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농구
농법의 이중구조는 농구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조선 전기의 농구체계는 다양한 牛耕具와 手耕具가 각각 분화 발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뚜렷한 특징을 드러내 보였다. 이른바 선진기술로 편집된≪농사직설≫에서는 ‘보(有鐴反轉犁)’·‘발외(作條犁)’ 등의 다양한 종류의 경려와 축력농구가 등장하였는데 비해, 소빈농층의 경기작업에서는 ‘보’·‘삷’·‘래’ 등의 수경구가 널리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른바≪농사직설≫의 농법은 이미≪齊民要術≫에서 확립된 ‘耕-把-撈’의 축력 일관작업의 단계를 넘어 다양하고 독창적인 농구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더구나 이 시대의 농구는 한국의 지형 및 기후조건이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풍부한 축력과 대농구를 모두 갖춘 양반사대부층의 노동생산성 위주의 대경영과, ‘호’·‘쇼시랑’ 등의 빈약한 인력농구만을 갖춘 소빈농들의 소경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64)
164) | 李鎬澈,<農具와 水利施設>(위의 책), 327∼3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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