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Ⅳ. 예술2. 건축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1. 전통적 자연관
          • 1) 재이현상으로 본 전통적 자연관
            • (1) 가뭄으로 본 재이
            • (2) 그 밖의 재이 몇 가지
          • 2) 풍수지리로 본 자연관
            • (1) 한양 천도의 논리
            • (2) 태종의 음양지리
            • (3) 세종대의 논의
            • (4) 이지함과 남사고의 유산
          • 3) 유학사상을 통해 본 자연관-유교정치와 자연
            • (1) 일식과 태양 관련의 자연현상
            • (2) 연산군의 정치 천문학
            • (3) 중종대 암탉의 수탉 되기
        • 2. 천문 기상학
          • 1) 서운관·관상감의 설치와 그 기능
            • (1) 관장업무와 직제
            • (2) 관아와 관측규정
          • 2)<천상열차분야지도>
            • (1) 그 성립과 구성
            • (2) 관측연대와 조선 천문도
          • 3) 천문대와 관측기기
            • (1) 간의대의 설치
            • (2) 간의대의 관측기기
          • 4) 해시계와 물시계의 제작
            • (1) 세종대의 해시계
            • (2) 자격루와 옥루
          • 5) 천문학 서적의 간행
            • (1)≪칠정산내외편≫과 역학서의 편찬
            • (2)≪제가역상집≫과≪천문유초≫
          • 6) 측우기의 발명과 농업기상학의 발달
            • (1) 측우기와 수표의 발명
            • (2) 농업기상학의 발달
        • 3. 물리학과 물리기술
          • 1) 도량형과 자기의 이론
          • 2) 자석과 자기의 이론
          • 3) 수리기술과 기계장치
          • 4) 화약과 화기의 제조
        • 4. 의약과 약학
          • 1) 의약정책
            • (1) 고려 의학의 계승
            • (2) 향약 장려정책
            • (3) 중국 약의 이식과 재배
            • (4) 약재의 무역
            • (5)≪신주무원록≫의 편찬
          • 2)≪향약집성방≫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 배경과 과정
            • (2) 특징과 의의
          • 3)≪의방유취≫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과정과 편집방식
            • (2) 인용문헌
            • (3) 오늘날 전하는≪의방유취≫
          • 4) 의서의 편찬과 간행
            • (1) 중국의서의 수입과 간행
            • (2) 국내 의서의 편찬과 간행
            • (3) 허준의 의서 편찬
            • (4) 의서의 언해
          • 5)≪동의보감≫의 편찬과 간행
            • (1) 편찬배경과 저술과정
            • (2) 내용과 편집체계
            • (3) 특징과 의학사적 의의
            • (4) 간본
          • 6) 다원적인 의료상황
            • (1) 의학의 분화
            • (2) 온천·냉천 및 한증욕의 발달
            • (3) 양생술의 유행
            • (4) 종교적 의료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1) 농업과 그 환경
            • (1) 자연환경
            • (2) 인구와 농업노동력
            • (3) 노동수단
            • (4) 노동대상
          • 2) 농업기술
            • (1) 수전농법
            • (2) 한전농법
            • (3) 서지법
            • (4) 시비법
            • (5) 경법과 쟁기
            • (6) 농구체계
          • 3) 농업기술의 성격
        • 2. 인쇄기술
          • 1) 금속활자의 주조 및 조판인쇄
            • (1) 관주활자
            • (2) 민간활자
          • 2) 목활자의 제작 및 조판인쇄
          • 3) 목판의 판각 및 인쇄
          • 4) 서적의 인쇄
            • (1) 관판본
            • (2) 국왕 및 왕실판본
            • (3) 사찰판본
            • (4) 서원판본
            • (5) 사가판본
        • 3. 군사기술
          • 1) 화약과 화기의 전래
          • 2) 화약의 제조
          • 3) 화기제작기술의 부침
            • (1) 화기발달의 시초(태종대)
            • (2) 화기발달의 진전(세종 전기)
          • 4) 조선 중기의 화기
            • (1) 총통
            • (2) 발사물
            • (3) 화약무기의 특징
      • Ⅲ. 문학
        • 1. 한문학
          • 1) 한문학의 맥락
            • (1) 조선왕조 개국과 한문학
            • (2)≪동문선≫과 조선문학
            • (3) 문이재도론의 전개
          • 2) 사림파의 한문학
            • (1) 목릉성세와 성정미학
            • (2) 사림파의 품격론
            • (3) 사림파의 음영성정
        • 2. 국문학
          • 1) 훈민정음 창제와 국문학
          • 2)≪용비어천가≫와≪월인천강지곡≫
          • 3) 악장과 경기체가
          • 4) 시조와 가사
          • 5) 설화와 소학지희
        • 3. 언어
          • 1) 문자생활
            • (1) 한자와 한글
            • (2) 한글의 사용과 보급
          • 2) 언어
            • (1) 한글문헌과 그 언어
            • (2) 음운
            • (3) 문법
            • (4) 어휘
      • Ⅳ. 예술
        • 1. 음악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과 활동범위
            • (1) 왕립음악기관의 역사적 변천
            • (2) 장악원의 직제와 활동범위
          • 2) 아악의 부흥
            • (1) 건국 초기의 악가제정
            • (2) 세종대의 율관제작과 악기제조
            • (3) 세종대의 아악제정과 박연
            • (4) 아악이론과 음악양식
          • 3) 향악과 향악정재
            • (1) 향악기와 향악곡
            • (2) 향악의 음악양식
            • (3) 향악정재와 민속악
          • 4) 당악과 고취악
            • (1) 당악과 당악정재
            • (2) 당악의 향악화와 음악양식
            • (3) 고취악
          • 5) 악서와 기보법
            • (1) 악보와 악서편찬
            • (2) 새 기보법의 창안
        • 2. 건축
          • 1) 건축기법과 특징
          • 2) 도성의 건설
            • (1) 도성건설의 개요
            • (2) 태조의 도성건설
            • (3) 태종의 도성건설
            • (4) 세종과 그 이후의 도성건설
          •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 (1) 읍성의 축조
            • (2) 관아의 시설
          • 4) 사전의 건축
            • (1) 사단의 조영
            • (2) 사묘 건축
            • (3) 학교 건축
          • 5) 사원의 건축
          • 6) 민가의 건축
        • 3. 도자
          • 1) 분청사기와 조선청자
            • (1) 분청사기
            • (2) 조선청자
          • 2) 조선백자
            • (1) 세계도자사와 조선백자
            • (2) 조선백자의 시작과 확산
            • (3) 조선백자의 변천
          • 3) 청화백자
          • 4) 조선백자의 문양
          • 5) 사옹원과 분원
            • (1) 사옹원
            • (2) 분원
            • (3) 분원의 운영개요
        • 4. 회화
          • 1) 고려전통의 계승과 중국화풍의 수용
            • (1) 고려전통의 수용
            • (2) 중국화풍의 수용
          • 2) 왕공·사대부와 회화
          • 3) 도화서와 화원
          • 4) 회화의 제경향
            • (1) 안견의 화풍
            • (2) 강희안과 강희맹의 화풍
            • (3) 이상좌의 화풍
            • (4) 이장손·최숙창·서문보의 화풍
            • (5) 이암·신사임당의 화풍
          • 5) 일본 무로마찌시대 회화에 미친 영향
        • 5. 서예
          • 1) 송설체의 유행
          • 2) 왕희지체의 전통
          • 3) 금석과 사경의 서풍
          • 4) 한글서체의 필사화
        • 6. 공예
          • 1) 금속공예
            • (1) 범종
            • (2) 사리장엄구
            • (3) 향로
            • (4) 청동운판과 대발
            • (5) 도검
            • (6) 생활용구와 장신구
          • 2) 목칠공예
            • (1) 목공예
            • (2) 칠공예
        • 7. 조각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읍성의 축조와 관아시설

