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속놀이
고려시대의 민속놀이는 삼국시대보다 훨씬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민간차원보다는 국가에서 또는 궁중에서 이를 장려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하겠다. 민속놀이는 일반적으로 오락·경기·예능·무예·신앙·명절과 관계가 긴밀하므로 그 개념 속에는 경쟁성과 유희성, 오락성, 예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시회상을 온전히 이해하고, 민중의 삶과 궁중의 풍속을 올바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겠으나, 여러 문헌에 나타난 놀이문화를 조감할 때 고려시대는 가히 풍성한 놀이유산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지나침에 따른 병폐도 나타났고 역작용도 없지 않았으나, 조선조의 민속놀이에 대체로 영향을 끼쳤고 삼국시대 놀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려시대에는 이른바 化民成俗을 통하여 미풍양속을 선양하고 유지코자 했으며, 移風易俗으로 자연스런 민풍의 정착을 꾀하였다. 반면에 궁중에서는 나름대로 王化之風을 창출하기 위해 어진 사람의 등용, 학문숭상, 노인공경, 문학·예술존중, 백성과의 화합을 추구했는데, 국가가 민속놀이를 장려하는 한편 그것이 민간에 보급되도록 노력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민속놀이의 분류는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기구상·계절적·관념적·지리적·존재상의 분류가 시도된 바 있다.1043) 이러한 분류에 이어 博戱·運動·競技·武術類戱·演藝雜戱·兒女의 노름으로 나누기도 하고,1044) 武藝的 遊戱와 一般遊戱·娛樂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1045) 信仰性놀이·名節놀이·競技놀이·그 밖의 놀이로 나눈 경우도 있고1046) 명절놀이와 일상적 놀이로 크게 나누고, 풍농기원놀이, 풍어기원놀이, 辟邪進慶·除厄招福을 위한 놀이, 오락을 위한 놀이를 명절놀이에 넣고, 비승부놀이·승부놀이·전문인놀이로 일상적 놀이를 나누기도 하였다.1047) 단체 및 개인경기성격의 놀이, 도박성을 띤 놀이, 음주풍류의 성격을 띤 놀이를 나누기도 하였고,1048) 어린이놀이·가무놀이·겨루기놀이·기타놀이로 나눈 경우도 있다.1049) 또 민속놀이의 내용상 ①신앙유희, ②명절유희, ③경기유희, ④순수유희로 나누어 살핀 경우도 있다.1050)
이상의 분류들에 입각하여 고려시대의 민속놀이를 ①예능적 내용, ②경기적 내용, ③유희적 내용, ④오락적 내용 등으로 분류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043) | 宋錫夏,≪韓國民俗考≫(日新社, 1960), 3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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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4) | 金思燁,<雜技戱攷>(≪一石李熙昇先生頌壽紀念論叢≫, 1957). |
1045) | 羅絢成,≪韓國遊戱史硏究≫(百祥文化社, 1977). |
1046) | 任東權,≪韓國民俗文化論≫(集文堂, 1983), 382∼383쪽. |
1047) | 金善豊,<한국민속놀이>(≪中央民俗學≫ 創刊號, 1989). |
1048) | 張永完,<韓國鄕土娛樂의 歷史的 考察>(≪亞細亞女性硏究≫ 2, 숙명여대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1963), 79∼106쪽. |
1049) | 김광언,≪한국의 민속놀이≫(인하대 출판부, 1982). |
1050) | 張正龍,<歲時記 所載 民俗遊戱 考察>(≪한국민속학≫ 9, 1986), 321∼35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