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군역의 특전
자연경제를 바탕으로 성립되어 있던 조선사회에서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전국의 人丁을 직접 징발하는 방법을 통하여 충당하고 있었다. 즉 조선왕조에서는 16세부터 60세에 이르는 모든 인정(남자)을 국역 부과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이 져야하는 국역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徭役·職役·軍役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국역이라 하더라도 요역은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인정에게 부과되는 부역이었는 데 비하여 직역과 군역은 良身分 내에서 신분에 따라 구별되는 특정한 軍戶나 鄕戶·驛戶 등 有職人에게 부과되는 身役이었다. 양반도 양신분에 속하므로 그들의 직역에 해당하는 관직을 가지지 않는 이상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직역과 군역은 조선사회의 사회신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사회의 사회신분을 구명하는 데 있어서 직역과 군역은 매우 중요하다. 조선 초기 양반의 신분적 지위를 밝히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양반과 그들의 직역인 관직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핀 바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양반과 군역과의 관계를 통하여 조선 초기 양반신분의 사회적 지위를 밝혀 보고자 한다.
직역과 군역은 같은 신역이었기 때문에 직역이 있는 사람은 군역을 지지않았다. 양반도 그들의 직역인 관직을 가지고 있거나 관직에 들어가기 위하여 수학하고 있는 官學生에게는 군역이 면제되었다. 반면에 양반이라 하더라도 관직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관학생이 아닌 이상 일반 양인과 마찬가지로 군역에 편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반이 지는 군역의 내용과 질이 일반 양인들이 지는 그것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군역과 仕宦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각종 특수군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반자제 중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음직이나 과거를 통하여 관직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러한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은 각종 특수군에 입속할 수 있었다.
양반의 특수 병종에는 ①전직관료 중에 군전이나 과전을 받고 서울에서 시위 근무하는 受田牌와 이를 받지 못한 채 시위 근무하는 無受田牌, ②甲 士·別侍衛·親軍衛·內禁衛·內侍衛·兼司僕·宣傳官 등의 직업군인, ③국왕의 친족, 공신·훈신 자제들이 들어가는 族親衛·功臣嫡長·忠義衛·忠■衛·忠順衛 등의 귀족숙위군 등이 있었다. 국가는 왕족·공신·양반 자제들로 왕실 숙위·정권 보위를 하게 하여 양반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