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Ⅰ. 과학1. 전통적 자연관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태종의 음양지리

 태조가 새 서울을 정하기 위해 풍수설에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대조적으로 태종은 풍수설 등을 포함한 邪說을 정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태조의 새 서울 결정 문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미 풍수설은 모호성을 충분히 드러냈을 뿐 아니라 풍수가마다 다른 이론을 내세우고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종은 이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풍수설은 당연히 도참설과 손을 잡고 왕조의 쇠왕을 예언하는 등의 위협으로 작용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이미 조선초에는 지식층 사이에 고려 때까지 지나치게 풍수설과 도참설이 강하게 작용한 데에 대한 반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태조가 홀로 새 서울의 자리를 잡으려고 집착하고 있을 때에도 서운관의 지관 劉旱雨 같은 사람은 풍수와 도참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태조가 군신을 거느리고 무악에 현장답사를 갔을 때인 동왕 3년(1394) 8월의 일이다. 현장을 둘러 본 군신들은 무악을 적당한 새 서울 자리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태조는 書雲副正 유한우를 불러 “정말로 여기가 서울로 알맞지 않은가”라고 다그쳤으나 유한우는 안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에 임금이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어디가 좋으냐고 묻고 송도지기의 쇠왕설을 듣지 못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유한우는 “이는 도참설인데, 신은 다만 지리를 배웠을 뿐이지 도참은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018)

 왕자의 난으로 새 왕조의 앞길이 불안한 가운데, 자연의 여러 가지 재이까지 겹쳐 정종은 즉위와 함께 다시 개경으로 도읍을 옮기고 말았다. 새 서울에서 불편한 생활에 질린 많은 사람들은 옛 서울로 돌아온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개경에서도 골육간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 결과 태종이 정종 2년(1400) 11월에 즉위했으나 12월에는 壽昌宮에 화재가 나는 등의 불행이 그칠 줄 몰랐다. 서울을 다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나게 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였다.

 당시 인심이 아주 흉흉하고 풍수·도참 등의 온갖 술수가 널리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연말에 태종은 드디어 술수에 관한 서적을 금하라고 명하고, 한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는 문제를 상의하기 시작했다.019)

 태종은 문신 10여 인에게 서운관에 비밀 수장되어 있는 서적들을 참고해서 천도의 이해를 따져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자리에서 태종은 지금 참위 술수의 책들은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그래서 더욱 인심을 어지럽힌다면서 이를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대신들의 의견은 이를 따를 것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논란은 분분했고, 하륜은 다시 무악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했다.

 또 이 자리에서 태종은 구태여 부왕이 새로 만든 서울을 버리고 새삼 새 도읍을 건설하여 백성을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였으나 논란 끝에 천도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이 때 그 단서를 제공한 것은 하륜의 무악으로 옮기자는 상서였다. 태종 4년(1404) 9월 하륜이 다시 지리도참서를 참고해서 주장했던 옛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와 무악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하자 태종은 몸소 현장답사를 감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0월 4일 현장에 도착한 태종 일행은 조사를 마치고 각각 의견을 발표하게 되었다.020)

