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Ⅱ. 국가제사와 종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1) 성리학의 역할
            • (1) 사회개혁 사상
            • (2) 왕권과 양반사대부와의 균형
          • 2) 5례·4례의 정비
            • (1) 5례의 정비
            • (2) 4례의 장려
          • 3) 문묘제도의 정비
            • (1) 학교와 존현의 중시
            • (2) 4배향제의 확립
            • (3) 권근 문묘종사 논의
            • (4) 도학적 문묘의례의 확대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1) 정도전(1337∼1398)
            • (2) 권근(1352∼1409)
            • (3) 김시습(1435∼1493)
            • (4) 남효온(1453∼1492)
            • (5) 김굉필(1454∼1504)
            • (6) 정여창(1450∼1504)
        • 2. 훈민정음의 창제
          • 1)≪훈민정음≫(해례본)
          • 2) 훈민정음의 창제
            • (1) 창제의 시기
            • (2) 창제자
            • (3) 창제의 동기
            • (4) 제자의 원리
            • (5) 제자의 이론적 기초
            • (6) 합자법과 용자법
          • 3) 훈민정음의 반포
          • 4) 기원설들의 검토
          • 5) 훈민정음 창제의 의의
            • (1) 민족문화의 창조
            • (2) 훈민정음과 우리 민족의 문자생활
            • (3) 세계 문자사에서 본 훈민정음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1) 언문청과 정음청
            • (2) 서적의 간행
            • (3) 간경도감의 불경언해
        • 3. 역사학
          • 1) 민족사의 체계화와 전대사의 정리
            • (1) 전대사의 체계화
            • (2) 고려시대사의 정리
            • (3) 전대사의 체계적 정리
          • 2) 춘추관과 당대사의 편찬
            • (1)≪용비어천가≫와 조선건국사 정리
            • (2) 춘추관과 사관
            • (3) 실록의 편찬과 보관
          • 3) 역사학과 역사사상의 성격
        • 4. 지리지의 편찬과 지도의 제작
          • 1) 지리지의 편찬
            • (1)≪경상도지리지≫의 편찬
            • (2)≪세종실록지리지≫의 편찬
            • (3)≪경상도속찬지리지≫이 편찬
            • (4)≪동국여지승람≫의 편찬
          • 2) 국내지도의 제작
            • (1) 조선 초기에 제작된 지도
            • (2) 동람도의 제작
            • (3) 조선방역도
          • 3) 세계지도의 제작
            • (1) 조선 전기의 세계지도
            • (2)≪해동제국기≫의 일본 및 유구국지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1. 국가제사
          • 1) 종묘와 사직
          • 2) 자연신
            • (1) 원구제
            • (2) 자연신
          • 3) 문묘
          • 4) 역대시조
        • 2. 불교
          • 1) 억불정책과 교단의 존폐
            • (1) 억불정책의 전개
            • (2) 양종과 승과의 폐지
          • 2) 도첩제와 부역승
            • (1) 도첩제의 강화와 폐지
            • (2) 승려의 부역과 그 신분 하락
          • 3) 왕실의 불교숭신과 불교행사
            • (1) 숭불의 왕과 그 불사
            • (2) 척불정책 하에서의 왕실불사
          • 4) 민간의 불교신앙
            • (1) 관음신앙
            • (2) 미타신앙
            • (3) 불탄일 연등과 수륙재
          • 5) 사찰재산과 승려의 경제활동
            • (1) 사찰재산
            • (2) 승려들의 경제활동
          • 6) 당시의 고승들
            • (1) 자초와 기화
            • (2) 세종대의 명승들
            • (3) 세조대의 고승들
        • 3. 도교
          • 1) 소격서 중심의 과의적 도교
          • 2) 수련적 도교의 발전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Ⅱ. 국가제사와 종교