(1) 읍성의 축조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의 治地에 읍성을 쌓았다. 산곡 내륙의 읍치는 그렇지 않았지만 요충지에는 으레 읍성 쌓는 것을 기본으로 알았다. 읍성이 행정구역 단위에 축조되었다고 하여 행정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고 있으나,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되는 성채와 다를 바 없었다. 유사시에는 관원과 군인·백성들이 합세하여 성을 지키면서 적을 막았다. 평상시의 행정적인 기능과 유사시의 군사적인 기능을 함께 지녔던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의 행정·군사의 편제에서 牧使와 兵使의 이원적 조직을 갖추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조선 초기·중기의 행정구역은 모두 330개소에 달하였다. 그 중 읍성은 한양의 도성을 비롯하여 160기의 성이 기록되어 있다. 읍치에는 읍성 이외에 다른 성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昌城都護府에는 읍성 이외에 靑山城·行城이 더 있었고 평양부에는 內城과 外城이 있었다.641) 이런 성이 전국에 30기가 더 있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조에도 성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으나 이들은 거의 폐기된 전대의 것이므로 성곽조에 기록된 190기만이 당대의 것으로 보인다. 이 성들을 분류하면 다음<표>와 같이 돌로 쌓은 석성이 179기이고, 흙으로 쌓은 토성은 11기였다.

