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수박희
「手搏戱」는 격구와 마찬가지로 무예적인 경기놀이인데 맨손으로 힘을 겨루는 놀이다. 일명 拍戱라고도 하는데 이미 고구려 舞踊塚 玄室벽화에도 수박과 같은 그림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삼국시대에 행해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에 들어와 수박희는 국가에서 이를 무예연마의 수단으로1076) 장려하면서 성행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충혜왕 때 비로소 나타난다.1077) 실제로 궁중 안에는 수박희를 잘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杜景升과 李義旼이었다. 두경승은 拱鶴軍(숙위군)이 되었을 때 수박하는 사람이 짝을 삼았는데, 그의 외숙 상장군 文儒寶가 “手搏은 賤技이니 장사의 할 바 아니라”고 하자 경승이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1078) 이에 반해 수박을 좋아한 의종은 이의민을 隊正에서 별장으로 진급시키기까지 하였다. 두 사람의 수박능력은 후자가 기둥을 쳐 서까래가 움직였고 전자는 주먹이 벽을 뚫고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1079) 崔忠獻(1150∼1219)은 또한 수박을 시켜 승자에게는 상으로 校尉·隊正의 벼슬을 제수할 만큼1080) 고려시대의 수박은 무인들의 필수적인 무술이었다.
수박희는 오늘날의 태권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에는 五兵手搏戱와 與一人手搏戱 등이 있었다. 오병수박희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를 다섯 가지 병기로 볼 수 있다. 즉 弓失·殳(날 없는 창)·矛(창)·戈(긴창)·戟(날 있는 창) 등 5종의 병기를 가지고 손으로 재주를 부리며 승부를 가리는 무술로 보기도 한다.1081) 또는 자유대련의 형식으로 보기도 하는데,1082) 수박희는 상대를 잡지 않고 상대방의 빈틈을 노려 넘어뜨리는 무예의 하나로 주연이나 아동의 유희로 민간에서 성행하였다.1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