1. 국가제사

 사회적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저급하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여러 자연현상이라던가 역사현상에 대한 信仰의 관념이 매우 현저하였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畏敬의 관념을 신앙의 형태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경우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국가라는 조직체는 그것을 각종의 祭儀 형태로 표현하였다. “국가의 大事가 제사와 군사에 있다”469)느니, “무릇 治人의 道는 禮보다 급한 것이 없고 예에는 五禮가 있으되 祭禮보다 중한 것이 없다”470)는 경전의 말에도 살필 수 있듯이, 유교를 교학으로 신봉하는 국가에서는 특히 그것을 중요한 국가행사의 하나로 엄숙하게 거행하였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는 그같은 국가제사에 매우 큰 변동이 있었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그 하나는 무엇보다도 조선왕조를 개창한 신진 사류층이 자신의 신념대로 性理學을 유일한 國家敎學으로 수용하고 그 가치관·세계관에 따라 지배체제를 정립해가려고 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 성리학은 전통 유교라든지 불교보다는 매우 배타적인 敎義로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명분과 전통을 중시하였다. 그들은 전대부터 전승되어 오는 국가 祀典을 성리학적 명분론에 따라 대폭 정리하려고 시도하였다. 가령 유사이래 지속되어 온 국내의 명산대천에 대한 민간의 자의적인 숭앙을 극력 금압하는가 하면, 또한 고려시대부터 宗廟·社稷과 더불어 일등급의 국가제사, 즉 大祀로 받들어 온 祀天儀인 圓丘와 祭地儀인 方澤祭를 혁파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국가제사의 변화를 초래한 또 다른 요인은 생산력의 상대적 발전에 따른 정치의식과 역사의식의 성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歲耕의 連作農法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된 조선왕조는 한편으로 자영농민의 정립을 크게 확대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왕권의 강화를 성취시키게 되었다. 이제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체제는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농민층의 존재에 상대적으로 더 비중을 두어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농민층을 훈민적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함으로써 농민층과 더불어 역사를 이루어간다는 자기 역사적 현실의 實在에 좀 더 접근하는 방향으로 역사의식의 발전을 성취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령 자기 나라 언어에 맞는 독자적 문자를 창제하거나 혹은 여러 自然神의 실재에 대한 예우를 재정비하였고, 또한 고려시대에는 미진하였던 역대 왕조의 시조에 대한 국가제사의 형태를 구비하기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이른바 위민정치·민본정치의 이념으로 표명되었는데 통치주체로서의 왕권의 존엄을 나타내는 길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모든 사물이 각기 理를 本有하고 있는 실재라고 인식하는 성리학적 본체론과 그 세계관이 동시에 상승적으로 작용하였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왕조를 개창하고 국가제사를 정비해 간 개혁파 사류의 기본적 祀神觀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는가.

① 국가의 대사로는 祭祀가 중요한 것이니, 宗社를 받들고 神明과 교감하는 까닭이다. 반드시 안으로 誠敬을 간직하고 밖으로는 儀文을 구비한 뒤에라야 신명을 感格시킬 수 있다(鄭道傳,≪三峰集≫권 8,<朝鮮經國典>下, 憲典 祭祀).

② 귀신의 道는 선한 자에게는 복을 주고 淫한 자에게는 화를 준다. 사람이 덕을 닦지 아니하고 넘치는 제사를 지낸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원컨대 지금부터는 祀典에 실려 있는 바 이치상 마땅히 제사해야 할 대상 이외의 기타 淫祀는 일체 금단하고, 이를 常典으로 삼아 어기는 자는 통렬히 다스릴 것이다(≪太祖實錄≫권 2, 태조 원년 9월 갑술).

③ 귀신에게 제사하는 일은 誠敬이 주가 된다. 음사에 넘치게 빠지는 것은 제사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定宗實錄≫권 6, 정종 2년 12월 임자).

 ①은 조선왕조 개창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鄭道傳의 말이요, ②는 역시 그 주역의 한 사람 南在가 개국 직후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발의한 말이며, ③은 태종 즉위 직후 禮曹에서 올린 글이다. 무릇 제사라는 것은 국가의 중대사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精誠과 恭敬을 갖추어 도리에 맞게 받들어야만 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하나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誠敬을 결여한 채 지나치게 귀신을 섬긴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님은 물론, 도리어 어긋나서 넘치는 淫祀는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즉 국가의 제사를 두고 말하더라도 인간의 화복이 결코 神明의 자의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의 所爲로 말미암아 自取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음사를 척결하는 한편 성경과 儀文을 갖추어 도리에 합당한 제사인지의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곧 유교경전에 근거한 주자학적 세계관 이외의 것일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 초기 그같은 祀典의 개혁이 전래의 전통이나 인습을 완전히 떠나 성리학적 범주를 따라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禮記≫의 5례를 기준으로 하여 추진되었다. 그래서 세종대에는 5례에 관한 논의를 깊이 있게 진행시켜 사전의 정비를 일단락짓게 되었고,471) 성종대에는≪國朝五禮儀≫라는 국가의례를 확립하여 공표하기에 이르렀으며,472) 그 가운데 吉禮, 즉 여기서 검토하는 국가제사의 대상은≪經國大典≫禮典 祭禮條에 고쳐 실어 불변의 준칙으로 삼고자 하였다.473)

 그같은 변화와 그 역사적 의미를 살피기 위하여 우선≪高麗史≫禮志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의 각종 국가제사의 대상과≪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조선시대의 그것을 일별해보면 다음과 같다.474)