지 역 행정구역 읍성이

있는 군현
읍 성 비 고
석축 토축
한 성 부 1 1 1 1   都城
개 성 부 1 1 2 2   內外城

좌 도 22 1 1 1   水原都護府
우 도 15 1 1 1   喬桐縣

좌 도 21 5 5 5    
우 도 33 19 20 19 1 乾至山城 포함

좌 도 35 20 23 23   慶州, 梁山, 寧海山城 포함
우 도 31 21 22 19 2 咸陽沙近城 포함

좌 도 21 8 11 11   南原 鉸龍山城 포함
우 도 36 25 28 26 2 珍島 金鴨 南姚浦城 포함

좌 도 14 2 2 2    
우 도 10 6 6 6    

좌 도 9 9 11 9 2 三陟,沃原城, 通川北山城 포함
우 도 17 1 1 1    

좌 도 13 8 11 11   永興 山倉洞城, 甲山外城

三水 鴨綠江行城 포함
우 도 9 9 12 10 2 土築 2개소는 미상

鏡城南山城 등 포함

좌 도 21 12 18 17 1 平壤外城, 昌城의 靑山城과

行城, 朔州의 行城 등 포함
우 도 21 11 16 14 1 渭原 加工軍洞行城, 洞口行

城 碧潼行城 등 포함
330 160 190기 179기 11기  

<표>조선 초기 행정구역과 읍성

 읍성이 행정적인 성이라 한다면 요새에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축성된 성이 따로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군·현에 읍성과 함께 行城·山城·營城·鎭城·堡城·倉城·所城·戍城·長城·關城 등이 있었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그런 성이 555기 가량 있다고 하였다. 또 옛날에 쌓은 것 중에 잔형이 남아 있는 성이 200여 기나 된다고 하였다. 읍성 외에 군대 주둔용 등의 작은 성들을 따로 두었던 것은 요소에 분산 주둔하였다가 서로 도우며 기습하거나 구원하는 전법을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642)

 下三道에는 진·성·수·소 등의 작은 성들이 많았다. 그것은 고려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왜구의 침입이 지속되어 그들을 막는 일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대부터 문종대에 걸쳐 축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단종 때에도 하삼도의 성벽 중 퇴락한 것의 보수문제가 논의되었다. 충청·경상·전라도 都體察使 鄭苯의 청에 따라 경상도의 蔚山 柳浦石堡, 충청도의 瑞山城을 쌓았고 조성중이던 경상도 昆陽·機張·東萊·固城·巨濟城의 海子와 鎭海·河東城의 敵臺, 그리고 전라도 興陽·順天·光陽城의 擁城을 각 읍 수령 책임하에 완성케 하고, 충청·경상·전라도의 관찰사들에게 감수하도록 하였다.643)

