이성계는 우시중, 조민수는 좌시중이 되고 趙浚은 簽書密直司事兼大司憲이 되었으나, 최영의 휘하인 安沼·鄭承可·印原寶·安柱·金若采·鄭熙啓 등은 모두 유배되었다. 최영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우왕 역시 폐위되고 그의 아들 昌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비록 창왕 옹립은 이성계의 뜻과 상반된 것이었지만 이후 이성계는 都摠中外諸軍事로 실권을 장악하여 고려정국의 최후 집권자가 된 것이다. 대외적으로 明은 이성계의 뜻대로 철령위 설치 계획을 변경하여 더 이상 국경분쟁의 소지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회군을 계기로 집권한 이성계 역시 북원과 완전히 손을 끊고 친명정책을 기본노선으로 하여 관계 개선에 노력하였다.

 이상에서 살핀 바와 마찬가지로 우왕 14년(1388) 이성계에 의한 위화도회군은 신흥무장세력 이성계로 하여금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며 이는 곧 고려 왕조 멸망의 분기점이 된다는 사실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조선 건국의 기반을 설명하기 위한 그 간의 연구도 주로 이성계로 하여금 위화도회군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게 한 협조 세력, 즉 그의 군사적 기반에 대하여 관심이 모아져 왔다.0575) 이제 동북면의 한 토호 이성계가 어떻게 중앙무대에 진출하여, 攻遼軍의 지지를 받아 위화도회군을 성공시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성계는 고려 후기 본관인 全州에서 동북면지역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집안의 후예이다.0576) 그의 선대와 고려 정부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공민왕 4년(1355) 이성계의 아버지 李子春과 공민왕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이자춘은 공민왕 5년 雙城摠管府를 수복하려는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적극 호응하여 이 지역 탈환에 공을 세움으로써 동왕 10년 東北面兵馬使에 임명되어 중앙정계의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함으로써 그 지위와 세력은 아들인 이성계로 이어졌다.

 공민왕 10년 通議大夫 金吾衛上將軍 東北面萬戶 이성계는 동년 9월 禿魯江萬戶 朴儀의 반란 진압을 시작으로 이후 계속된 여진족과 홍건적의 칩입을 물리치고, 왜구토벌과 동녕부정벌 등 공민왕대 연이어 일어난 전쟁에 참여하여 뛰어난 공적을 이루었다. 이로써 그는 고려 정부의 동북면 안정 확보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0577)

 우왕 즉위 후에도 이성계의 군공은 계속되었다. 특히 우왕 6년 8월 雲峰戰鬪(또는 荒山大捷)에서 이룩한 이성계의 공로는 무장으로서의 그의 입지를 확고히 해준 전투였다. 공민왕 후반부터 극심해진 왜구의 침입은 우왕 즉위초부터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주고 있었지만 이 운봉전투에서의 대승을 계기로 왜구의 창궐도 한풀 꺾이게 되었다.0578) 그런데 이 운봉전투와 뒤이은 11년 9월 동북면전투의 성공은 관군이 아닌 이성계 자신의 사병화한 무장세력이 적극 활용된 결과라는 점에 주목된다.

 공민왕대 전민변정도감의 개혁 실패로 계속되는 사전의 확장과 왕실의 잦은 토목공사 및 전쟁은 이에 동원된 군졸에 대한 경제적인 뒷받침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최영·邊安烈·禹仁烈 등의 군벌화된 무장의 예에서 보여지듯 고려말에 이르면 군적의 파악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무장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병의 군적(牌記)을 통해 파악되고, 이들 군인에 대한 생활보장도 그들 무장에게 전적으로 의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종 전쟁의 승리여부는 개개인의 투철한 군인정신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소속된 무장의 경제력 내지 통솔력 여하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우왕 6년의 운봉전투는 이를 잘 증명해 주는 실례가 된다.

 三道都巡察使로서 이성계가 토벌에 참여하기 이전 관군은 이미 곳곳에서 왜구에 패하여 전세는 아군에 매우 불리하였다. 그럼에도 이성계는 여진추장으로서 귀화하여 이성계의 심복이 된 偏將 李豆蘭과 동녕부정벌 때 투항한 處明을 투입시켜 싸움을 승리로 반전시킨 것이었다. 이외에도 이성계의 휘하에는 李大中·禹臣忠 등이 있었는데 거의 사병화한 동북면 출신의 무장이었다. 운봉전투보다 소규모였지만 우왕 11년(1385) 동북면에 침투한 왜구토벌에서도 이두란·高呂·趙英珪 등 이성계 심복군사에 의해 섬멸되었다.

 이성계가 참여한 마지막 전쟁인 우왕 14년의 요동정벌에도 그는 자신의 세력기반이라 할 수 있는 평안도·강원도·함경도 출신의 군졸을 이끌고 참전한 것이며, 이들 외에도 동북면 거주민들까지 유사시에 무장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시켜 놓았다. 또 개경에서 가까운 抱川 田莊에 있는 壯丁들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이처럼 이성계는 그가 벼슬하고 있는 개경으로부터 본거지인 和寧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의 충실한 부하를 배치시켜 유사시에 대비하였던 것이다.0579)

 요컨대 이성계는 주민의 대다수가 여진인이며, 살길을 찾아 각지로부터 이주한 주민들로 구성된 동북면의 특수성을 통해 그 세력을 확장시켜 왔으며, 홍건적·부원세력·여진족 등 일련의 반란세력의 진압을 통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다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이성계 세력기반의 특수성은 바로 우왕 14년 조반사건을 계기로 중앙의 권신들을 제거하려는 최영에게는 적임자로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성계의 세력집단은 동북면 출신이나 투항자들로 구성된 군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성계는 이들 외에도 당시 사회병폐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인임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중앙의 사대부들과도 연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위화도회군이 일회성 쿠데타로 그친 것이 아니라 회군의 명분을 제시하고 이후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성계세력 기반의 구체적인 모습을 戊辰回軍功臣에 책봉된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0580)