 그런데 무악과 한양 가운데 어느 곳이 더 좋은지 숨기지 말고 의견을 말하라는 임금의 지시에 자기 의견을 밝힌 사람은 지리학자들 뿐이었다.≪太宗實錄≫에는 당시의 대표적 풍수가인 尹莘達·閔中理·劉旱雨·李陽達·李良 등의 이름과 의견만이 기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윤신달만이 무악을 지지하고 나섰을 뿐, 나머지는 대체로 무악이 좋지 않다는 의견이었고, 한양 또한 마땅치 않다는 의견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 기록에는 당시 함께 있었던 대신이나 언관 등이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은 것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태종은 한양이 적당하지 않다면서 왜 태조가 한양을 건설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서, 어떻게 한양에 도읍을 세우게 되었느냐고 趙浚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조준은 “신은 지리를 모른다”고 응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서울을 어디로 결정할 것인가를 두고 태종은 그 이틀 뒤 한양에 세워 놓은 종묘에 행차하여 동전을 던져 점을 쳐서 도읍지를 결정하게 되었다.021) 태종은 자기가 송도에 있는 동안 재변이 많았고, 그 때문에 신하들의 의견을 물은 즉 新都로 다시 옮기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신도에서 역시 변고가 많았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도읍이 정해지지 않아 인심 역시 안정을 얻지 못하니, 신도·송도·무악 세 후보지 가운데 점을 쳐서 결정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점괘에 따라 새 도읍이 결정되면 이론을 달지 않기로 하자면서 임금은 동전을 던지게 했다. 그 결과는 신도가 2길 1흉, 송도와 무악은 각기 2흉 1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신도 한양으로의 이사는 태종 5년(1405) 10월 시행되었다. 태종 자신이 신도·송도·무악 가운데 어디를 더 좋은 곳으로 여겼던가는 확실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로 도읍을 확정하기까지에는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시간이 걸렸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다. 당시의 지배적 사상으로 풍수지리학과 도참사상이 강하게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태조가 갖고 있던 새 도읍을 정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은 태종에게도 어느 정도 전파되어 남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태상왕으로 살아있던 태조는 자기가 지은 새 도읍으로 돌아갈 것을 바라고 있었다. 태종으로서는 도읍을 신도로 확정함으로써 자기 집권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받은 자기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도읍이 결정되자 태종은 음양술수에 관한 허황된 부분에 대해서는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 태종 17년 6월 강계에서 무녀 2명이 妖言 사건으로 처형될 경우 감등해서 처벌하라고 지시한 태종은 “나는 참위에 관한 책을 믿지 않은 지 오래이다”라면서 구체적 예를 들어 말하였다. 이어 “종묘사직의 화복과 길고 짧음이 어찌 이로써 알 수 있으리오”라고 하고, 일찍이 서운관에 이따위 책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고 명했는데 어찌 되었느냐고 채근하였다.022)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참서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참위술수는 혹세무민의 원천이어서 이미 서운관에 불태우라는 지시를 했으나, 혹시 아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런 서적이 있다면 내년 정월까지 자진해 바쳐 태우도록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고발한 사람에게는 그 죄인의 재산으로 상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023)

 실제로 그해 12월 서운관은 소장하고 있던 참서 2상자를 불태워 버렸다. 소장된 음양서 가운데 妖誕不經의 것들을 모두 골라 태워버리라는 왕명을 따른 것이다. 또 이≪태종실록≫기사에는 “당시 사람들은 전왕조 때의 습관 때문에 陰陽拘忌를 혹신한다”024)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으로 보아 모든 풍수학 책을 태웠다는 뜻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특히 고려 때와의 차별화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새 왕조의 지배층은 고려 때의 지나친 풍수지리 사상을 극복하려는 각오를 가지고 있었고, 태종 자신이 아버지 보다 합리적인 풍수사상을 지니려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듬해 2월 4일 태종이 끔찍하게 사랑하던 넷째 아들 誠寧大君이 두창으로 14살에 죽자 태종 부부의 슬픔은 나라를 기우릴 정도에 이르렀다. 어린 아들의 질병 치료에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태종이었지만 장례일을 잡는데 지나치게 풍수설에 따라 길일을 고르느라 장의일이 늦춰지자 단호하게 4월초로 잡을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음양지리법은 언제 시작된 것이며, 중국인들도 장지를 고르는데 우리처럼 이에 따르는가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신하들의 대답은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025)

018)≪太祖實錄≫권 6, 태조 3년 8월 무인.
019)≪定宗實錄≫권 6, 정종 2년 12월 임자.
020)≪太宗實錄≫권 8, 태종 4년 10월 임신.
021)≪太宗實錄≫권 8, 태종 4년 10월 갑술.
022)≪太宗實錄≫권 33, 태종 17년 6월 경인.
023)≪太宗實錄≫권 34, 태종 17년 11월 병진.
024)≪太宗實錄≫권 34, 태종 17년 12월 병신.
025)≪太宗實錄≫권 35, 태종 18년 2월 무자.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