 정분은 전에도 문종에게 東西兩界의 축성은 대신을 보내어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감독케 하였지만 하삼도는 감찰사의 지휘하에 전례에 따라 이룩하는 것이 번거롭지 않아 실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중앙에서 꼭 사람을 보내야 한다면 전문가를 畵工과 함께 파견하여 각 도의 감사와 고을의 수령이 공동으로 살펴서 城基를 정한 것을 낱낱이 그려서 廟堂에 복명하면 그것을 대신들이 검토하여 결정함이 좋겠다고 아뢰었다.644) 이는 대신이 지방에 거동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삼도의 읍성들은 城制가 제각기여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당시 법으로 정하였던 성제의 대요는 하삼도의 읍성 실태를 직접 조사한 도체찰사 정분이 개축시에 반드시 교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31기 성의 불완전한 점들을 검토하면 파악할 수 있다.

 정분은 慶州읍성의 둘레에 해자가 없다고 하면서 당시 읍성의 규모와 시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경주부읍성 둘레 4,075尺, 높이 11척 6寸, 성가퀴 높이 1척 4촌, 敵臺 26, 門 3, 無擁城 성가퀴 1,155, 城內 우물 83, 海子 아직 파지 못함(≪文宗實錄≫ 권 9, 문종 원년 9월 경자).

 이어서 정분은 30곳의 성을 지목하면서 현재 상태와 보완할 부분을 지적하였다.645)

 수시로 이러한 진단을 함에 따라 거제의 읍성도 새로 城基를 정하고 읍성 해자를 개축하였다. 원래보다 동북쪽으로 1,000여 척 확대시켰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받고, 巡察使로 하여금 편리한지 여부를 살펴 성기를 정하기로 하였다.646) 이에 따라 도체찰사 정분이 기존의 읍성을 살핀 후 법도에 맞지 않게 쌓았으므로, 성의 둘레를 1,916척으로 쌓으면 성의 백성들이 다 들어갈 수 있겠다고 하였다. 또 古丁部曲의 지세가 평탄하고 골이 깊으니 샘을 파서 물을 얻기에 좋고 살기에도 좋으므로, 읍성을 이리로 옮기는 것이 좋겠으며 내년 10월쯤에 축성하면 편의하겠다고 하였다. 단 永登浦와 玉浦와의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서 주야로 들에서 일을 하다가 왜구의 습격을 받으면 요해지를 잃을 염려가 있으니 두 포의 사이에 栗浦를 두어 木柵을 설치하고 船軍을 영등포에 20명, 옥포에 30명을 배치하여 군관 한 사람으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자고 하였다. 또 知世와 吾兒의 사이도 너무 떨어져 연계되기 어려우니 그 사이에 助羅浦를 설치하고 나누어 지키게 함이 옳겠다고 보고하였다.647)

 이 건의에 대하여 읍성을 옮기는 것은 좋으나 沙等里에 읍성을 건설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난감하다는 여론이 있어, 문종은 이를 다시 검토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때 倭護軍 藤九郞으로부터 왜구가 침입할 기미가 있다는 첩보가 왔으므로 그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했고 대신들은 읍성을 옮기는 일이 마땅하다고 하였다.648)

 하삼도의 방비가 자주 침구하는 소규모 집단의 기습공격을 방어하는 대책이었다면, 북방은 육로로 대규모 집단이 일시에 국경을 침범하는 사변을 제어하려는 방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말 홍건적의 침입을 경험한 일이 있었으므로 문종초에도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자는 분위기였다.649)

 또 중국쪽에서 심상치 않은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좌의정 黃甫仁이 장성을 쌓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650) 또 하삼도의 읍성 정비안을 준비하고 있던 정분은 태종 때 성산부원군 이직이 함길도 도체찰사로 임명되어 吉州·端川·北靑·甲山 등에 산성을 쌓는 일의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축성해야 한다고 보고하였던 사실을 들어 함길도·평안도 지역에서 산성축조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651) 함길도 절제사 李澄玉도 야인들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고 변방사태를 보고하면서 會寧·慶源 등의 성이 견고하지 못하고 穩城과 鍾城의 성도 완성되지 못하였으므로 더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652)