 첫째, 이성계 군사집단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던 동북면 세력으로 李和·李元桂·趙溫·趙仁壁·趙仁沃·李豆蘭·黃希碩·金仁贊·陸麗·柳曼殊·尹虎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성계의 명령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사병과 같은 존재들이며 또 개인적으로는 이성계와 혈연을 갖고 있거나(이화·이원계), 혼인을 통해 결속된 자들이다(漢陽趙氏 조온 등).0581) 또 친인척은 아니지만 이들은 여러 전쟁에 이성계와 함께 참전하여 그의 심복이 되어 결국 회군에 적극 동조한 자들이다(황희석·육려·김인찬·유만수 등). 이외에도 이성계의 휘하는 아니지만 회군에 적극 동조하고 후에 原從功臣에까지 된 인물로 李承源·崔鄲·崔運海·尹師德·具成老 등이 있다.

 둘째, 요동원정에 참여하였다가 회군에 협조 내지 동조한 인물로 沈德符·裵克廉·池湧奇·朴葳·鄭地·黃甫琳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공민왕∼우왕대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군공을 세운 기성무장들이지만 당시 중앙의 정치권력에서 소외되었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이러한 반감이 이성계의 회군에 적극 동조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끝으로 무장은 아니지만 회군의 명분을 제공한 신진사대부 계층을 들 수 있다. 南誾·尹紹宗·趙浚 등이 바로 그들이다. 남은은 조인옥과 함께 이성계의 핵심참모였다. 그는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 갔다가 회군 모의를 주도함으로써 이후 이성계 일파의 정권장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성계의 인척이기도 한 조인옥은 조준·윤소종 등과 교분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을 이성계와 연계시켜 준 인물로 보인다. 윤소종은 조인옥이나 남은처럼 회군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회군 후 직접 이성계 군영에 찾아가≪藿光傳≫을 바쳤다는 사실은 회군에 대한 찬동뿐 아니라 왕조변혁의 꿈까지 제공한 인물로 파악된다.0582)

 조준은 일찍부터 윤소종·조인옥·허금·유원정·백군령 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우왕대의 정치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던 인물로 우왕 10년(1384) 이후 4년 동안 묻혀지내다가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실권을 장악한 이후 정계에 복귀하여 일련의 개혁상소를 통해 개혁을 적극 주도해간 인물이다.0583)

 요컨대 이성계 세력기반에서는 우왕대 정치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던 불만세력이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불우한 경험을 가졌던 이들은 이성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면서 신흥무장세력 이성계를 통해 그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이들 사대부들은 이성계가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그의 지원아래 제반 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왕조교체를 현실화시켰던 인물이라 하겠다.0584)

<朴漢男>

0575)그 결과 이성계의 가계와 그 주요 군사기반이 된 동북면 토착세력과의 관계, 이를 토대로 한 원 조정에서의 관력 및 이성계의 父 李子春의 공민왕에로의 내응, 공민왕 및 우왕대에 이르기까지 이성계가 구축한 여러 전공 그리고 우왕 14년 崔瑩과 함께 林堅味·廉興邦 세력을 제거하기까지의 정치적 성장과정에 대하여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회군 후 정국을 완전히 수습하고 책봉된 회군공신의 명단을 분석하여 이성계가 회군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게 한 인적 배경 등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李相伯,<李朝 建國의 硏究>(≪震檀學報≫5, 1936 ;≪李朝 建國의 硏究≫, 乙酉文化社, 1949).

韓永愚, 앞의 책.

朴天植,<戊辰回軍功臣의 冊封顚末과 그 性格>(≪全北史學≫3, 1979).

許興植,<高麗末 李成桂(1335∼1408)의 세력기반>(≪歷史와 人間의 對應≫, 高柄翊先生回甲紀念史學論叢, 한울, 1984).

柳昌圭,<李成桂의 軍事的 基盤-東北面을 중심으로->(≪震檀學報≫58, 1984).

崔在晋,<高麗末 東北面의 統治와 李成桂 勢力 成長-雙城摠管府 收復以後를 중심으로->(≪史學志≫26, 檀國大, 1993).

姜芝嫣,<威化島 回軍과 그 推進 勢力에 대한 검토>(≪梨花史學硏究≫20·21, 1993 ; 앞의 책, 95∼120쪽).
0576)이성계 가문은 完山李氏 16세로 되어 있는 李隣으로부터 고려왕조에서 실질적인 관력을 드러내고 있으며, 재상가인 文化柳氏 柳澤과 혼인관계를 갖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분명한 이성계 가문의 대두는 원의 千戶 李安社(穆祖) 때부터이다. 더구나 안사의 대두는 雙城摠管府의 최고실력자로서 원 조정에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있던 총관 趙暉와 밀착하여 통혼을 유지함으로써 동북면 토착세력으로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許興植, 위의 글).
0577)許興植, 위의 글, 222∼228쪽 참조.
0578)羅鍾宇, 앞의 책, 158∼160쪽.
0579)許興植, 앞의 글, 234쪽.
0580)朴天植, 앞의 글(1979) 참조.
0581)姜芝嫣, 앞의 책, 112쪽.
0582)姜芝嫣,<高麗末 尹紹宗의 政治活動 硏究>(≪梨大史苑≫28, 1995 ; 위의 책, 116쪽).
0583)張得振,<趙浚의 政治活動과 그 思想>(≪史學硏究≫38, 1984).
0584)姜芝嫣, 앞의 책, 120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