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수륙재회
悲齋會라고도 일컫는 이 水陸齋는 물과 뭍에 음식을 흩어서 수륙의 孤魂과 모든 귀신들의 고통을 구제하는 법회의식이다. 역시 고려로부터 물려받은 이 불교의 齋儀는 태조를 비롯한 역대 왕실에서 주로 행하였던 불교행사의 하나였다.
고려 왕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수륙재를 베푼 일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왕실에서는 국왕이나 왕비, 왕자 등의 救病과 상왕이나 대비 등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많이 베풀어졌다.≪조선왕조실록≫에는 수륙재회 관련기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대부분의 경우가 왕실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藥師法席과 더불어 베풀어졌으며, 특히 수륙재는 名刹 靈場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므로 왕실에서 주로 행한 수륙재는 민간에서의 신앙행사가 아니므로 서민층에서도 그대로 행하여졌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수륙재는 민간에서도 행해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례가≪성종실록≫에 보인다. 성종 2년(1471)에 황해도에서 악성 전염병이 만연하였으므로 그곳 관찰사에게 글을 내려 의원으로 하여금 약을 가져가 치료하게 하고, 또 鳳山의 成佛庵에서 戒行이 청정한 승려를 가리어 수륙재를 베풀게 하였다.671) 이 때의 수륙재는 물론 나라에서 지방의 관찰사에게 명하여 행해진 것이지만, 지방에서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해 베푼 것이므로 일반 서민들 사이에도 그러한 성격의 수륙재를 행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신도들은 절에 가서 救病施食 및 設齋施食을 행하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서는 시골 아낙네들이 물가나 산기슭에 음식을 놓고 불을 밝혀 액운을 막고 복을 비는 풍습이 남아 있다. 이는 심한 억불과 폐불로 인해 불교 신앙행위가 금지된 뒤에도672) 민간의 저변에 수륙재의 유풍이 그러한 형태로 남아 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