 성을 쌓는 데에는 돌이나 흙으로 쌓는 방법 외에 목책으로 방어벽을 만드는 수도 있었으며 鹿角木柵 등의 기법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함길도 會寧鎭의 甫乙下口子城은 목책으로 하라는 분부가 있었으나 목재는 다루기 어렵다고 하여 토축하게 해달라는 건의가 있었다. 결국 황보인이 돌 뜨는 곳도 가까우므로 석성으로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주장에 따라 원래 책정된 150명에 50명을 더 주어 성벽을 쌓게 하였다.653)

 함흥과 온성·갑산 등지에서 읍성의 기능에 따른 증설사업도 실시되었다. 함흥에서는 안변 이북, 북청 이남의 여러 고을에서 5,000명을 동원하여 본래의 성에 10,314척을 더 쌓아 咸興府城을 완성하였다. 穩城府城은 7,000명을 동원하여 서·남쪽으로 500자 넓이를 추가하였다.654)

 평안도 방면의 축성도 논의되어 평양성을 비롯한 여러 고을의 읍성이나 산성들이 수축되거나 신설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義州城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문종 원년(1451) 2월 초하루에 공사를 시작해서 그믐날 끝내기로 하고 사전준비를 진행하였으나 문종의 지시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문종은 당장 성벽을 쌓아 고치는 일보다는 퇴락한 성문을 고치고 池壕를 깊게 하는 한편으로, 전돌과 석회를 굽게 하여 5,600인의 인력으로 강이 얼었을 때 수송해 이듬해 봄이나 가을에 성벽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의주성이 석성이지만 磚壁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655) 의주성의 구조는 皇甫仁·金宗瑞가 제시한 다음의 개수지침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기까지는 더 쌓는 성벽 높이를 30척, 短墻 높이 두 자, 성가퀴의 높이를 석 자로, 남문은 문루를 헐고 다시 짓고 문 밖 옹성은 虹橋를 없애고 대신 懸門을 설치하되 그 위에 건물을 간결하게 짓는다. 동문도 문루를 더 쌓고 홍교를 치우고 문루를 세우며 그 밖에 다시 옹성을 더 쌓아서 현문을 설치하고 지붕을 씌운다. 또 서문의 옹성에도 역시 현문을 설치하고 지붕을 구성한다. 또 동문에서 북문까지의 城子는 높은 곳은 단단하게 쌓였으므로 낮은 곳만 덧쌓는다(≪文宗實錄≫ 권 7, 문종 원년 4월 경진).

 이 지침에 따라 우선 10월까지 선군 1,000명을 동원하여 於外洞 등으로 석재를 옮기고 이듬해 공역이 시작되면서 다시 필요한 자리로 운반하였다. 또 의주의 선군 250명을 7월 1일부터 9월말까지 동원하여 전돌을 굽게 하고 특히 성문의 취약성을 고려하여 문짝에 사용할 鐵牒釘 등의 제작에 힘쓰기로 하였다.656)

 성문에 懸門을 설치하자는 안이 김종서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현문의 체제에 약점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657) 상당히 견고하여 방비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 고려되어,658) 문종 원년 6월 의주성에 새로 만든 현문을 설치하는 시험을 하였다.659)

 한편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성으로는 효과적인 방어가 어려우므로 장성을 쌓거나 행성을 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황보인이 함길도에 장성을 쌓자고 주장하였고,660) 사헌부 장령 河緯地가 문종 즉위년 가을에 함길도의 행성을 쌓기로 한 것은 세종이 돌아가신 시기에 해당하니 늦추자고 하였으나 문종이 세종의 뜻이라고 하여 그대로 시행하였다.661) 또 함길도 관찰사 金文起는 야인들의 동정이 조금 뜸한 틈을 타서 온성에서 회령에 이르는 행성을 쌓자고 건의하였다.