제사종류 고 려 시 대 조 선 시 대
大 祀 圓 丘 方澤 社稷 太廟 別廟 景靈殿 諸陵 宗廟 永寧殿 社稷
中 祀 籍田(先農) 先蠶 文宣王 風 雲 雷 雨 岳 海 瀆 先農 先蠶

雩祀 文宣王 歷代始祖
小 祀 風 師 雨師 雷神 靈星 馬祖 先牧 馬社 馬步

司寒 諸州縣文宣王
馬祖 先牧 馬社 馬步 靈星 老人星

名山大川 司寒 禡祭 纛祭 厲祭
雜 祀 壓 兵祭 紺岳神祠 西京木覓祠 醮祭 南海神

川上祭 老人星 城隍神祠 天祥祭 五溫神

名山大川 箕子 東明聖帝祠 禖祭 無等山神

金城山神 纛祭
 

<표 1>국가제사 종류와 대상 비교표

 조선왕조도 고려와 마찬가지로 국가제사를 비중에 따라 대·종·소사로 나누고 차등을 두어 치제하였지만, 잡사를 아예 없애버리는 등 그 대상을 매우 간략하게 변화시켰다. 기복이라던가 치성의 잡다한 의례475)를 많이 혁파하고 역사를 이루어 가는 왕권이나 국가의 존엄에 걸맞는 사전으로 정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그것을 종묘와 사직, 여러 자연신, 문묘, 그리고 역대 시조로 구분하여 차례로 고찰하기로 한다.476)

469)≪春秋左氏傳≫成公 13년.
470)≪禮記≫祭統.
471)≪世宗實錄≫권 128, 五禮 吉禮, 辨祀條에 정리되어 있는 국가제사의 대상은 다음과 같은데, 고려시대의 경우에 비하여 크게 정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大祀:社稷·宗廟.

中祀:風雲雷雨(山川 城隍 附)·岳·海·瀆·先農·先蠶·雩祀·文宣王·朝鮮檀君·後朝鮮始祖箕子·高麗始祖.

小祀:靈星·名山大川·司寒·馬祖·先牧·馬社·馬步·七祀·禜祭.
472)≪國朝五禮儀≫進箋에 의하면 성종 6년(1475)의 일이었다.≪周禮≫에서는 五禮를 吉·凶·軍·賓·嘉의 순서로 편찬하였는데, 이는≪高麗史≫禮志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조선의≪國朝五禮儀≫는 吉·嘉·賓·軍·凶의 순서로 바뀌었다. 그것은≪宋史≫禮志의 편차를 따른 것으로, 性理學的 禮論이 수용된 결과라 할 것이다(李範稷,≪韓國中世禮思想硏究≫, 一潮閣, 1989, 391∼392쪽 참조).
473)≪經國大典≫권 3, 禮典 祭禮條에는 小祀의 대상 가운데≪國朝五禮儀≫에 있는 禜祭(장마가 오래 갈 때 날이 개이기를 비는 제사), 酺祭(蝗螟의 災害가 있을 때 행하는 제사), 七祀(司命·戶·寵·門·厲·行·中霤의 7神에 대한 제사)가 제외되어 있다(≪國朝五禮儀≫권 1, 吉禮).
474) 고려시대의 雜祀는 ‘고려에만 있는 재래적인 諸神들’(李範稷, 앞의 책, 82쪽)에 대한 국가제사로서, 類別키 어려울 만큼 복잡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대강을 간추렸다. 잡사는 대개가 致誠의 행사, 특히 祈福의 행사로 거행되었는 바, 그 중에서도 주로 天上의 여러 별들을 대상으로 하는 醮祭가 가장 복잡 다양하였고, 또한 국왕 혹은 태자의 親臨下에 가장 빈번히 거행되었다.
475) 가령 고려시대 잡사 가운데의 壓兵祭는 路祭, 川上祭는 수재·한재가 있을 때 百神에 대한 祈晴·祈雨의 치성, 天祥祭는 路祭, 天祥祭는 災變에 대한 祈禳, 五溫은 疫神, 禖祭는 求子의 祭儀 따위로 잡다하였다. 또 醮祭의 대상도 太一·三界靈祗·昊天五方帝 등 도교적·불교적·유교적 諸神으로 다양하였다.
476) 이 방면에 관한 연구는 매우 부진하여, 다만 다음의 연구를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金泰永,<朝鮮初期 祀典의 成立에 대하여>(≪歷史學報≫58, 1973).

韓㳓劤,<朝鮮王朝初期에 있어서의 儒敎理念의 實踐과 信仰宗敎>(≪韓國史論≫3, 서울大 國史學科, 1976).

李範稷, 앞의 책.

池斗煥,<朝鮮前期 文廟儀禮의 整備過程>(≪韓國史硏究≫75, 199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