 행성의 이점은 同知中樞院使 趙克寬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되었고, 이 건의가 채택되어 온성과 종성에서부터 회령에 이르는 구간에 행성이 축조되었다.662)

沿邊의 여러 鎭이 賊路에 연접하여 있으니, 만일 행성이 없으면 우리의 單弱한 군졸만으로는 부지하기 어렵습니다. 행성을 쌓는 일이야말로 국가에서 제일 가는 급한 일입니다(≪文宗實錄≫ 권 6, 문종 원년 2월 임오).

 ≪신증동국여지승람≫ 온성도호부 성곽조에는 석축한 읍성과 함께 행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에 의하면 온성도호부의 행성은 길이가 143,768척, 높이가 12척이었으며, 종성도호부의 행성은 석축한 길이가 62,408척, 토축한 길이가 85,600척이고 3,582척은 木柵하였다. 읍성은 따로 석축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회령도호부의 읍성은 중종 2년(1507)에 증축한 것인데, 그 길이가 11,720척, 높이가 15척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三水郡條에 의하면 읍성과 함께 군 북쪽 1리에 ‘鴨綠江行城’이 있었는데 석축의 길이가 1,517척, 높이가 5척이었다. 평안도에서는 昌城·朔州·渭原·理山·碧潼 등 압록강에 연하여 있는 고을에 행성을 쌓아 두만강가의 행성과 대등하게 하였다.663) 이들 행성은 장성이라 불리우기도 하였다.664)

 이와 같이 문종대에는 축성을 통해 북방과 하삼도의 방어책을 마련하였다.

641)≪新增東國輿地勝覽≫ 권 53, 昌城 및 권 51, 平壤.
642)≪文宗實錄≫ 권 3, 문종 즉위년 8월 을해.

그런 견해를 문종대 兵曹의 인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43)≪端宗實錄≫ 권 2, 단종 즉위년 8월 신유.
644)≪文宗實錄≫ 권 4, 문종 즉위년 10월 무인의 司諫院左正言 具人文의 啓.
645)≪文宗實錄≫ 권 9, 문종 원년 9월 경자.
646)≪文宗實錄≫ 권 3, 문종 즉위년 9월 계묘.
647)≪文宗實錄≫ 권 4, 문종 즉위년 10월 무술.
648)≪文宗實錄≫ 권 7, 문종 원년 5월 계묘.
649)≪文宗實錄≫ 권 5, 문종 원년 정월 기사.
650)≪文宗實錄≫ 권 1, 문종 즉위년 5월 임신.
651)≪文宗實錄≫ 권 3, 문종 즉위년 9월 경신.
652)≪文宗實錄≫ 권 5, 문종 원년 정월 무신.
653)≪文宗實錄≫ 권 8, 문종 원년 7월 계묘.
654)≪端宗實錄≫ 권 1, 단종 즉위년 6월 무인.
655)≪文宗實錄≫ 권 5, 문종 원년 정월 기유.
656)≪文宗實錄≫ 권 7, 문종 원년 4월 경진.
657)≪文宗實錄≫ 권 6, 문종 원년 3월 임자.
658)≪文宗實錄≫ 권 6, 문종 원년 2월 신미.
659)≪文宗實錄≫ 권 8, 문종 원년 6월 임신.
660)≪文宗實錄≫ 권 1, 문종 즉위년 5월 임신.
661)≪文宗實錄≫ 권 2, 문종 즉위년 6월 기축.
662)≪文宗實錄≫ 권 6, 문종 원년 2월 정해.
663)≪新增東國輿地勝覽≫ 권 53 및 권 55의 昌城都護府 行城·朔州都護府 行城·渭原郡 加乙罕洞 行城·理山郡 行城·碧潼郡 行城 참조.
664)≪文宗實錄≫ 권 7, 문종 원년 7월 임인.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